그때 내가 너의 밤이 될게

누구맘대로

2026.09.30 | 조회 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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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돌아온 수요일의 이종철, 뚱종철입니다. 여느 명절과 마찬가지로 살이 쪄서 돌아왔습니다.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어머니가 제가 튀김이나 갈비찜을 하도 잘 먹으니 너무 대량으로 해놓으셔서 지금 목요일부터 계속 어머니 음식만 먹고 있는데 아직 4~5일 더 먹어야 끝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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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밤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최근 매일 밤 산책을 하는데요. 이 시간을 위해 내가 돈을 벌고 먹고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일은 낮 같은 시간입니다. 특히 요즘은 일을 하도 많이 해서 낮이 무한정 길어져 있죠. 저는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에 일을 합니다. 낮에는 주로 업무를 하고, 저녁이 되면 내일부터 활용할 에이전트를 이리저리 만지다 지쳐서 잠이 듭니다. 개인적인 약속이 하나 있는데요. 10시부터는 절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 저 괜찮은 거겠죠?

 

낮이 무한정 늘어나니 상대적으로 밤이 더 소중해졌습니다. 사회인으로 살기 위해 낮을 살아야 하지만, 제가 원하는 삶은 무한정 긴 밤에 사는 것.

 

밤 같다는 건 이런 거예요. 숨겨주고 녹아드는 것, 소리 없이 저무는 모든 것들, 살피지 않고 감출 필요가 없는 것, 조용하고 온기 없는 것들.

 

아직도 모자무싸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데, 최근작 중 가장 밤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밤 장면도 많고요. 할로겐 가로등 스을쩍 비치는 홍제동 길거리에서 나타난 맑은 얼굴의 변은아. 너무 완벽한 밤이 아닌가요? 고윤정이라니, 거기서 걷는 사람이 고윤정이라니. 예쁘고 고운 것들을 모두 때려박은 옥천3교에서 고윤정이 걷고 있다니.

 

반대로 고윤정을 닮은 제나는 태양과 같습니다만, 숨고 도망치는 모습에서 밤을 엿볼 수 있습니다.

 

‘티셔츠가 마르기 전에’의 마지막 화도 밤 같았어요. 그 이별 장면, 괜찮겠지? 응, 괜찮을 거야. 전부. 다녀올게. 잘 다녀와. 이런 완벽한 대사라니. 저 티셔츠 10화 이별 장면 굳이 10번 돌려보고 10번 다 울었습니다. 이전에 보낸 메일도 그거 보다가 울다가 쓴 거고요. 절대 들켜선 안 돼, 개못생겼으니까.

 

밤 같은 작품 몇 개 더 추천해볼까요? 심야식당(우와 써놓고 너무 당연해서 내 자신에게 실망했다), 응답하라 1988, 동백꽃 필 무렵, 우리들의 블루스, 백예린의 거의 모든 노래, 최유리의 거의 모든 노래, 서영주의 나란한 밤, 카모메 식당, 남극의 셰프 같은 것들. 대강 감이 오시죠. 느리고 조용하고 힘 빼고 볼 수 있는 것들. 수종철 아 아니.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밤 같은 사람. 만나면 왠지 힘을 빼게 되게 무장 해제하게 만드는. 몇 달 전 그런 사람을 만나고, 함께 길을 걸으며 영혼이 물속에 젖어드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귓가에 찰박찰박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왜 이렇게 사람을 주저앉히냐고, 그러다 도망가버리면 나는 어떡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여미새라고 뭐라고 할까 봐 입을 닫았습니다. 침묵이 그 시간의 대가였어요. 사람의 열망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 있고,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이 밤이 끝나버릴 것 같았습니다. 저의 최선은 “잘 가, 또 보자.” 그 뒤로 한 번도 못 만났네요.

 

친구 중에도 그런 친구가 있었어요. 모든 걸 안아주고 감싸 안아주는, 나의 모든 게 맞다고 말해준, 추앙하지 않았는데 추앙이 돼버린. 곱고 보드라운 나의 김 모 씨. 이분은 이민을 갔거든요. 이민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만 생각했던 말이 있습니다. “당신 없이 내가 살 수 있을까?” 저는 그분에게 이렇게 거대한 애정 표현을 해본 적도 없고, 그렇게 자주 만나는 사이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당신을 한정해 가진 무한한 열정이 있다는 걸 그 사람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문득 최유리의 ‘바람이 참 좋은 날에’를 듣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왜 타인에게 밤 같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지 않았을까? 함께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좋고, 야외에서 눈을 감고 함께 바람을 느낄 수 있는, 몇 박자쯤 뒤떨어져 있는, 숨결이 조용한 사람.

 

관계는 욕망에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두고 무엇이 되려 하죠. 그러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요? 그림처럼 길가의 꽃처럼 내버려두되 함께하는 것, 그럼 좀 밤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나요. 함께 일어나기보다는 함께 저물고, 생각하지 말고 느끼고, 서로의 밤에 녹아 사라지는 것. 그래봅시다. 제가 여러분의 밤이 되겠습니다.

 

저는 요즘 악마같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여러분이 이 메일을 보시는 순간만큼은 밤이 될 수 있도록 해볼게요. 이곳에서 시름과 미움, 고통과 욕심, 분노와 질투를 모두 비타민 녹이듯 녹여보시고 밤을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매일 같은 길을 산책하면서도 느끼는 무한한 감동, 대기, 어스름과 비 냄새, 조그만 생명체, 물 위에 떠 있는, 신체의 어느 곳에도 힘을 주지 않은 그 감각들 여러분들께 드리려 노력했습니다.

 

원래 이 메일은 여러분 쓸모 있으시라고 Jev 활용법이나 제가 만든 신규 앱 추천(유료입니다)을 하려 했으나 지까짓 게 무슨 쓸모가 있어 하면서 쓰던 글 다 엎어버리고 새로 쓰는 글입니다. 이 밤의 감동을 여러분께 드리길 바라면서, 쓸모 있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앱은 후원자분들과 멤버십 분들에게는 유료 결제 건을 제공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준비만 중입니다.

 

여러분은 이 글을 높은 확률로 오전에 보시겠지만, 밤에 다시 읽어봐 주세요. 바람이 잘 부는 가을밤 야외면 더 좋겠네요. 어디선가 밤이 다가와 여러분을 기대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우선 저부터 밤에 다시 읽어보고 이불킥할 준비를 해야겠군요.

 

항상 지켜봐 주셔서 감사드리며, 저는 이번 주에 앱 제작기로 변칙적으로 돌아옵니다. 여러분, 굿나잇.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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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gostar

    0
    약 22시간 전

    뭐 그리 바쁘다고... 아주 모처럼 댓글 남깁니다 ㅎㅎ 크롬 다크모드로 글을 읽었지만 현재 시간 09:13이네요... 이 글을 밤에 다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나저나 밤 10시 이후 일을 안 하시는 것도 좋지만... 밤 9시나 반 8시 이후로 더 긴 밤을 허락하시는 걸 바라봅니다! 깨어 있을 때는 거의 일을 하시는데 어떻게 그 많은 드라마들을 볼 수 있으신 건지 궁금하네요... 1배속으로 보시는 거 맞죠? ㅡㅡ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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