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잘 지내셨나요? 전 아주 꿉꿉한 한 주를 보냈답니다. 날씨도 날씨지만 마음도 좀 꿉꿉했어요. 그래도 일주일의 마지막인 오늘은 나름 제습된 시간을 보내서 이 뽀송한 마음을 담아 다섯 번째 장아찌를 띄웁니다. 이번 주제는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이 편지라는 건 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오랜 시간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닿는 것일까 궁금해졌어요. 그치만 '편지'는 제가 다루기에 너무도 방대하고 드넓은 초원 같아서, 어딘가 다정다감하고 적당히 묵은내 나는 '펜팔'로 범위를 움켜쥐어 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펜팔(pen-pal) : 「명사」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귀는 벗
펜팔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귀는 벗이래요. 그러니까 낭만 장아찌를 기꺼이 주문 배송해주는 여러분은 나의 펜팔 친구입니다. 펜팔 친구에게 보내는 오래된 펜팔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Dear my friend : 60년대부터 이어져 온 펜팔의 역사
우리나라에 펜팔이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건 1960년대 경입니다. '편지'하는 일 자체가 유래를 찾아보는 것이 의미 없게 느껴질 정도로 오래된 역사기에 놀랄 것도 없다 싶지만요. '해외 펜팔'을 주선하는 업체가 있었다는 사실은 좀 신선하지 않나요? 한두 곳도 아니고 제법 많았대요. 그곳에 소액의 비용을 내면, 다른 나라의 친구와 펜팔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매칭을 시켜주었다고 합니다. 해외 자유여행이 시작되기 20년도 전에 편지로 만나본 타국의 친구는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이런 생각도 제3자니까 할 수 있는 거죠. 정말 타국의 친구를 만난 당사자들은 골치 아픈 난관을 지나야만 지구 반대편에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감격할 수 있었대요. 그 난관은 바로 높고도 두꺼운 언어의 장벽... 그래서 해외 펜팔 업체에서는 펜팔 양식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양식에 맞춰 자신의 정보로 갈아 끼우기만 하면 일단 첫 번째 편지는 주고받을 수 있는 거지요. 시작의 반이니까 이젠 감격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아직 아니라고 합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남성들은 이국의 이성 친구와 펜팔 하고 싶은 비율이 압도적이었던 반면, 여성들은 이국의 동성 친구들과 펜팔을 하고 싶어 했대요. 원하는 짝을 만날 수 없었던 남성 회원들은 외국 친구에 대한 놀라움보다 앞선 아쉬움을 느끼곤 했다는데요. 장아찌를 담그기 위해 자료들을 찾다보니 60년대 냉전체제 속 자유 진영 국가 개개인들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하나의 방도로 펜팔 운동을 해석하는 연구가들도 있더라고요. 시작한 의도야 어떻든 그 시기를 걸어온 사람들은 디어마이프렌드로 시작하는 그 편지들은 낭만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낭만으로 부르려고요. 다이내믹 코리아의 현대사가 부채질한 어떤 낭만.
미지의 그대에게 : 펜팔 클리셰 아니 클래식
참 재밌습니다.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 사는 친구에겐 다정하게 (주입된 대로) '디어마이프렌드'로 운을 떼어 놓고서는 자그마한 한반도에 함께 사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미지의 그대에게'로 시작하는 것이 국룰이었다고 합니다. 남녀노소 할 거 없이, 설령 물리적 거리가 가깝더라도 언제나 상대는 '미지의 그대'였다고 해요. 미지의 그대라는 표현이 더욱 귀엽고 재밌는 이유는, 국내 펜팔 친구를 사귀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했던 것이 잡지였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잡지 뒤편엔 미지의 그대를 자처하는 여러 친구들의 이름, 학교, 취미 등 미지라고 하기엔 너무도 명확한 정보들이 그득그득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그중에서 편지하고 싶은 친구의 집 주소로 '미지의 그대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내는 거죠. 인간관계에서 서글픈 사실은 상대는 내 맘 같지 않다는 점이지요. 행여라도 자신의 악필을 보고 회신을 하지 않을까 봐 청춘남녀가 우글대는 교실엔 대필을 해주는 친구도 있었다고 하구요. 촌스러운 이름에 펜팔친구를 사귈 수 없을까 봐 가명을 쓰는 친구들도 왕왕 있었다고 합니다. 영화 '클래식'에서 봤던 태수가 주희에게 보낼 편지를 준하에게 대필하도록 하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클래식은 정말 많은 부분에서 클래식이었군요. '미지의 그대에게'로 시작한 펜팔 인트로, 엔딩은 어떻게 내냐구요? '0000년 00월 00일 새벽 두 시 당신의 영원한 벗으로부터'라고 합니다. 벌건 대낮에 써도 꼭 새벽 두 시로 아련하게 끝내는 것이 그 시절 펜팔의 법칙이었다고 하네요.
Dear. JangAzzi's friend💌
'미지의 그대에게'로 열고 '새벽 두 시 당신의 영원한 벗으로부터'로 닫은 그 편지의 중간엔 라이너마리아릴케니, 푸시킨이니 하는 멋진 시와 뉴히트송에서 엄선한 각종 팝송리스트가 대부분이었다고 해요.
이 글을 보고 있는 디어마이프렌드, 미지의 그대에게 닿기를 바라며 몇 가지를 추려보았습니다. 감상하고 알려주세요.
📜문장하나
아마도 자신이 보았던 광활한 논이 이뤄질 수 없는 환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감방 안에서 확인한 순간, 의지를 지닌 인간으로서의 할아버지는 이미 죽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가 저물어도 그 빛은 키 큰 나무 우듬지에 걸려 있듯, 꿈은 끝나도 마음은 오랫동안 그 주위를 서성거릴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런 까닭에 인생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오래 지속된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소설
🎧음악하나
사카모토 류이치는 고등학교 시절 이루마, 엔니오 모리코네, 어쿠스틱 카페와 함께 제 플레이리스트를 적셔주었던 뮤지션이에요. 잠이 오지 않을 때나 집중하고 싶을 때면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듣곤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요즘은 잘 안 들었어요. 잔잔하더라도 가사가 있는 노래를 찾아 들었고 가사를 잘 들어보려고 애썼습니다. 지치고 피곤한 날은 노래 찾을 기력도 없어 아무것도 듣지 않고 터덜터덜 집에 가기도 했어요. 지난날 휴식과 집중을 함께 선사했던 뮤지션이 최근 일어난 표절 논란을 멋진 문장으로 일축했습니다. 입장문을 통해 사카모토 유이치는 자신이 거장임을 한 번 더 증명했는데요. 문제의 중심에 있었던 Aqua를 여러분과 함께 듣고 싶어요.
적다 보니 좀 더 욕심내고 싶네요.
저를 반하게 했던 거장의 필치를 여러분께도 전해드립니다.
✉️편지하나
먼저 유희열씨의 작품 관련하여 진심어린 메세지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얼마 전, '누군가 당신의 Aqua를 표절했다'고 한국의 한 유튜브 링크를 통해 제보받게 되었습니다. 사카모토 유이치와 우리 직원들은 즉시 두 곡의 '유사성'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음악적인 분석의 과정에서 볼 때 멜로디와 코드진행은 표절이라는 논점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저희는 종종 전 세계의 팬들로부터 유사한 제보와 클레임을 많이 받기 때문에 법적인 조치가 필요한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각 사례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검토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위와 같은 이유로 유희열씨의 곡은 어떠한 표절에 대한 법적 조치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본 사안을 제보해주신 팬 여러분과 이 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려는 유희열씨의 솔직한 의도에 감사드립니다. 두 곡의 유사성은 있지만 제 작품 'Aqua'를 보호하기 위한 어떠한 법적 조치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나의 악곡에 대한 그의 큰 존경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며 많은 것을 배운 바흐나 드뷔시에게서 분명히 강한 영향을 받은 몇몇 곡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바흐나 드뷔시 같은 수준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오해는 말아주세요.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습니다. (책임의 범위 안에서) 거기에 자신의 독창성을 5-10% 정도를 가미한다면 그것은 훌륭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것이 나의 오랜 생각입니다.
나는 여전히 내가 만드는 음악들에서 독창성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또한 예술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희열씨와 팬분들의 아낌없는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유희열씨의 새 앨범에 행운을 기하며 그에게 최고를 기원합니다.
저희는 사카모토 유이치가 모든 것을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모두가 유희열씨의 새앨범 발매와 성공을 기원하고 응원합니다.
주저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시길...
추가적인 사항이 있을 시에는 언제든 연락 부탁드립니다.
2022년 06월 12일
오늘 들려드린 펜팔에 관한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전 펜팔 친구를 구하기 위해 애쓰던 그 시절 청춘남녀들의 에피소드를 찾아보면서 편지할 수 있는 곳이 있음에 감사하고 안도했답니다. 이름을 멋지게 바꾸지 않아도, 멋들어지는 문장으로 찾아오지 않아도 펜팔 해줘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미지의 그대들에게 멋진 장아찌를 배달해오는 영원한 벗이 될게요.
2022년 06월 27일 월요일 새벽 두시
당신의 영원한 벗으로부터
P.S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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