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오랜만의 문화생활로 차고 넘치게 활기차고 바쁜 한 주를 보냈어요. 여기저기 쏘다니고 나니 몸은 좀 지친 것 같은데요. 마음만큼은 전보다 빛난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신없던 일상에 활기를 되찾고 나니, 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모두 사랑하는 즐길 거리를 가져다 준 한 단체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보내고 싶더라고요. 그리하여, 오늘 담아온 장아찌는 ‘영맨’들의 믿음, 소망, 사랑 기독교 청년회, YMCA입니다.
📋그래서 YMCA가 뭐냐면요
YMCA는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의 앞 글자를 딴 약어로, 기독교 청년회를 의미합니다. 산업혁명 직후 혼란한 사회 속에서 시작된 영국 개신교 청년들이 만든 민간단체였는데요. 작게 시작했던 영국 기독교 청년 단체는 북미로 넘어가면서 급성장하게 되었고요. 점차 세계 전역에 뻗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 그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3년 경이었는데요. 당시 국내 상황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1899년, 조선 최초로 만든 민간단체였던 <독립협회>가 강제 해산되는 일이 벌어지는데요. 150명가량의 지식인들은 독립협회의 뒤를 이을 민족공동체로 한국 YMCA 창립을 건의합니다.
조선에 있던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의 선교사들이 함께 건의를 해주고 황실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해준 덕분에 1908년 종로 2가에 YMCA 건물이 세워지게 되는데요.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기에 충분한, 으리으리한 외관을 자랑했다고 합니다. 평수만 해도 600평이었고 높이는 3층 높이였다고 하니 당시 사람들의 눈에 이 민간단체가 얼마나 든든하게 느껴졌을까요? 풍진 세상에 흔들리던 젊은이들은 YMCA의 울타리 안에서 조국 독립과 근대화를 꿈꾸며 성장했습니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1장 1절, YMCA
조국 독립과 근대화라고 하니까 되게 멀고 지금 우리와는 큰 관계없는 이야기 같지만, 아닙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스포츠의 역사 대부분이 YMCA로 인해 백 년 전 한반도에 상륙하게 되거든요. 이때 우리 곁에 등장한 스포츠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시즌마다 수많은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야구! 이 야구도 1905년 YMCA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야구를 도입한 건 YMCA 초대 총무였던 미국인 질레트였는데요. 이 질레트가 야구용품을 가져온 덕에 야구가 빠르게 대중화되었다고 합니다. 스포츠 앞에 황제라고 장사 있나요?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1908년에는 고종황제의 명으로 어전에서 야구 시범경기를 갖기도 했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야구를 하기 위해 해외에 가는 일도 벌어지는데요. 몽양 여운형을 주축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교에 야구 경기를 하러 갔던 것이 그 사건입니다. 1920년 11월에는 5개 학생팀과 5개 실업팀이 참여하는 전조선 야구대회도 열렸다고 하는데요. 대한국민의 야구사랑이 100년 간 이어져 왔다니 놀랍지요?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이릅니다. 요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다시 한번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고 있는 농구! 농구 역시 YMCA에 의해 우리나라에 상륙하게 된 스포츠였습니다. 1920년 YMCA회관에서 서양인팀과 농구 경기를 하던 것이 연례행사가 되어 전국 각 학교에 농구부가 생기는 결과를 낳았다고 하네요.
다음으로는 강력한 스파이크로 속을 뚫어주는 배구가 있습니다. 1915년 YMCA 간사가 코트를 만들어서 가르치기 시작했던 것이 우리나라 배구 역사의 시작이랍니다. 우리나라 첫 배구 경기도 1917년 YMCA 체육관에서 열렸다고 하네요.
어디까지 더 나올까 궁금해지는데요. 사실 스포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것, 온 국민을 붉은악마로 대동단결하게 만드는 축구도 YMCA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축구’ 자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80년대 초 영국 군함에 있던 승무원들에 의해서였지만요. 공식적으로 경기가 진행되었던 건 1905년 대한체육구락부와 기독교청년회의 전신이었던 황성기독교청년회의 축구 경기였다고 해요. 1921년엔 전조선축구대회라는 슬로건 하에 경성과 평양의 선수들이 이른바 경평전을 치르는데요. 이 행사가 히트하면서 당시엔 아주 핫한 매치였다고 하네요. 야구, 농구, 배구, 축구 어지간한 구기종목은 다 나온 것 같은데요. 구기종목만 YMCA의 덕을 본 건 아닙니다.
올림픽 시즌마다 한판승의 사나이로 이름을 올리는 유도선수들! 그 유도의 역사 역시 YMCA로 시작됩니다. 유도부는 ‘우리 민족을 구할 장수’를 뽑는다는 취지로 개설한 유술부가 모태인데요. 슬로건이 이렇다 보니 일제의 탄압을 받기도 했습니다. 극심할 때 우리의 유도도장은 모두 폐쇄되고 일본의 유도도장으로 통합되기도 했는데요. 그런 상황일수록 더욱 노력한 결과 1937년에는 적의 심장부에서 개최된 유도대회에서 조선이 우승을 거두기도 했답니다.
어떤가요?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이야기라고 하기엔 여전히 우리 너무 열띠게 응원하고 못 견디게 사랑하는 종목들 아닌가요?
🎧village people – Y.M.C.A
제목을 보자마자 흥겨운 춤사위를 떠올리며 들어오셨을 분들이 계실 것 압니다. 발매된 때부터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는 village people의 노래에 등장하는 YMCA는 오늘 우리가 다룰 그 YMCA가 맞습니다. 가사를 보면, 흡사 YMCA의 CM송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YMCA 찬가>라는 걸 알 수 있는데요. 당시, 돈 없고 집 없던 미국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어준 하숙집, 문화생활 공간 등을 운영하는 주최가 기독교청년회였기 때문에 이런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고 해요. Village people 구성원 중 일부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가사 아래에 깔린 다른 의미가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었고 이에 따라 YMCA와 얼굴을 붉히는 소동도 있었지만요. 오늘날 기독교청년회관 모르는 사람은 있지만 이 노래 모르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결론적으로 대중들에게 YMCA를 알리는 것에 일등 공신이었기에 지금은 불편해하는 사람 없이 모두 함께 떼창할 수 있는 곡이 되었다고 하네요.
오늘은 YMCA가 가져온 뜨거운 불씨, 스포츠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늘 미처 다 적지 못한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어요. 스포츠만큼이나 우릴 들뜨게 하는 것 하면, 저는 아무래도 페스티벌, 레크리에이션, 떼창… 그런 게 떠오르는데요. 스포츠 받고 떼창 역사의 시작에도 YMCA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다음 주에는 음악의 역사에도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선 YMCA의 또 다른 면모를 담아오도록 하겠습니다. 😊
그럼 이번 한 주도 활기 넘치는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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