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

1970년대 청춘의 여름 3부작 1/3 '생맥주'

2022.06.06 | 조회 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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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장아찌 주문배송

직접 공수한 케케묵은 낭만 장아찌를 잔-뜩 퍼서 댁의 편지함에 보내드려요.

한 주간 안녕하셨나요? 여름이 성큼 서엉큼 성-큼, 성큼! 오고 있습니다. 전 여름이 싫습니다. 살에 쩍쩍 달라붙는 옷도 싫고 팔 다리 사이사이 땀이 차는 것도 싫어요.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전 나름 차려입고 나가는 걸 좋아하는데요. 여름 옷은 아무리 돈을 주고 사도 땀에 절어 몇 번 빨고 나면 한 해 이상 입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제 여름은 남루해지기를 자처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여름에 있어 딱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생맥주를 가장 합법적으로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 계절이라는 거예요! 술 한 잔 입에 안 대는 우리 엄마도 한여름에 맥주 마시는 저와 아빠에겐 관대한 걸 보면, 생맥주는 자타 공인 여름 제철 음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번 글감은 생맥주🍺🍻인데요. '생맥주' 뒤에 '마시자'라는 동사가 아닌 '쓰자'라는 동사를 붙이고 나니 평소엔 잡히지 않던 키워드 몇 개가 알알이 이어붙었어요.

생맥주, 통기타, 청바지

몇 년 전 대학 수업 시간, 세대별 청춘의 키워드를 만나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1970년대 청춘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청년이라 함은 모름지기 생맥주쯤은 마시고 통기타로 포크송쯤은 몇 곡 연주하며 멋들어진 청바지를 입어야 했다고 합니다. 켜켜이 쌓인 기억들 속에 가장 신선한 맛을 내는 생맥주를 건져올리려면 그 정도 싱그러운 이야기는 들어가야 할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오늘부터 3주간은 1970년대 청년 3부작을 이어가볼 예정입니다. 제목이 '바보들의 행진'인 이유는 영화 바보들의 행진이 그 시대 청년들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인데요. 언젠가 영화의 낭만을 건져 올릴 때 이 주제로 또 한 번 편지 할게요.💌

주절주절 서두가 길었네요. 그럼, 1970년대 여름을 뜨겁게 달군 생맥주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방황하는 청춘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 히피문화장발,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히피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1970년대의 청춘들은 낮에는 다방, 밤에는 생맥주 홀로 운영되는 업소에서 통기타 음악을 들으며 생맥주를 마셨다고 합니다. 생맥주 홀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당시 명동 코스모스 백화점 지하에 있었다는 '쉘부르'라는 업소가 청춘들에게 특히 핫한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맥주는 지금처럼 대중적인 이미지는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몇몇 사람들의 다소 품격 있는(?) 취미생활이었던 생맥주. 시원한 맥주를 누구나 마실 수 있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요? '생맥주'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호프'라는 장소에 그 답이 있습니다.

호프, HOF, Hofbrauhaus, OB호프'호프'라는 단어의 어원은 어디서부터 왔을까요? 맥주의 주성분인 홉을 떠올리시는 분도 많으실텐데 의외로 독일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궁중 양조장 뜻하는 독일어 'Hofbaruhaus'에서 앞 글자를 떼온 말이라고 하는데요.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업체는 귀여운 곰돌이로 잘 알려진 OB베어의 전신, 동양맥주입니다. 1986년 11월 5일, 동양맥주는 생맥주 판매율을 높이고 주류 문화를 바꾸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동숭동에 'OB호프'를 개업합니다. 우리의 주류 역사에서 '호프'라는 단어가 처음 쓰이기 시작한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처음 생긴 호프집에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그를 증명하듯 OB호프를 선보인 지 1년 만에 300여 개의 체인 점포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호프'라는 단어가 지닌 체인 개념은 느슨해지고 보편적인 술집의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호프의 어원을 찾으면서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습니다.가장 오래된 생맥줏집이라고 알고 있던 을지로의 OB베어는 왜 상호에 호프를 쓰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생각지도 못한 속상한 곳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첫번째 생맥주집, 을지OB베어를 지켜주세요힙지로라는 별명마저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긴- 유행을 이어가고 있는 을지로 노가리 골목. 저마다 다양한 안주를 선보이지만 '노가리 골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생맥주와 노가리는 이 골목의 필수 조합입니다. 이 환상의 짝꿍을 처음으로 선보인 가게가 바로 을지ob베어였습니다. 경양식집을 운영했던 1대 창업주는 '생맥주'가 핫하게 떠오를 아이템임을 무려 40여 년 전 직감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선구안으로 최초의 생맥줏집은 을지로 3가에 상륙하게 됩니다. 근면 성실함과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는 정으로 을지ob베어는 단숨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많은 사람들은 맥주 한 잔에 직장인의 애환을 날리곤 했습니다. 을지ob베어 뿐이던 골목엔 몇 년 사이 다른 메뉴를 주력으로 하는 맥줏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쭈뼛쭈뼛 장사를 함께해도 되겠냐고 묻던 다른 호프집 주인들에게 을지ob베어의 사장님은 흔쾌히 손을 내밀고 잘해보자며 웃었습니다. 을지OB베어만이 자리를 지키던 한적한 골목은 다양한 개성이 머무는 맥주골목으로 바뀌었고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울고웃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방문이 문제였을까요. 을지ob베어 작은 공간에서 지금은 정 많은 사장님 내외가 울고계십니다. 백년가게 을지ob베어를 지켜달라고요.
허울뿐인 백년가게, 이래서야 백 년은 무슨...십 년이나 가겠나요?몇 년 전, 다양한 개성이 너울대던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 만선호프가 생겼습니다. 개성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환대했는데 너무 순진했던 걸까요. 만선호프는 자본의 힘을 이용해 다양한 개성들을 하나하나 집어삼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던 다양한 호프집은 점차 만선 1호, 2호, 3호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만선호프의 욕심 앞에서 노가리골목의 원조 노포도 힘을 잃었습니다. 가게를 잃을 수 없다고 맨몸으로 저항했지만 개개인의 싸움이니 법대로 하라는 서울시의 방관 아래, 4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 최초의 생맥줏집은 어두운 밤, 길 위로 내동댕이 쳐졌습니다. 이토록 긴 역사를 가진 장소를 지킬 수 없다면, 을지ob베어를 지킬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어느 가게도 지킬 수 없다는 마음가짐 아래 불야성을 이루는 야장에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상생의 골목을 만들자며 구호를 외치고 을지ob베어를 지켜달라는 피켓을 흔듭니다. 아주 작디작은 마음이나마 보태려고 찾은 그곳에서 2대 사장님 최수영님이 마이크를 드셨습니다.
"호프는 광장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가게는 규모가  작아서 호프를 붙이지 못했어요"요즘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호프라는 단어를 자격 따져가며 붙여야 할 때부터 이어져 온,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공간. 세월의 부침 속에서도 고객들과의 약속을 위해 가격 인상엔 인색하고 안주는 푸짐했던 정다운 공간. 그 공간이 아스라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언젠가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그 시원한 맛에 감탄하며 말했어요. "이 생맥주를 처음 선보인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상줘야 돼 진짜." 저만 이게 궁금할까요? 생맥주가 남녀노소에게 맛있다면, 생맥주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이건 누구나 궁금해할 주제일 텐데... 서울 생맥주의 역사가 궁금한 누군가가 맥주 맛에 감탄하며 이런 말을 하게 된다면, 우린 이제 어딜 향해 그 공을 돌려야 할까요. 누군가 그곳은 지금 왜 없냐고 물어올 때, 서울시가 지켜주지 않아 용역깡패 70명에 의해 길바닥에 나앉는 방식으로 사라졌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요. 이토록 작은 공간이 그토록 큰 위안을 주었는데 이렇게 없어지는 게 과연 맞는 걸까요. 연대의 현장에서 2대 사장님 내외는 연신 맛있는 맥주를 따라와 연대인들에게 한 잔씩 건네셨습니다. 그 맥주가 너무 시원하고 맛있어서, 사장님들의 웃음이 너무 아름다워서, 맞은편 만선호프 손님들이 너무 즐거워 보여서 자꾸만 서글퍼졌던 5월입니다.

추신 : 폐허 속에 남은 생맥주를 향한 고집, 당신에게 추천합니다.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로 31길 36 : 생맥주를 고집하는 집
며칠 전 생맥주를 향한 고집이 가히 그로테스크한 공간에 다녀왔습니다. 공항시장 역에 위치한 '생맥주를 고집하는 집'입니다. (네이버 지도 등에는 '일번지호프'라고 검색해야 나와요!) 약간의 으스스함을 견디면 자부심 넘치게 맥주를 따르고 안주를 만드는 사장님과 그 자부심의 실체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통기타 음악은 아니지만, 세월이 느껴지는 bgm이 술맛을 더합니다. 자주 가셔서 낭만의 근원이 쉬이 사라지지 않게 도와주세요 
오늘은 여름의 맛, 생맥주를 통해  여름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시원할 줄 알았는데 다 적고 나니 시원함 뒤에 오는 쌉쌀함이 크네요. 장소는 힘이 세고 위대합니다. 지난 시간을, 낭만을, 감수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죠. 어떤 장소는 이 모든 낭만을 장아찌의 형태가 아닌 겉절이의 형태로 내옵니다. 짙은 추억을 이토록 신선하게 들이마실 수 있는 곳은 너무도 드물어요.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우리 낭만의 유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룩한 낭만의 보고가 너무도 쉽게 없어지고 있습니다. 갓 짜낸 과거를 마시는 일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수 있기를, 이토록 소중한 것들이 자본의 논리 속에 메마르지 않기를 그리하여 1970년대 청춘들의 여름을 책임진 시원한 생맥주가 2022년까지도 근본 있는 청춘의 키워드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에는 두 번째 청춘의 이름, 통기타와 포크송으로 편지할게요💌

 

소중한 것들이 소중하게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오늘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은 을지ob베어에 모여 연대의 장을 이루고 있습니다.매일 다른 행사로 마음을 더하고 있는 을지ob베어의 투쟁 현장에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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