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가 좋아하는 노래 한 소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Caruso

2022.05.31 | 조회 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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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장아찌 주문배송

직접 공수한 케케묵은 낭만 장아찌를 잔-뜩 퍼서 댁의 편지함에 보내드려요.

인생은 알 수가 없군요. 전 막연히 생각했거든요.

내가 만약 아부지가 좋아하는 노래를 퍼담는다면 그 첫번째 노래는 활주로- 이 빠진 동그라미 아니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우먼인러브 아닐까? 

그런데 놀랍게도 첫 삽..? 첫 술...? 첫...국자?를 뜬 낭만 장아찌가 끌어 올린 건 
전세계가 사랑하는 이탈리아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입니다. 파바로티의 카루소를 공수해오는 데 도움을 준 건 대구에 있는 고전 음악감상실 '녹향'이에요. 저는 요즘 대구에 참 자주(너무 자주...) 가고 있는데요. 이따금 시간이 날 때면 우리나라 최초의 고전 음악감상실인 녹향에 들르곤 했어요. 몇 주 전에도 그랬는데요.스크린에 나온 팝페라 그룹 Il Divo(일 디보)의 바르셀로나 공연 영상을 보면서 미처 모르던 낭만 하나를 또 건져낸 기분이라 기뻤어요.
그리하여 요즘 제 플레이리스트엔 온갖 이탈리아어가 난무하고 있는데요. 괜히 로맨틱한 영화들이 나오는 게 아니더군요. 그 숱한 꼬부랑 언어들 중 어망에 가장 자주 걸려드는 단어는 단연 Ti Amo❤️ 달다달아, 치아가 시큰거린다 생각할 무렵 다음 곡으로 카루소가 나왔어요. 노래가 시작되고 제가 느낀 감정은 "나! 이노래 알아!" 였습니다. 

어릴 때 집에 CD가 많았습니다. 아부지가 CD를 제법 모으셨는데 그중엔 턱시도를 입은 사람들이 그려진 것도 많았어요. 늘 그랬던 건 아닌데 어떤 주말엔 그 앨범들 중 몇 개가 재생되었는데요. 그때마다 우리집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왔어요. 지금 와 생각해보면 루치아노 짜파게티 정도 되는 실력이었던 것 같은데... 빠르게 내달리는 카루소의 도입을 아무렇게나 구사하며 따라하던 아부지의 모습. 잊고 있던 그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난닝구를 입고 테너를 따라하던 우리집 루치아노 짜파게티. 원치 않았지만 방구석 1열에서 그 모습을 직관했던 저는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도대체 카루소는 저렇게 숨가쁘게 무슨 노래를 하는 노래일까.

한 남자의 비극, Caruso카루소는 사람이름입니다. 정확한 이름은 Enrico Caruso(엔리코 카루소). 카루소는 성악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에요. 최초로 음반을 남긴 성악가이기 때문이래요. 승승장구하며 음악가로 잘 나갔던 카루소를 다룬 노래가 왜 이렇게 절절하게 슬픈가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음악은 활발한 활동중 병마로 고향에 내려온 카루소의 심정을 다룬 노래라고 해요. 좌절했나, 다시 음악을 하고 싶었을까. 절절한 호소가 안타까워 한국어 가사를 찾아봤습니다. 폭발이 극에 달하는 구간에서 이탈리아인 카루소는 또, 사랑이더라구요. 한번 보실래요?

 

Te voglio bene assai당신을 무척 사랑하오

Ma tanto tanto bene, sai정말 많이, 많이 사랑한다오, 알고있소?

E una cantena ormai지금 이 사랑의 굴레가

Che scioglie il sangue dint'e vene, sai내 모든 피를 다 녹여버린다오.
이상, 개뿔 다 잃고 내려온 고향에서 사랑의 굴레에 모든 피가 녹는 카루소였습니다.

 

파바로티의 절절한 목소리를 듣다가 문득 생각했어요. 아니 그래서 우리 아부지의 취향은 대체 언제부터 언제까지 잠시 고상했던 것인가. 필연적으로 저는 한번쯤 우리나라에도 클래식 열풍이 불었던 때가 있었던 게 아닐까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 시작했어요. 파바로티, 칸초네와 관련하여 구글링을 하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발견해서 주어담았습니다.
2001년 6월 22일 서울, 쓰리테너 콘서트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0038667
(서울=연합뉴스) 김인철기자 = `세계 3대 테너'로 불리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가 내년 6월 서울에서 첫 합동공연을 갖는다.22일 MBC와 음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MBC는 내년 창사 40주년을 맞아 `세계 3대 테너' 초청공연을 갖기로 하고 최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이들의 에이전트측과계약을 체결했다.공연 날짜는 내년 6월, 공연 장소는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으로 잠정 결정됐으나, 정확한 일정과 지휘자 및 오케스트라, 프로그램 등은 미정이다. 이들의 전체개런티는 수 백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대해 MBC 관계자는 "창사 40주년을 맞아 `세계 3대 테너' 초청공연을 추진하고 있다"며 "현재로는 구두계약 단계라서 개런티 액수 등을 밝힐 수는 없으나 정식 계약이 이뤄지는 대로 구체적인 계약 내용과 공연계획 등을 발표할 예정"이라고말했다.이탈리아 출신의 파바로티, 스페인의 도밍고와 카레라스의 `쓰리 테너'는 지난90년 로마 월드컵대회 때 처음 한 무대에 선 것을 시작으로 94년 미국 월드컵, 98년프랑스 월드컵대회에 이어 지난해 4월 남아공 인종차별정책 철폐 5주년 기념공연 등세계 각국을 무대로 활발한 공연을 벌여왔다.

2001년 6월,  파바로티를 포함한 삼대 테너가 모두 한국에서 공연을 했다는 기사였어요. 이 테너들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성악가들 답게 1990년 로마올림픽을 기념하여 첫 공연을 진행했대요. 그런데 최다판매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세계인들의 반응이 좋자... 그 후로 모든 월드컵 때마다 찾아가는 서비스로 고막에 즐거움을 선사하기 시작합니다. 
서울, 월드컵, 2002맞습니다. 찾아가는 서비스는 2002 한일월드컵 때 까지도 유효했고 전국민은 문화방송 MBC를 통해 쓰리테너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거예요. 생각해보면 이 시기 어느 즈음이 저희집에 루치아노 짜파게티가 자주 출몰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다시 말해, 엉망진창이었지만 아무튼 제가 이탈리아 성악의 혜택을 받고 자라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님 1990년 로마월드컵이 쏘아올린 공이었네요. 그렇다면 이 월드컵. 연례행사는 언제까지 이어졌을까요? 아쉽게도 그 다음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이유는 파바로티의 췌장암 발병이었습니다.
자유인 파바로티루치아노 파바로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곱슬곱슬한 머리털과 수염 그리고 커다란 몸집. 전 처음에 모든 성악가들은 노래를 잘하기 위해 몸통이 파바로티 만큼 커야하는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성악계에서 파바로티는 관리하지 않고 현재의 즐거움에 몰두하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대요. 그 성향은 음악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서 엄격하게 정해진 형식을 지키는 지휘자를 만날 때마다 파바로티는 괴로움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즉흥적인 삶을 즐기던 파바로티는 그 '느슨함'과 '푸근함'으로 전세계인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그 전세계인중엔 지금 거실에서 주무시고 계신 우리 아부지도 있구요.
좀처럼 건지기 쉽지 않은 귀여운 기억을 건져낸 것도 인연이니조간만 아부지에게 파바로티 노래를 청해봐야겠어요!처음 떠올린 우당탕탕 낭만 장아찌는 어떠셨나요?제법 괜찮아도, 영 구려도 다음 번엔 이번 것보다 더 맛이 좋을 겁니다😋

p.s 하도 이탈리아, 파바로티, 짜파게티 하다보니 짜파게티 먹고 싶네요.장아찌는 어쩐지 좀 피클 같기도 하네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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