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전 어제부로 몇 달간 이어진 프로젝트를 끝마쳤어요! (아직 잔잔 바리로 처리해야 할 것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끝내고 나니 너무 피곤해서 해가 저무는 때까지 잠을 자다 일어났습니다. 오전부터 편지를 쓰겠다는 제 계획은 이렇게 쉽게 무산됐어요🥲 각 잡고 노트북 앞에 앉으니 살짝 버겁지만, 많이 설렙니다. '편지'와 잘 어울리는 주제가 여름 3부작 중 오늘 다룰 '통기타'이기 때문이에요. 그럼 이제 청춘들의 마음을 담았던 듣는 편지, 통기타와 포크송에 관한 이야기!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듣는 편지, 사랑의 여름 : 히피와 포크송
'포크송'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하모니카와 기타 등 조촐한 악기 반주에 맞춰 고개를 주억거리는 가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떠올리는 아티스트와 풍경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크게 비슷한 테마를 떠올리는 이유는 포크송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발전한 음악이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포크음악의 탄생 시기는 60-70년대이고 탄생지는 미국입니다.
세계2차대전과 한국전쟁에 이어 베트남 전쟁까지 이긴 자도 진 자도 없는 전쟁에 끊임없이 참전하는 기성세대를 보며 미국의 신세대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반전, 사랑, 평화를 외치며 세계를 둘러싼 규칙에 반대하는 운동이 시작됩니다. 우리에게 흔히 '히피'로 알려진 자유로운 사람들은 그렇게 세상에 등장합니다.
평화를 되찾자, 서로 사랑하자, 전쟁 하지 말자.
이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분명하고 완고한 목소리가 가서 닿게 하려다 보니 필연적으로 가사의 중요성은 커지고 악기 의존도는 낮아졌지요. 기교가 많지 않은 간단한 기타 운주법이 널리 알려진 이유 역시 포크송의 영향입니다. 단정한 목소리로만 적어간 듣는 편지들은 넓은 미국 땅 구석구석을 넘어 캐나다로까지 흘러갔습니다. 이에 동의하는 숱한 젊은이들은 함께 모여 목소리를 내고자 작당모의 하는데요. 1967년 히피의 고향,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사랑의 여름이 그 결실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미국의 각 주는 물론 캐나다의 히피들까지 약 10만 명이 몰려들었던 1967년의 여름. 이 여름을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화답이라도 하듯, 이들은 음악을 만들어 배포하는데요. 스콧 맥켄지의 샌프란시스코가 바로 그 곡입니다.
가사를 한번 볼까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이 나라를 가로지르는 강한 떨림과도 같은 사람들의 운동
거기엔 모든 세대가 있어요
새로운 화합으로 모인 사람들의 운동
꽃을 꽂고 평화를 외치던 이날의 울림은 2년 뒤인 1969년, 록 페스티벌의 역사를 쓴 우드스탁 페스티벌로 다시 한번 멋지게 부활하게 됩니다. 반전과 평화 사랑을 외치던 히피들의 행보는 빛만큼이나 큰 그림자를 양산했습니다. 하지만 기타 반주 하나로 적은 담백한 이야기들은 오늘날까지도 거뜬하게 유효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모방에서 창작으로, K포크
대한민국 청춘의 여름, 장발의 대학생이 멘 통기타에서는 어떤 곡들이 연주되었을까요? 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엔 미국민요 등에 가사만을 새롭게 쓴 번안곡이 히트였습니다. 영화로도 나온 '세시봉'에서 연주된 음악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트윈폴리오의 웨딩케이크, 조영남의 딜라일라 같은 노래들 말이에요. 그때까지만 해도 포크란, 미국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음악이었다고 합니다. 모방으로 시작되었던 한국 포크계에 충격을 안겨준 사람은 대한민국 최초이자 마지막 히피로 불리는 한대수입니다.
미국에서 자란 한대수는 파격적인 앨범표지와 걸걸한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기며 등장했습니다.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 등의 노래는 젊은이들 사이에 몰래 듣는 노래로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들어보니까 어떠신가요? 어딘가를 긁는듯한 목소리와 파격적인 가사로 지금까지 포크송이라고 부르던 곡들과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드시나요? 여러분이 아는 ' 그 포크'의 지평을 넓힌 또 한 사람이 나옵니다. 페르소나로 무려 양희은이라는 대모를 앞세우는 민중가수, 김민기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번안곡을 주로 들었던 통기타 세대가 세시봉으로 대표된다면, 김민기를 주축으로 한 창작 포크송 가수들의 터전은 청개구리였습니다.
1970년대 청춘 문화의 터전, 청개구리
1970년대 6월 29일 명동 YWCA 직원 식당을 개조한 공간이 '청개구리'라는 청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이곳의 입장료는 99원이었고 입장하고 나면 원하는 청년 누구든 노래를 부르며 예술과 낭만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민기와 양희은, 송창식, 김도향, 서유석, 사월과 오월 등의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만나 각자가 만든 습작을 공연하고 합주했고요. 이 공간은 자연스럽게 한국 창작 포크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내게 됩니다.
떼창으로 나아가는 포크송, 민중가요
김민기와 양희은, 상록수와 아침이슬. 단순히 포크송이라고만 부르기엔 가슴 한 켠이 심하게 뜨거워지는 기분이 듭니다. 젊은이들의 분출하는 에너지를 제재하기 위해 정부에선 온갖 이유를 들어 다수의 창작포크송을 금지곡으로 지정했습니다. 1971년 아침이슬이 세상에 나왔을 땐 노랫말이 좋다며 상을 주더니 1975년엔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 오르고"라는 가사가 불온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름다운 노랫말로 사랑받던 아침이슬이 금지곡으로 선정되자, 정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침이슬의 물기는 민중에게 더 널리 촉촉하게 퍼져나가게 됩니다. 그 결과 87년 민주항쟁 때 애국가와 투톱으로 모두가 아는, 다시 말해 떼창이 가능한 음악으로 불리게 되지요.
잦아든다고 한들, 꺼지지는 않습니다. 우린 아직 전할 말이 많으니까요.
6, 70년대 히피로 대표되던 미국의 포크송은 그 이후 디스코와 록 등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여타 음악들에 의해 서서히 잊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포크 음악들 역시, 민중가요의 형태를 띠면서 방송에 나올 수 없어지거나 자극적인 음악들이 인기를 끌며 뒤안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포크송을 한 시기를 대표하는 음악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까닭이 있습니다. 그 어떤 음악보다도 '가사'가 중요한 음악. 듣는 편지라 할 수 있는 포크송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존재하는 한, 메시지가 가서 닿았으면 하는 수신자가 존재하는 한 필연적으로 사라질 수 없는 장르이기 때문이에요. 세대는 계속 바뀌었고 정권도 계속 바뀌었고 이슈도 고민도 계속 달라졌습니다. 이에 맞춰 듣는 편지 역시 송창식이, 김민기가, 해바라기가, 시인과 촌장이, 어떤날이, 김광석이, 시인과 촌장이, 브로콜리 너마저가, 장기하와 얼굴들이 각기 다른 메세지를 담백하게 전달해왔습니다. 숨 가쁘게 내달렸고 구석구석 건너뛴 부분들도 많지만 이만큼의 시간을 추적하다 보니 확신이 생겼습니다.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는 한, 포크음악의 수명이 다하는 날은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요.
오늘은 시대가 던지는 메시지, 듣는 편지 포크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퍼담아보았습니다. 처음 글을 쓸 때만 해도 먼지가 가득한 시절에서 마침표를 찍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막상 적어 담고 보니 가장 위에 얹혀 있는 장아찌는 씹자마자 생채소의 맛이 날 것 같네요. 2021년 6월 12일이 아침이슬 발매 50주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 이 편지가 닿는 오늘은 아침이슬이 세상에 나온지 51년 되고 하루 지난 어느 날이겠군요. 누구에겐 시시하고 누구에겐 위대한 이 정보가 닿은 게 보통 인연이 아닌 기분이 들어서 뚜껑을 닫기 전 아침이슬 하나 띄워올립니다.
그럼 전 이제 갑니다. 저 거친 광야로 서러움 모두 버리고...(대충 내일 출근해야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자러 간다는 뜻입니다.)
포크 음악을 정리하며 했던 지배적인 생각은, 포크 음악이 듣는 편지라고 생각하니 발신자보다 수신자의 존재가 실로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이 낡은 편지를 받아주시는 분들이 계셔 장아찌가 오늘도 배송됩니다. 앞으로도 낡았지만 유효한 낭만들로 찾아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한 주 뒤에 만나요(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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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팀장
202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포크가수는 누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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