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 #11] 사랑을 보는 두 시선

<체인지데이즈> 그리고 <환승연애>

2021.09.15 | 조회 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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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곰의 일희일비

일희일비하는 우리의 일상에 대해 씁니다

사랑이란 뭘까요? 언제 들어도 설레고 떨리지만, 또 사랑만큼 어려운 문제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 누구도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 그러나 꼭 자신만의 답을 내려야만 하는 문제. 일생을 걸고 꼭 풀어야만 하는 난제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요. 그리하여 오늘은 그 어려운 '사랑'을 서로 다른 언어로 정의한 두 프로그램, '환승연애'와 '체인지데이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2021년, 지금의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요?

 

 

사랑이란 뭘까?

 

누군가는 세상의 사람수 만큼이나 다양한 모양의 사랑이 있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사랑이란 그저 뇌가 만들어내는 화학작용일 뿐이라 단정짓기도 한다. 그만큼 단 하나의 무언가로 적확히 표현해내기 어려운 두 글자, 사랑. 사랑은 인류 역사와 함께해온 오래된 난제이며, 또한 언제나 우리에겐 영원한 관심사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그토록 고결하고 따뜻한 '사랑'이란 두 글자에 찬물을 끼얹는 새로운 시선들이 나타났다. 바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던 <체인지데이즈>와 <환승연애>라는 프로그램이다. <체인지데이즈>는 헤어지고자 마음 먹었던 남녀 세 쌍이 한 집에 머물면서 서로 파트너를 바꿔 데이트 해보고 자신의 기존 연인과 사랑을 이어갈지, 혹은 새로운 연인을 찾을지 결정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와 유사한 포맷인 <환승연애>는 이미 서로 이별을 고한 네 커플이 서로의 '엑스'를 숨긴 채 한 집에 모여 사랑을 키워가는 형식을 취한다.

 

이 두 프로그램은 유사점이 많다. 우선 '환승'과 '전남친/전여친', 그리고 '파트너 바꾸기'까지 기존 국내 데이팅 프로그램에서, 아니, 사실 연애 담론 전체에서 금기로 치부되어온 주제를 건드렸다는 점이 그렇다. 또한 소재의 파격성과는 달리 <하트시그널>의 원형을 변주해 커플들의 데이팅을 스튜디오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관찰하고 여기에 리액션을 더하는 구성은 사실상 이들을 '동일 포맷' 선상에 놓이게 만든다. 결국, 이들이 '하트시그널'(사실 하트시그널도 결국 어떤의미에서는 '테라스하우스'의 한국판이라 볼 수 있지만)의 파트너 체인지 버전, 혹은 하트시그널의 '엑스'버전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이 두 프로그램을 결정적으로 다르게 만드는 점은 소재도, 포맷도, 스튜디오 토크도 아닌 바로 '사랑을 보는 시선'에 있다. 우선 <체인지데이즈>는 사랑을 '설렘'으로 정의한다. 여기 모인 이들은 이미 '설렘'을 지나 생활의 영역에 서 있는 상태고, 이는 결국 개조되어야 할 무언가로 서로를 치부하게 만든다. 설렘의 시기가 지났기에 사랑은 당연하게도 힘을 잃었고, 다시 설레기 위해선 결국 이들은 '설레는 새로운 대상'이던, 혹은 남들이 내 연인을 보고 설레하는 순간이던 이 관계를 바꿀 '썸띵'이 필요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출연자들 중 가장 장수 커플인 성호-상미 커플을 소비하는 <체인지데이즈>의 시선이 이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데, <체인지데이즈>의 시선에 따르면 이들은 결국 어떤 의미로든 헤어질 수밖에 없는 '설렘을 잃은 사이'고, 그렇기에 이들은 죽일듯이 싸우고, 서로 면박주며, 왜 나를 사랑하지 않냐고 항변하면서도 동시에 내 연인이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연애하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결국 이 커플이 서로를, 그리고 다른 커플들을 소비하는 시선은 궁극적으로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설렘이 끝나고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은, 결국 서로의 민낯마저도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 철지난 '다른 사람 타령'의 진부함이라는 거. 바로 그 시선이 <체인지데이즈>를 보고 난 뒤 유독 씁쓸한 뒷맛이 남게 되는 이유다. 비록 그것이 '사랑'의 진실일지라도.

 

반면 <환승연애>가 그리는 사랑이란 모든 순간이 '과정'에 가깝다.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기 위해 이곳에 참가한 사람도, 또 충분히 오랜 시간이 흘러 서로의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이들도 이 공간 안에서는 모두 '사랑'이라는 이름의 과정을 겪는다. 이들은 서로 사랑했던 추억을 부정하지 않으며, 또한 서로를 밀어낸 순간에 대한 후회도 숨기지 않는다. 이들에겐 그 모든 지난 사랑의 부산물들도, 또한 그 안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설렘'이란 씨앗도 결국 자신의 안에 자리한 감정이 주는 고마운 선물인 것이다. 그리하여 <환승연애>안에서는 서로를 다시 받아줄 수 없는 미안함도, 앞에선 모질게 상대를 밀어낸 뒤 뒤돌아 흘리는 눈물도 모두 '공감'의 영역 안으로 수용된다. 이들은 결국 미련도, 고마움도, 미안함도, 추억도, 설렘도 모두 '사랑'이란 한 영역안에 있음을, 그리하여,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서 새롭게 '성장'해 나갈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환승연애에서 유독 전남친과 새로운 설렘 사이를 오가는 특정 출연자의 행동은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사실 그녀의 모습은 여타 데이팅 프로그램 참가자라면 누구나 보여주는 행동에 가깝다. 그러나 두 사람을 오가는 지극히 '하트시그널'스러운 서사는, <환승연애>라는 '사랑-성장'서사 안에서는 오히려 불협화음을 낸다. 오히려 그녀보단 지난 연인의 취향에 맞는 운동화를 함께 골라주는 다른 출연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랑을 통한 변화와 성장의 서사를 읽을 수 있다. 그리하여 결국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그녀의 행동들은 사랑을 '설렘들'사이로 협소하게 정의하도록 만들며, 동시에 다른 출연자들이 보여주는 '사랑'이란 이름의 책임감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유독 그녀의 행동에 조금은 박한 평가를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그녀가 <체인지데이즈>에 출연했다면 몰표 여신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녀 행동의 문제라기 보다, 이 서사 안에서 그녀의 역할이 너무 좁게 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토록 닮은 두 프로그램은, 결국 '사랑'이란 단어를 포착하는 방식으로 인해 서로를 구분짓게 만든다. 누군가는 <체인지데이즈>가 말하는 '설렘'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려 이들이 가장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뿐이라고, 누구나 결국 사랑앞에선 이기적일 수밖에 없노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찝찝한 뒷맛'대신 <환승연애>의 출연자들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 사랑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연애를 통해 늘 무언가를 배워왔으며, 또한 서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왔던 지난 연인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로 커올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들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결국 '연애'라는 행위는 우리 삶 속에서 꼭 필요한 자양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설렘만으로, 또는 한 때의 추억만으로 '사랑'을 정의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이 모든 과정들을 사랑이란 이름 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성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결국 소재는 중요하지 않았다. 소재가 아무리 파격적이어도, 아무리 예쁜 남녀노소를 기막힌 풍광 속에서 보여준다고 해도, 결국 프로그램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바로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여전히 '프로듀서'가 프로그램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고 믿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사랑'이란 진부한 주제와 '환승'이란 파격적인 소재 사이에서 '개연성'을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공감과 성장의 서사를 이끌어 내는 것은 오롯이 피디의 몫이다. 그리하여 이번 게임에서 나는 <체인지데이즈>보단 <환승연애>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겠다.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삶과 사랑을 소중히 대하는 우리의 자세일테니 말이다.

 

결말까지 얼마 남지 않은 두 프로그램은 결국 어떤 끝을 맞게 될까? 한 켠에서는 로또 추첨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른 한 켠에서는 청춘 드라마를 보는 마음으로, 결말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이들의 사랑의 끝이 무엇이건간에, 나 역시 그 끝에서 삶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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