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서울 미술관에서 열리는 ‘투명하고 향기 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이라는 작은 전시에 딸과 함께 다녀왔다. 사실 근처에 갔다가 무슨 전시가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들렀는데, 마침 도슨트의 설명도 진행되고 있고 해서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신미경 작가는 비누를 사용한 작품을 꾸준히 해 오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도슨트의 설명에 따르면, 미술관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 전시를 의뢰했고, 작가는 어린이들을 위해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면서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천사’라는 소재도 어린이들을 고려한 선택인 것 같았다.
전시장 벽과 바닥은 새빨간 색이었고 고전적인 천사 회화가 벽의 한 쪽에 프린트되어 있었다. 커다란 것은 어린아이 정도의 크기에서 작은 것은 손바닥만 한 것까지의 각종 천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가는 비누를 끓여서 틀에 부어 작품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품들은 매끈하고 만질만질해 보였다. 인상적인 것은 색깔이었는데 대리석같이 하얀색부터 예쁘고 다양한 색상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같은 틀에 다른 색의 비누를 부어 만든 듯한 연작 천사 작품이 중앙에 높이를 달리하여 전시되어 있었다.
여러 가지 색상의 끓는 비누를 부어 만든 회화 모양의 작품들도 벽에 걸려있었는데, 크기가 꽤 큰 것도 있었다. 작가의 신호에 따라 조수(?)들이 각종 색깔의 비누를 각 방향에서 붓고 그것이 섞이면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했다. 흠… 그러면 공동작품이 아닌가 싶지만 그냥 작가의 작품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조수 중 한 명이 작품 앞에 서서 '저 분홍색은 내가 부은 거야'라고 말하는 상상을 했다. 작가는 나중에 토치로 표면을 고르게 하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아이디어는 작가의 것이니 작가의 작품인 것일까. 현대 회화에서는 반복적이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은 조수들이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 어쨌든 현대에는 혼자서는 못하는 작품이 많다.
비누라는 재료와 천사라는 소재가 결합하면서 비누의 투명성이라든지 거품이 되어 버리는 일시성 같은 특성이 잘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왔던 것은 향기였다. 작품마다 향기가 있었는데 작가가 의도적으로 향수를 섞은 것이었다.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고 또 사라진다는 점에서 향기는 천사라는 존재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온통 빨강이었던 1전시실을 벗어나 이번에는 하얗게 칠해져 있는 2전시실로 가면 작가의 작업 영상과 향기에 대한 체험 코너 또 여러 소품 같은 알록달록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 코너였지만 전시실이 비어 있어서 딸과 둘이서 작품에 섞었다는 향수가 담긴 통을 열어 향기를 맡았고 향기를 맞춰보라는 코너에서 킁킁거리며 정답을 맞혔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개한 대로 화장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는 비누로 만든 작품이 비누 대신으로 세면대 옆에 놓여 있어서 그 작품으로 손을 씻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관객들은 그렇게 작품에 거품을 내며 조금씩 작품을 없애며 손을 씻게 된다. 신기해서 이곳도 문질 저곳도 문질 하며 여러 번 손을 씻었다. 뭔가 관객을 굉장한 부자처럼 느끼게 하는 프로젝트였던 것 같다. 작품을 없애면서 손을 씻다니.
생각보다 작품은 예쁘게 녹지 않았다. 굴곡진 곡면에 남은 비누 자국은 거뭇한 갈색으로 말라붙어 있었고 비누는 거품이 잘 나지 않았다. (보통의 비누는 끓지 않으며 작품에 사용된 비누는 특별한 비누라고 한다) 게다가 나중에 보니 비누가 독했는지 아니면 손을 너무 오래 씻었는지 손끝이 좀 갈라졌다. 그다지 실용성이 뛰어난 비누는 아니었던 셈이다.
딸과 오면서 예술의 실용성에 대해서 작가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또 미술관의 큐레이팅과 홍보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목을 좀 다르게 붙이고 홍보를 다르게 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을까 싶었던 좋은 전시였다. 시각 후각 촉각이 모두 즐거웠다.
가을날에 어울리는 전시지만 이미 6월부터 5개월 이상 진행된 전시고 내년 5월까지 계속된다. 아마 초반에는 더 많은 관객들이 찾았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SeMA - 전시 상세 - 《투명하고 향기 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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