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친정에서 살았다. 산후조리를 하고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출근도 그곳에서 했다. 동생네도 그런 수순을 밟아서, 한동안 친정은 아홉 명의 식구들(부모님, 우리 식구 셋, 동생 식구 넷)로 북적였다.
생일에는 가족들이 외식을 했는데, 아홉 명의 식구들이니 일 년에 아홉 번의 외식을 했다. 점차 커 가는 아이들은 자신이 어디를 가고 싶다고 의견을 냈다. 각자의 식성이 다르다고 호기롭게 뷔페를 가기도 했지만 점점 우리끼리 대화할 수 있는 단촐한 식당을 좋아하게 되었다. 식사를 하고 케이크에 초를 꽂고 노래를 부르고 어린 사람들부터 한 사람씩 선물을 주며 사진을 찍었다. 생일은 곧 파티와 선물과 케이크와 촛불을 의미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선물이었다. 가장 어린 사람부터 한 사람씩 선물을- 어린 조카들은 직접 만든 카드였다- 전달하고 마치 장학 증서를 수여하듯 포즈를 취하고 이후에는 별로 다시 찾아보지 않게 되는 사진을 찍었다. 무엇이든 손이 크고 풍성한 우리 어머니는 부부 생일에는 배우자 것까지 챙겨 선물하시고 12월이면 성탄 선물을 모두에게 함께 주시기도 하셨다.
입시로 대학 생활로 바쁜 손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뵙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 되었지만 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서로의 생일에는 모인다. 주위에서 올케 생일까지 챙기느냐고 놀라는데 이런 연유에서다.
지난 겨울 내 생일은 이태리 식당에서 했다. 이제는 한 집이 아니라 각각의 집에서 살고 있고 조카들은 시험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메뉴를 보고 무척 고민하면서 이상한 이름의 파스타와 리소토를 각각 시켰지만 결국에는 모두 나누어 먹어서 자기가 시킨 것보다 남들이 시킨 것을 더 많이 먹었다. 다들 궁금해하는 근황도 나누고 미국의 마약 사태와 대선을 함께 걱정했다. 이제 20대가 된 딸은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며 얻은 마약 카르텔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해서 할아버지에게 아는 것도 많다는 칭찬을 들었다. 조카들이 안 와서 손녀 대표로 혼자서 이쁨을 많이 받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케이크가 반입이 안되는 식당이라 조각 케이크를 주문해서 초를 꽂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는 작게 해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엄마는 요즘 유행하는 숏 패딩을 동생은 발열 조끼를 선물했고 참석하지 못한 조카의 선물까지 전해주었다. 올리브 영에서 정성스럽게 고른 듯한 핸드크림이었다.
잘 먹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선물도 받고 그날의 주인공이 되어 케이크 위 촛불에 불도 끄면서 생각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이런 날이 일 년에 아홉 번이나 되다니 정말 행운이다!
며칠 전 외국에 사는 한 친구의 생일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만나서 축하해주지는 못하지만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에 응원을 전한다. 그곳에서도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한 사랑과 축하를 가득 받기를…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