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삶

P 선생님 이야기_월요

2024.10.22 | 조회 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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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한동안 대안학교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작은 규모에 교사들도 자원봉사자들이 많아서 아이들 실력이 들쭉날쭉했다. 가르친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닌데 어떨 때는 아무리 가르쳐도 안 되나 싶은 순간들도 있었다. 점수도 쉽게 오르지 않았다. 이게 아이들의 한계인가 싶었다.

그런데 영어보다도 한참 아래였던 아이들의 수학 점수가 오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평균을 깎아먹던 수학 점수가 과목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내게 되었다. 어떤 한 열정적인 수학 선생님이 오신 후의 일이었다. 오~ 잘 가르치시는 분이신가 보지? 이렇게 묻자 한 학생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 선생님은 포기를 안 하세요. 마음에 남는 대답이었다. P 선생님은 일주일에 두 번 화목에 오셔서 저녁때까지 계시면서 아이들 하나하나 야간 자율학습까지 시키고 가신다고 하셨다. 나처럼 수업만 꼴랑하고 가는 교사와는 정도가 다른 헌신이었다. 내가 부딪힌 한계는 아이들이 아니라 교사인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씁쓸히 자각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일본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누가 가르치냐 물었더니 P 선생님이 가르치신단다. P 선생님이? 수학 전공 아니셨어? 그랬더니 아이들이 이구동성 대답했다. 그 쌤 일본사람이에요~ 나는 깜짝 놀랐다. . P 선생님은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셨기 때문이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분이었다. 게다가 자기 아들까지 데리고 와서 아이들 나머지 공부에 투입했다. 착하고 순한 아들은 별말 없이 자기 또래의 아이들과 위화감 없이 어울리며 수학 보조교사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복도나 복사기 앞에서 마주치고 인사만 하는 사이였는데, 학교가 어려움을 당하고 P 선생님이 임시로 교감을 맡게 되면서 점차 더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그곳에서 교감선생님의 임무는 모자라는 교사들을 구하고 아이들 삼시 세끼를 책임지는 일이었다. P 선생님은 수학과 일본어 뿐만이 아니라 교사가 부족한 모든 과목을 감당하셨고, 이전에 아침을 걸렀던 아이들은 일본식 구운 주먹밥이나 토스트로 아침을 먹게 되었다. 교사들이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면 앞치마를 입고 나와 허리 굽혀 인사를 하셨다. 그전에는 받아본 기억이 없는 따뜻한 배웅이었다. P 선생님은 이제 한 주 내내 학교에 나오신다고 했다. 학교가 규모는 줄었어도 P 선생님 덕분에 점점 따뜻해져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끔 저녁에 있는 학생들끼리 하는 예배에 가면 학생 반주자가 펑크를 냈다고 P 선생님이 반주를 하고 계셨다. 아이들 합창 지도도 하기도 하셨다. 아이들은 P 선생님의 잔소리를 즐겁게 듣고 엄마처럼 대했다. 선생님 옆에는 항상 아이들이 붙어있었다. 아이들뿐이 아니었다, 나를 포함한 선생님들도 무슨 일만 생기면 P 선생님을 찾았다. 학교는 그렇게 P 선생님 덕분에 내실을 유지했다.

학교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P 선생님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되었다, P 선생님은 일본에서 나고 자란 기독교인이셨다. 일본에서 한국 장신대 신대원으로 유학을 와서 배우자를 위한 기도 제목이었던 ‘돈 없어도 평생 목회 포기하지 않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셨고 현재 남편은 원목(병원을 담당하는 목사)이라고 하셨다. 수학 전공이신 줄 알았다고, 어쩜 그리 수학을 잘 가르치시느냐 했더니 수학이 아니라 사회복지 전공이고 일본 고아원 직원으로 근무하신 적도 있다고 하신다. 원목이신 남편과 가정교회를 하면서 모이는 아이들 대상으로 공부방 사역을 했는데 그 아이들이 다 대학에 가면서 사역이 자연스럽게 마무리되다가 여러 인연으로 이곳을 만났단다.

어느 날 갑자기 학교가 천안으로 옮긴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들 슬퍼하고 이별을 준비하는데 그런 과정에서도 P 선생님은 교사들에게 아이들이 갑작스럽지만 감사의 밤을 준비한다고 꼭 오시라고 했다. 자기들끼리 돈을 걷어서 맛있는 것을 마련한다고 했다. 아니 아이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내가 중얼거리자 P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이들도 배워야 되니까요. 정말 할 말이 없게 만드셨다.

감사의 밤에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었다며 샌드위치에 주먹밥과 샐러드를 차려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치킨과 마라탕을 주문해 놓았다. 각기 쓴 편지를 읽고 노래를 부르고 교사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가장 큰 감사를 받아야 할 P 선생님은 그 때도 여전히 주방에 계셨다. 이사의 과정에서도 짐을 내놓고 청소하고 힘을 다해 일하셨다. 천안에 함께 가지 못하고 서울에 머물러야 하는 학생과 같이 방을 구하러 다니시고 다들 교회에 연결시켜주려 애쓰셨다. 떠나버린 학교에까지 쏟아부은, 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수고는 정말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다.

학생들은 이사를 가고서도 계속 P 선생님을 찾았다. 자녀들이 대학에 가서 비어 있는 방이 학생들이 묵어가는 게스트룸이 되었다. 서울 와서 병원 갈 때, 대사관에 비자를 받을 때, 대학교 면접을 보러 갈 때 학생들이 교대로 와서 며칠씩 묵고 가곤 했다. P 선생님은 아직도 학생들에 대해 관심을 끄지 않으신다. 흩어진 학생들 교회 계속 다니고 잘 지내고 있는지 때때로 확인하시고 학생들의 일에 같이 안타까워하시고 또 함께 기뻐하신다.

나의 한계를 삶으로 지적해 주는 존경할 수 있는 인물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인생에 얼마나 큰 행운인가를 생각해 본다. P 선생님을 옆에서 보며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또 겸손해질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 수고와 사랑을 아시는 주님께서 P 선생님 삶에 각 지경에 복된 은혜의 소낙비를 내려 주시기를 그리고 나도 조금은 P 선생님을 닮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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