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부부가 우리를 집으로 초청했다. 교회에서 만나자 막무가내로 날짜를 잡자고 한다. 밖에서 먹자고 해도 굳이 집으로 오란다. 새 오븐을 들였다고 직접 구운 빵도 사진으로 보여준다.
과일과 디저트를 들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S 집에 방문했다. 훌쩍 큰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들이 인사를 하며 우리를 맞는다. 우리 눈앞에서 반죽이 오븐에 넣어지고 정성 들인 음식이 차려진다. 샐러드와 두 가지 종류의 카레 그리고 닭고기 비리아니. 그동안 오븐에서 막 구워진 난이 먹음직스럽게 식탁 가운데를 차지한다. 아이들은 조잘조잘 우르드어로 대화했다. 바깥은 서울이지만 집 안은 작은 파키스탄이 된 것 같다.
S 가족은 파키스탄에서 왔다. 남편은 파키스탄의 목사인데, 교회가 부흥하자 위협을 느낀 무슬림 종교 지도자 이맘이 목사님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파키스탄에서는 이렇게 이맘이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있단다. 그리고 사법부가 내리지도 않은 그 사형 선고는 공동체에서 강력한 효력을 지녀서 누구든지 그 사람을 죽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목사님 가정은 죽음의 위협을 피해 외국으로 피신해야 했고 긴 시간 우여곡절을 거쳐 우리를 만났다. 현재 영어를 잘 하는 S는 국제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고 남편 목사님은 우리 교회 부목사님으로 일하고 계시다.
남편은 교회에 난민센터 어필(APIL)을 소개하는 역할을 했었는데, 어필을 통해 S 가족이 우리 교회와 연결되었다. 집이 멀어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S는 나를 언니라고 남편 목사님은 우리 남편을 형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S 가정을 통해 나는 그들의 환대의 문화- 차 한 잔을 놓고 한밤중까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좁은 집이라도 좀 부족해도 따뜻한 환대가 사람을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도 배웠다.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져서 한국에 머무를 수는 있게 되었지만 난민으로 인정되기까지는 몇 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래도 S 가정은 운이 좋은 경우다. 많은 신청자들이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다. 난민 심사는 무척 까다롭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피신하는 난민이 관련 자료를 잘 갖추어 제출하기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S가 국제기구에서 일했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S의 가정은 아직 귀화 단계에 있다. 모든 서류를 제출하고 시험에 합격했지만 귀화의 과정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과정이고 오랜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낯선 외국인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새롭게 한국어를 배우며 사는 쉽지 않은 삶이 시작되었다. 집 앞에 있는 도서관에서 카드 하나 만들기도 어려운 삶이었다.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미국에 계신 아버지가 위독할 때 가 볼 수 없어서 함께 안타까워 울기도 했다. 결국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교회에서 S의 아버지를 위한 작은 추도 예배가 열렸다.
쉽지 않은 삶이지만 그 가정은 웃음과 따뜻함이 가득하다. 우리를 위해 계속 기도한다고 했다. 목사님이 담당하고 계신 외국어 예배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고 오후에는 파키스탄 기독교인 두 가정과 함께 파키스탄어 예배도 시작했다.
직접 구운 고소하면서도 쫄깃한 난을 떼며 카레와 시그니처 메뉴인 비리아니를 배불리 먹은 후에 S는 두 개의 냄비에 파키스탄식 밀크티를 끓였다. 진한 밀크티는 우리가 가져간 롤케이크와 아주 잘 어울렸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아시안 컵 축구에 대하여 각자의 일들과 자녀들의 근황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한국말이 여전히 어렵다는 이야기와 서울의 봄을 보고 나니 한국 사람들이 무서워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심각하게 한국의 현대사와 파키스탄의 정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깔깔 웃고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내일 설교 준비하셔야 할 목사님을 너무 방해하는 것 같아 집으로 왔다. 밀크티 덕분에 또랑또랑한 밤이다. 이렇게 좋은 이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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