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을 경험하는 일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드문 일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끔 법정 드라마를 보면서 간접적으로 법정을 경험하고 상상하게 되지만 정작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법정에 직접 와서 보게 되면 드라마와 다른 현실에 실망 아닌 실망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재판을 앞둔 가족들 입장에서는 실망감을 느끼기보다는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에 가슴을 졸인다.
재판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다름 아닌 탄원서를 쓰는 것이다. 탄원이란 사정을 하소연하여 도와주기를 바라는 것인데 이런 내용으로 만들어진 서류가 탄원서다. 가족들의 경우 탄원서를 처음 작성하게 되다 보니 다들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막연하기만 하다. 그래서 어떻게 쓰면 되는지 물어본다. 가족이 재판을 받게 되는 것도, 법정에 가는 것도, 탄원서를 쓰는 것도 모두 처음이다 보니 다 낯설 수밖에 없다. 실제로 탄원서가 도움이 되는지, 판사님께서 읽어보시는지, 어떻게 써야 판사님이 피고인을 조금이나마 선처해 주시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나면 가족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탄원서를 작성한다. 물론 마음만큼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속상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너무나 잘 써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으면 돈을 주고 탄원서 작성을 맡긴 사정을 듣기도 한다. 그럴 때면 진심을 담아 그냥 써보시라는 말을 하곤 한다. 세상 사람들이 다 비난해도 가족은 비난만 할 수 없으니 그 안타까운 마음을 전달해 보시는게 어떠시냐고.
이렇게 탄생한 탄원서를 통해 때때로 몰랐던 피고인과 그 가족의 사연을 알게 될 때도 있고 부모님의 진심을 엿보게 될 때도 있다. 대부분은 부모님이나 배우자의 탄원서를 보게 되는데 특히나 자식을 위해 쓴 부모님들의 탄원서는 자책과 후회의 마음이 가득 전해진다. 부모님의 이혼이나 어려운 가정 형편이 자녀를 범죄로 빠뜨린 것 같다며 자식의 잘못을 모두 자신들의 탓이라 여긴다. 그러나 능력 있는 부모님이어도, 이혼하지 않은 부모님이어도 자식이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데도 그렇다.
마약사건에서의 부모님들은 부자건 아니건, 많이 배우셨건 못 배우셨건 다들 자책을 하시며 판사님께 용서를 구한다.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식은 자식이다. 나이 어린 자식에 대한 탄원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자식의 나이가 어릴수록 부모님들의 탄원은 더 강한 어조로 표현된다.
얼마 전 의뢰인의 부모님이 한번 봐달라며 탄원서를 보내왔다. “존경하는 판사님” 이렇게 시작했다. 너무나 솔직한 부모님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선처를 해달라기보다는 엄벌에 처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간 마약으로 중독된 자식 때문에 가족들이 너무도 힘들었다고. 그래서 정신 차리고 나올 수 있게 처벌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변호인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제출하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쓸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의 마음을 모를 바는 아니었다. 마약을 하면 어떤 이는 난폭해지기도 하고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망상으로 온 집을 다 뒤집어 놓기도 하고 심지어는 가족들까지 의심하니 가족들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가족들은 마약을 하면 어떻게 사람이 변하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고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데 그렇다고 자식을 함부로 신고해서 잡아가라고 하지도 못한다. 누구에게도 차마 자식이 마약을 했다고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런 자식이 발각되어 처벌을 받게 되니 가족으로서는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에 처벌을 받게 되면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통상 형벌을 받고 나면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마약중독은 처벌만 받는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 부모님은 엄벌 탄원서를 제출하셨다. 그 탄원서를 보신 판사님은 어떤 선고를 하셨을까? 오늘도 자식을 위해 눈물지으며 탄원서를 쓰고 계실 부모님들께 전하고 싶다. 너무 자책 마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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