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만나면 책을 선물하는 선배가 있다. 책을 좋아하는 목사님이다. 늘 세심하게 고른, 깊이가 있는 신앙서적들을 주셨는데 한 번은 예쁜 표지의 소설책을 선물로 주셨다. 남편은 받아오는 담당이고 나는 읽는 담당이라 기쁘게 책을 펼쳤다. 『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를 처음 알게 된 책이었다.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작가가 오헨리였다면 나에게 작가 리스트를 써볼까 싶은 마음이 들게 한 작가는 메이브 린치다. 지금은 고인(1940-2012)이 되었지만 죽기 전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던 아일랜드의 국민 작가다. 활동 당시에도 많은 작품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렸다고 하는데 정작 한국에는 유명하지 않았던 작가인 것 같다. 어쩌면 아일랜드 작가여서인지도.
그녀의 군더더기 하나 없는 문장과 소설의 빠른 전개에 코를 박고 책을 읽으며 아일랜드를 만났다. 독립 투쟁에 대한 영화도 보고 먼 나라 이웃나라에서 소개한 내용도 읽은 기억이 나는데, 나는 여전히 아일랜드는 스코틀랜드나 웨일스 같은 영연방인 줄만 알았다. 정리하자면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영국과는 다른 어엿한 한 국가다. 비록 영국 바로 옆 섬나라로 영연방의 일부인 북아일랜드와 개방된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전통 아일랜드어인 게일어보다 영어가 더 많이 쓰이고 또 역사적으로 영국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해도 말이다. 또 타국에서 여전히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일하며 아일랜드를 그리워하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삶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미국인이나 아일랜드인이나 다르게 느끼지 않는 것과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다르게 느끼지 않는 것이 마찬가지일 수도 있겠다.
소설은 따뜻하고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 키치가 매력적이다. 보통 이러한 소설의 중심인물이 되는 여주인공은 감정이 풍부하고 사랑스러우며 순수한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키치는 그 전혀 반대의 여성이다. 소설은 고 저택이었던 스톤 하우스가 어떻게 키치가 운영하는 호텔이 되었는지 그리고 첫 손님들이 일주일 동안 어떻게 치유와 변화를 경험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 대부분에서 키치는 절도 있게 손님들을 맞고 재빨리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고 과묵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현명한 조언을 해 주는 중년 여성으로 그려진다
손님들의 사연에서 시작하는 에피소드 형식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매력이 있으면서도 전체 이야기가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그 겨울의 일주일』은 메이브 빈치 사후에 발표된 마지막 작품이다. 유작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연작 시리즈가 나왔을 텐데 싶게 주변 인물들, 특별히 고단한 삶을 꿋꿋이 이겨나가는 여성 캐릭터의 모습이 매력적이다.
이 책을 읽고 메이브 빈치의 소설이라면 무조건 집어 들게 되었지만 번역서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다. 『체스트넛 스트리트』 역시 에피소드 중심의 아일랜드의 한 작은 마을 이야기를 담고 있어 재미있다. 『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하는 단편집이다. 두 편 다 『그 겨울의 일주일』의 다른 버전 같은 따뜻하면서도 위트 가득한 책들이다. 『비와 별이 내리는 밤』이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의 공식을 따르고 게다가 배경까지 그리스라서 좀 아쉬웠다면 비교적 최근에 번역된 『풀 하우스』는 짧지만 작가의 역량이 남김없이 드러나 있는 소설이다.
(여기서는 철없는 자녀들을 독립시켜야 하는 아일랜드 중년 부부의 이야기가 경쾌하게 펼쳐지는데 부모의 입장에서 읽으면 무척 속이 시원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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