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삶

커피 이야기_월요

2024.02.05 | 조회 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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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대학 시절 커피는 자판기 커피였다. 물론 생일 때 모여 돈까스를 시켜 먹으면 후식으로 나오는 원두커피가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나눠마시던 따뜻한 자판기 커피가 더 떠오른다. 동전을 넣고 자판기 커피를 뽑아 꺼져가는 소파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 떨던 기억들, 학교 건물마다 있는 커피 자판기의 맛이 다르다며 가장 맛있는 커피 자판기를 신중히 고르던 그때의 기억은 떠올리기만 해도 달콤하다.

회사에서도 아침마다 커피 한 잔을 타서 아껴 먹으며 업무를 시작했다. 모든 커피믹스를 밀어내고 달달한 맥심 모카 골드가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회사 후배들이 점심시간에 테이크 아웃 잔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니 공짜로 타먹을 수 있는 믹스커피가 탕비실에 있는데 밥값 되는 커피를 사 먹다니! 그게 20여 년 전 일이다. 그런 문화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테이크 아웃 커피는 루틴이 아니라 별식 같은 것이었다. 여전히 직장인들의 카페인은 커피 믹스와 자판기가 책임지고 있었다.

미국에 얼마 되지 않게 머무를 때, 그 낯설고 엄벙덤벙하던 시절, 한인마트에서 100개들이 맥심 모카 골드 팩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극도의 절약을 지향하던 시간이었지만 그것만큼은 나를 위해서 망설임 없이 덥석 집어 들었다. 부엌에 쟁여놓고 매일 하나씩 타먹으면서 한국 생각도 하고 외로움도 달랬다. 

그렇게 야금야금 첫 번째 팩을 비우고 있었는데, 출석하던 교회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사순절을 맞아 (순이란 우리나라 말로 10을 가리키기도 한다) 40일 동안 각자 좋아하는 것을 금식하기로 했다. 주일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캔디나 스낵 혹은 TV 시청을 금식하기로 각자 정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소그룹 모임에서 하나씩 이야기하는데 특이하게 탄수화물을 금식하겠다는 자매도 있었고 오후 간식을 금식하겠다는 자매도 기억이 난다. 한 자매는 온라인 쇼핑을 금식하는 대신 직접 가서 사겠다고 했다.(응?) 나는 그 소소한 즐거움 - Korean instant coffee를 금식하기로 했다. 인스턴트가 아닌 커피는 괜찮을까요?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는데, 모두 아주 심각하게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모임을 인도하던 집사님이 진지한 눈빛으로 그건 다른 거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던 모습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이렇게 모카 골드가 가고 커피는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찾아왔다. 오전에 하는 여성도 대상 성경공부가 생겼는데 한 사람씩 돌아가며 간식을 준비했다. 거의가 베이글에 크림치즈 한 통 그리고 대용량 보온팩 커피 한 박스를 종이컵과 우유 한 팩과 함께 준비해 왔다. 요즘은 스타벅스에서 투고백이라고 해서 많이들 알려져 있는데 그 당시 나에게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발라 먹으며 원두커피에 우유를 고소하게 타먹는 맛이 어찌나 좋던지, 성경공부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 간식 먹으며 즐거웠던 분위기는 기억이 난다.

나의 커피 사랑은 이제 라테로 옮겨졌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다양한 커피와 다양한 우유를 조합하여 나름대로 가성비 높은 라테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동네에 새로운 카페가 생기면 찾아가기도 했다. 이제 자판기 커피가 아니라 라테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나는 카페인에 약하구나.

나 보러 극복해 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카페인에 무지하게 약하다. 어떤 분은 나이가 드니 도리어 강해졌다는 분도 계시는데 나는 더 약해져 가는 것 같다. 커피를 마시게 되면 누구나 그렇듯이 각성이 되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는데, 문제는 그 힘이 미래에서 꾸어오는 힘이라는 데에 있다.

커피 마신 것치고는 꽤 잘 잤는데? 싶게 잠을 잤다 해도 다음 날 온몸이 나른하게 힘이 빠진다. 물론 커피만 그런 것은 아니고 카페인이 포함되어 있는 음료수가 다 그렇다.

커피를 줄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우선 설교 시간에 졸지 않으려고 토요일 하루는 커피를 먹지 않기로 했다. 혼자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누가 사주면 고맙게 마시기로 하다가, 되도록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기로 하다가,,,. 디카페인 커피는 괜찮을지 아침에 먹는 커피는 괜찮을지 여러 검증 단계를 거쳤는데, 디카페인 커피도 카페인이 100퍼센트 제거된 것은 아니기에 그다지 좋은 대체물은 아니었다.

결국 되도록 커피는 마시지 않기로 했다. 커피와 멀어지니 확실히 잠은 잘 잔다. 그리고 커피를 안마시겠다고 마음 먹으니 커피의 욕구에서 자유로와진 부분도 있다.

이렇게 썼지만 커피를 아예 안마시는 것은 아니다. 신랑 커피를 한 모금 뺏어 마시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안될 멋진 기회는 놓치지 않기도 한다. 바로 며칠 전에도 근사한 식당에서 후식으로 나오는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했다.

물론 이런 기회에도 다음 날의 일정을 고려해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마음껏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나의 약한 부분을 알고 절제할 수 있는 것을 배우는 것도 좋은 경험인 것 같다. 커피 없어도 살 수 있다. 어쩌면 더 잘,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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