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면, 나도 처음엔 단순하게 봤다. 귀여운 그림을 붙이면 잘 팔린다고. 디자인 교체,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오래 보고 나서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편의점 냉장고에서 짱구 얼굴이 그려진 캔을 집는 사람은 음료를 사는 것이 아니다. 짱구 팬이 그 편의점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다.
여기서 갈린다. IP 콜라보를 디자인 변경으로 이해한 회사는 매번 같은 질문을 한다. 왜 우리 콜라보는 반응이 없나. 반응이 없는 것이 아니다. 팬이 없는 IP를 골랐거나, 팬이 있어도 우리 고객과 겹치지 않았다. 둘 중 하나다.
IP가 가진 힘은 하나다. 팬이다.
팬층 이관이라고 부른다
IP에는 팬층(Fan Base)이 있다. 그 IP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짱구를 20년 넘게 봐온 90년대생. 헬로키티에 어린 시절 기억이 있는 40대. 포켓몬 게임을 지금도 하는 2030 남성. 이 팬들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라이선서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자산이다.
라이선시가 IP를 빌리는 순간 이 팬층이 움직인다.
작동은 이렇다. 팬이 매장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발견한다. 그 순간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 그 브랜드로 옮겨 붙는다. 이 브랜드가 나를 안다는 느낌이다. 의식해서 떠올리는 생각이 아니다. 감정이 먼저 움직이고 행동이 따라온다.
이것을 팬층 이관이라고 부른다. IP의 팬층이 라이선시 브랜드로 옮겨오는 것이다. 라이선시는 로열티를 내고 팬층을 빌리는 셈이다. 광고로 새 고객을 설득하는 것보다 이미 만들어진 팬층을 데려오는 쪽이 빠르다.

숫자로 보면 이렇다
2025년 7월 말, 컴포즈커피가 산리오캐릭터즈와 협업했다. 여름 한정 메뉴와 굿즈를 함께 냈다. 굿즈는 출시 6일 만에 누적 10만 개를 넘겼다.
2026년 1월 15일, 이디야커피가 리락쿠마와 협업했다. 겨울 딸기 시즌 음료 두 종과 굿즈를 같이 냈다. 첫날 굿즈가 5만 개 팔렸다. 그날 전국 매장의 평균 매출은 전날보다 42% 올랐다. 시즌 음료 두 종은 각각 이 회사 다른 신제품 평균의 두 배 넘게 나갔다.
하루에 매출이 42% 오른다. 디자인을 바꿔서 나오는 숫자가 아니다. 리락쿠마 팬들이 그날 이디야를 찾아온 것이다. 이디야를 고른 것이 아니라 리락쿠마를 따라왔다가 이디야를 경험했다.
두 건의 공통점은 캐릭터의 인기가 아니다. 겹침이다. 산리오 팬층은 2030 여성에서 두텁다. 컴포즈커피가 필요한 고객과 같은 사람들이다. 리락쿠마도 비슷하다. 둘 다 팬층과 타깃이 같은 사람을 가리켰다.
팬층이 없으면 이관도 없다
조건이 있다. 그 IP에 팬층이 있어야 한다.
팬이 없는 IP를 정성껏 붙여도 옮겨올 팬이 없다. 예쁜 그림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 예쁜 그림은 구매 동기가 아니다. 팬심이 구매 동기다.
나는 이것을 미피에서 봤다. 딕브루너 코리아 대표로 미피를 맡고 있을 때다. 미피는 1955년에 나온 그림책 캐릭터다. 글로벌에서는 60년 넘은 강한 IP였다. 네덜란드와 일본에는 거대한 팬덤이 있었다. 한국은 달랐다. 인지도가 없지는 않았지만 라이선시가 줄을 서는 단계는 아니었다. 본사가 한국에서 라이선시 한 곳 한 곳을 모셔와야 했다.
같은 IP인데 시장마다 팬층의 두께가 다르다. 글로벌 명성은 우리 시장의 팬 수와 같은 말이 아니다. 그래서 묻는 자리가 하나 더 생긴다. 이 IP의 팬이 우리가 파는 그 나라에 몇 명인가.
그다음이 겹침이다. 팬층과 우리 타깃이 어긋나면 팬은 왔다가 그냥 간다. 굿즈만 사고 브랜드와는 연결되지 않고 나간다. 이 판단이 틀리면 로열티만 내고 팬층은 얻지 못한다.
팬이 왔을 때가 본 게임이다
팬층 이관은 굿즈가 팔린 날 끝나지 않는다. 팬이 찾아왔을 때 그 경험을 좋게 만드는 것이 라이선시의 일이다.
굿즈가 이유였어도 커피가 괜찮고 공간이 편하면 이관은 성공한다. 그 경험이 다음 방문의 이유가 된다. 굿즈 때문에 왔는데 경험이 나쁘면 그 IP의 팬만 잃는다. 팬은 브랜드에 실망한 것을 캐릭터와 함께 기억한다.
제대로 돌면 선순환이 생긴다. 팬층이 이관되면 판매가 늘어난다. 판매가 늘면 인지도와 신뢰가 올라간다. 브랜드가 강해지면 다음 IP를 제안할 때 더 좋은 파트너를 만난다. 그 파트너의 팬층이 또 옮겨온다. 한 번의 콜라보가 아니라 반복되는 전략으로 설계할 때 IP의 힘이 제대로 나온다.
첫 질문을 바꾼다
그래서 IP를 고를 때 첫 질문은 "유명한가"가 아니다. "누구의 팬인가"다.
순서를 바꾸면 이렇게 된다. 먼저 우리에게 지금 부족한 팬층을 적는다. 20대인가 40대인가. 감성으로 고르는 사람인가 실용을 따지는 사람인가. 지금 우리 고객이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고객이다.
그 사람들이 지금 어떤 캐릭터에 팬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찾는다. 그 IP의 팬이 우리 시장에 몇 명인지 본다. 그리고 그 팬이 우리가 필요한 고객과 같은 사람인지 확인한다.
이 세 줄을 종이에 적고 에이전트를 만나면 대화가 달라진다. 좋은 IP를 추천해달라고 묻는 자리가, 우리 고객과 겹치는 팬이 있는 IP를 찾는 자리가 된다.
편의점이나 카페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어떤 IP가 어떤 브랜드와 손을 잡았는지 보인다. 그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브랜드가 필요한 팬층, 그 팬층을 가진 IP, 둘의 만남이다.
거리를 그 눈으로 보면 질문이 바뀐다. 귀엽다가 아니라, 저 브랜드는 저 IP의 어떤 팬층을 원했을까.
IP는 그림을 파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소속감을 파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은 캐릭터가 아니라 그 캐릭터를 자기 것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IP의 팬층을 어떻게 읽는지 『콜라보는 마케팅이 아니다』 2장에 담았습니다. 팬덤·상품성·브랜드 핏으로 IP를 고르는 기준은 2장 뒤쪽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http://contentsbizinsight.netlify.app/
다음 호에서는 IP를 키우는 일을 다룹니다. 처음부터 유명한 IP는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Adria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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