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초반, 완구회사 부사장으로 들어갔을 때 이미 돌아가고 있는 계약이 하나 있었다. 산리오캐릭터즈였다. 붙은 곳은 여아용 비즈·액세서리 만들기 장난감 라인이었다. 이 계약의 연장과 품목 확장은 내가 맡았다.
그 라인의 매출이 기존의 10배를 넘었다. 전체 매출의 30%까지 올라왔다.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동안 그 숫자가 유지됐다.
라이선싱을 시작하려는 사람은 대개 같은 자리에서 출발한다. 어떤 IP를 딸 수 있을까. 유명한 이름을 종이에 적어놓고 그중 가능한 것을 찾는다. 나도 그랬다. 좋은 IP를 확보하는 것이 이 일의 승부처라고 생각했다.
이 비즈니스는 세 자리로 움직인다. 라이선서는 권리를 가지고 팬을 지킨다. 에이전트는 둘을 연결한다. 라이선시는 실행한다.
그런데 라이선시의 실행이 정확히 무엇인가. 계약서에 서명하고 제품을 만드는 일로 보인다. 그 앞에 있는 결정이 더 크다.

산리오 건을 돌아보면 결정의 핵심은 캐릭터가 아니었다. 두 가지였다.
하나는 주기다. 산리오캐릭터즈나 포켓몬 같은 대형 IP는 인기에 주기가 있다. 정점에서 들어가면 MG는 가장 비싼데 팬은 빠지기 시작할 때다. 같은 IP라도 언제 앉느냐로 계약 조건과 결과가 갈린다. 유명한 이름은 늘 유명하니, 지금이 그 IP의 어느 구간인지는 이름만 보고는 알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자리다. 비즈·액세서리 만들기는 캐릭터가 붙으면 아이가 고르는 이유가 완전히 달라지는 제품이다. 같은 구슬과 같은 줄인데 상자 위의 그림 하나로 값이 달라진다. 그 자리가 회사 안에 이미 있었다.
자리를 찾는 방법은 복잡하지 않다. 제품라인을 늘어놓고 하나씩 묻는다. 소비자는 이 제품을 무엇을 보고 고르는가. 성능과 가격을 보고 고르는 라인은 캐릭터가 붙어도 값이 그대로다. 디자인과 애착을 보고 고르는 라인은 달라진다. 비즈·액세서리 만들기는 뒤쪽이었다.
유명한 IP를 따와도 붙일 자리가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로열티만 나가고 제품은 평범하게 팔린다. 라인이 캐릭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제품이면 소비자는 그 차이에 돈을 더 내지 않는다.
순서를 거꾸로 하면 여기서 걸린다. 유명한 IP를 먼저 확보하고 나서 붙일 곳을 찾기 시작하면, 이미 MG를 선납한 상태에서 라인을 고르게 된다. 계약 기간은 흘러가고 급하게 붙인 제품은 평범하게 나간다. MG는 돌려받지 못한다.
그래서 라이선시의 일은 IP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붙일 자리를 찾는 것이다. 순서가 반대다. 좋은 IP를 찾아 붙일 곳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붙으면 값이 달라지는 라인을 먼저 찾고 그 라인에 맞는 IP를 찾는다.
이 두 질문은 계약할 때 한 번 하고 끝나지 않는다. 글로벌 IP는 대개 1년 단위로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해마다 같은 심사를 다시 받는 구조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같은 것을 다시 봤다. 이 IP는 지금 주기의 어디에 있나. 이 라인에 더 붙일 품목이 남아 있나. 두 번째 질문의 답이 매년 남아 있었다. 산리오 캐릭터를 올린 제품라인은 20여 종까지 늘었다. 연장은 자동이 아니다. 처음 계약할 때와 같은 판단을 조건만 바꿔 다시 하는 일이다.
그리고 1년 단위라는 사실이 하나를 더 만든다. 산리오나 포켓몬처럼 큰 IP는 관계를 트는 일 자체가 어렵다. 한 번 끊기면 다시 들어가는 비용이 처음보다 크다. 로열티 정산을 제때 맞추고, 디자인 승인 절차를 건너뛰지 않고, 담당자가 바뀌어도 연결이 남아 있게 하는 일. 이것이 매년 연장을 통과하게 만든다. 붙일 자리를 찾는 것이 시작이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관계다.
라이선서와 에이전트는 이 판단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라이선서는 자기 IP가 안전하게 쓰이는지를 보고, 에이전트는 계약이 성사되는지를 본다. 우리 제품라인 중 어디에 붙일지는 라이선시만 아는 정보다. 세 자리 중 이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는 하나뿐이다. 에이전트에게 좋은 IP를 추천해달라고 묻기 전에, 우리 라인 중 어디가 비어 있는지를 먼저 적어 가야 한다. 그 종이를 들고 앉으면 대화가 달라진다.
지금 우리 제품라인 중에서 캐릭터가 붙으면 값이 달라지는 라인은 어디인가. 그 라인에 맞는 IP는 지금 주기의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그 IP 쪽에 지금 연결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가.
라이선서·라이선시·에이전트 세 자리에서 본 이야기를 『콜라보는 마케팅이 아니다』에 담았습니다. IP를 고르는 세 기준은 책 2장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http://contentsbizinsight.netlify.app/
다음 호에서는 콜라보와 라이선싱의 경계를 다룹니다. 나이키와 맥도날드가 한 일이 서로 다른 구조였다는 이야기입니다.
Adrian Lee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