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무조건 기본으로 깔고, 문구류랑 굿즈도 빨리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품의 구색을 다양하게 해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가는 손님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어차피 책은 팔리지 않으니까요.”
서점 창업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분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서점 사장, 출판사 대표, 문화 기획자처럼 독서문화의 접점에 있는 분들도 있었고, 카페 사장, 편집샵 운영자, 제품 디자이너 등 책과 깊은 연관이 없는 분도 있었다. 그들은 내가 10년 넘게 독서모임을 이끌어 온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나의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했다.
하지만 헤어질 때가 되면 스쳐지나가듯 한 마디를 했는데 모두가 ‘책만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책은 잘 팔리지 않으니, 팔 수 있는 다른 것들을 다양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었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하는 <2021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일 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은 47.5%이며, 주변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10.1%에 불과하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시대에 서점을 하겠다고 하니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내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이야기였으며, 이성적으로 판단해도 틀리지 않으니 처음엔 수긍이 되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게 되자 괜한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왜 책을 더 많이 팔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했고, 과연 책만 팔아서 먹고 살 수 있는 서점은 불가능한지 의문이 생겼다.
코로나 시기를 버티지 못한 동네책방들
2019년에는 다양한 동네책방과 연계해서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독서모임 진행 장소로 동네서점을 대관했고, 여섯 번의 모임 중 한 번은 서점 사장님이 추천하는 책으로 진행했다. 참가자도 서점 대표님도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참가자 입장에서는 폐쇄적인 스터디 룸이나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카페가 아니라, 책이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진행되는 것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서점 입장에서는 새로운 고객을 만날 수 있고, 많진 않더라도 책 판매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서점이 추구하는 방향과 색깔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활동을 더욱 확장할 계획을 세웠지만 모두가 힘들었던 ‘코로나’ 시기를 만나게 되었다.
대면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던 모든 독서모임은 운영을 중단했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진행하던 독서모임 커뮤니티였기 때문에 불필요한 문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약 3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지나간 시간 속에는 추억이 되어 버린 것도 있었다. 함께 했던 7개의 서점 중에서 절반 이상인 4곳이 폐업을 한 것이다.
책을 구입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카페 영업 또는 모임 및 행사 운영을 통해 수익을 마련했는데, 관련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영업에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동네서점이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성장하거나 많은 관심을 받았던 곳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시기를 견디고 버텨낸 곳들을 살펴보면서 동네책방의 가능성을 발견하려 노력했다.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생존한 서점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서점이 ‘부업’ 또는 개인 작업을 위한 ‘사무실’ 용도로 사용되는 곳이거나, 정말 ‘책’에 집중해서 열심히 책을 소개하고, 책을 더 많은 사람에게 판매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곳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전자보다 후자에 더욱 관심이 갔다. 나도 부업이 아닌 전업으로 서점을 하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서점은 '책을 파는 가게'
‘책을 파는 곳’이라는 서점의 사전적 정의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 그것은 이 업(業)의 본질을 추구하는 길이었다. 그래서 책만 팔아서 월세와 생활비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이 조건을 달성해야만 어떤 위기에도 지속가능한 서점이 될 수 있다 판단했다.
그리고 이상한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카페 매출과 도서 판매 매출 중 카페 매출이 더 높은 곳은 서점이 아니라 북카페라는 생각도 한 몫을 했다. 혼자서 시작해야 되는 상황이라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카페가 아니라 서점이었다.
많은 반대와 우려가 있었지만, 카페영업을 하지 않고 책만 파는 서점을 시작했다. 오히려 책을 구입한 뒤 읽고 가시는 분에게는 무료로 커피나 차를 한 잔씩 내어드린다. 책만 사고 가시려다 음료 한 잔을 마시며 독서를 하는 분들이 꽤 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건물을 제대로 짓기 위해 지반을 단단히 다지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가장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은 서점이라 생각하고, 깊이 있는 독서경험이 그 사람을 계속 읽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사지 않고 긴 시간 책만 읽다 가시는 분들도 더러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처음엔 화가 나기도 했으며, 카페 영업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도 자주 했다. 내가 원하는 서점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견뎌야 하는 현실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책이 팔리기만 기다리지 않는다. ‘원하는 신발 있으면 사이즈 말씀해주세요.’ 소리를 끊임없이 들을 수 있는 신발 가게처럼, 손님이 들어오시면 ‘궁금한 점이 있으시거나, 책 추천 필요하시면 편하게 말씀해주세요.’하며 인사한다.
긴 시간 책을 살펴보는 손님이 있으면 괜히 책 정리 하는 척 다가가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책에 대한 이야기도 건넨다. 책을 구입하는 손님에겐 서점을 어떻게 알고 찾아 왔는지 묻고, 구입한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 또는 함께 읽어보면 좋은 책을 추천하면서 추가 구입을 유도하기도 한다.
서점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낯선 관심과 호의에 당황하시는 분도 종종 있다. 하지만 책에 대한 믿음은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한껏 낮춰준다.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추천 책도 함께 구입해간다.
아직 1년이 되지 않은 초보 책방지기지만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결국 서점도 ‘장사’라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서점이라는 공간이 잘 기능할 수 있도록 집중했다면, 올해는 ‘책’이라는 상품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보려 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책을 팔 수 있을지에 대한 정답은 알 수 없겠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 낸 해답은 조금씩 찾고 있는 것 같다. 다행인 점은 아직까지 이 일을 더 잘하고, 즐기고 싶은 맘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책만 팔아서 월세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새해가 되면서 조금씩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과연 이 실험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 사유와 자유의 시간
골목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책과 사람이 만나 펼쳐지는 소소하지만 진솔하고, 일상적이지만 이상적인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 글쓴이 - 강동훈
부산 전포동에서 '크레타'라는 작지만 단단한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게 만드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책을 잘 파는 서점인이 꿈이자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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