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에서 살아남기_도축장에서 일합니다_오이

2022.03.14 | 조회 6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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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4개월간의 인턴기간이 끝나고, 경상도에서 일을 시작했다. 사투리라곤 '그려, 몬해.'밖에 모르는 25 충청도 처자가 처음 도축장에 입성했을 때는 온갖 외계어 같은 경상도 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살면서 처음 듣는 '- 도라(아이 줘라.)'부터 '가가 가가가?', '안거미 띠가 먹으면 억수로 맛있는데,  치아보이소.'까지 사투리 섞인 말로 어르신들 말하는데 정신이 아주 아찔했다. 나한테 질문을   같기도 아닌  같기도 한데 나를 쳐다보면서 말을 하면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홍당무가 되어버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발까지 내려갔다 오는 느낌으로 아주 롤러코스터를 타고 질주하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하~ 참말로 이 처자 와 이렇게 못 알아쌓노, 딴 사람 바꿔주이소.'

 

못 알아듣는 것도 한두 번이지 전화를 건 사람은 내가 알아들을 때까지 똑같은 말만 반복하다가 (그렇다고 표준어로 말해주진 않았다.) 성질을 버럭 내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못 알아들으면 누구라도 성을 냈을 것 같긴 하니 내 잘못이지 싶긴 하다만 말이다. 그런 일이 번복되다 보니 통화 자체가 트라우마가 되어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 식은땀은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폭포수가 되었다. 대면으로 들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올 때면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었다. 외국어를 듣고 어떻게든 해석해보려고 머리를 굴리듯이 사투리를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에게 피곤은 일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새벽 6시부터 시작하는 업무로 이리저리 치여 눈만 겨우 뜬 나만 빼고, 도축장은 아주 활기가 넘쳤다. 전날 도축한 소들은 밤새 차가운 냉장고에서 심부온도가 5도 이하로 내려갔고 등심에는 마블링이 선명하게 올라와있었다. 우리가 판정을 마친 후, 소는 경매대로 올라갔고 30여 명의 중도매인들은 매의 눈으로 고기를 샅샅이 훑었다. 그들은 거래처가 원하는 소를 찾고 그에 맞는 가격을 책정하여 매입했다. 경매사는 스님이 경을 외듯 계속해서 무언가를 말했는데, 무슨 소리인지 유심히 들어보면 소의 성별과 무게 등의 스펙을 읊어주는 말이었다. 그리고 몇 번 중도매인이 얼마에 낙찰했다거나 이번 소는 가격이 가치에 맞지 않아 유찰되었다는 말을 하며 그 문장 사이사이에 노래인지 뭔지 사운드가 비지 않게 끊임없이 일정한 소리를 내었다. 역시 알아듣기 어려운 사투리처럼 음이 위아래로 춤을 추었는데 리듬을 타는 경매사의 말은 경쾌하기 짝이 없었다. 새벽부터 심신이 지친 나는 가끔 시간을 내어 경매장에 가만히 앉아 노래를 감상하듯 듣곤 했다.

 

현장에서는 일용직 아저씨들이 분주하게 레일에 걸려있는 소와 돼지를 밀고 당기며 냉동탑차에 실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들은 한 마리에 500kg인 소와 90kg인 돼지를 하루 종일 밀어 옮기는 일을 하기 때문에 힘들이 장사였다. 한 번의 주먹질로 300m는 거뜬히 날려 보낼 것 같이 팔뚝에는 핏줄이 불끈불끈 화가 나있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나를 볼 때마다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모야, 이리오바! 이누마 방디에 등외 등급 좀 찍어주이소."라고 웃으며 장난을 치는 식이었는데,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가까이 다가갈 때는 너무 무서워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았다.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그분들을 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깡패 같이 건들거리는 모습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을 땐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혼자이기도 했고 어린 나이에 받아주지 않으면 혹여나 해코지를 당할까 싶어 참고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은 척 넘겼다. 그러면 또 불러 세워 "맥주 한 잔 하게 연락 좀 주어봐~, 평가사님."하고 말을 건넸다. 

 

그 도축장에서 10개월 정도 일하고 다른 곳으로 발령 날 땐 아저씨가 내 손목을 낚아채며 휴대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무서운 얼굴을 하고 왜 말만 알았냐고 쏘아붙이는 모습에, 결국 진짜 번호를 주고 말았다.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를 걸어 내 번호가 맞는지 확인했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다른 번호를 적을까 한순간 고민했던 내가 제대로  진짜 번호를  것에 안도하는 게 맞는 건가 싶었지만, 앞으로 볼일이 없을 거라 생각해 그냥 덮고 넘기기로 했다. 이후에 정말로 내가 보고 싶다는 이상한 문자를 받았지만,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차단만 했다.

 

'취직'을 길고 긴 인생의 레이스에서 결승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결승점만 보고 쉼 없이 달려왔다. 결승점을 지나면 달콤한 보상과 평탄한 삶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오만한 착각이었다. 취직은 또 다른 출발점에 불과했다. 그렇게 새롭게 펼쳐진 길에는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이 나를 기다려고 있었다. 낯선 업무와 낯선 관계 그리고 낯선 환경이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인생에 결승점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걷는 이 길이 어떤 모양인지 어디로 향하는지 어떤 난관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길은 이어져있다고 믿고 싶다. 결승점으로 길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시작점이 '극복'과 '성장'이 되길 소망한다.

 

 

 

 

* 매달 14일, 24일 '도축장에서 일합니다'

글쓴이 - 오이(CY Oh)

동물을 좋아해서 축산을 전공했지만, 도축 관련 일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본업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 괴리감을 느껴 딴짓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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