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엄마 옆엔 책 읽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어릴 때의 독서습관을 잘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아이가 초등 1학년 때 글 밥을 늘리느라 찾던 책 중 ’제로니모의 모험‘이 있다. 그 책을 기점으로 글 밥이 훅~ 늘었고 양장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나는 평소에 아이가 읽을 만한 책을 뒤적이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을 선별해 아이에게 추천하곤 했다. 그렇게 추천했던 책들이 ’고양이 전사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테메레르‘, ’캐리비안의 해적‘유의 판타지 책이었다. 물론 저학년 수준에 맞는 ’스파이독‘이나 ’전천당‘ 같은 책도 있다. 나와의 교감이 좋은 아이는 추천해주는 책을 읽고 또 읽으며 대사를 외워 역할 놀이를 하기도 했다.
700페이지짜리 양장본 시리즈물도 덥석덥석 읽어서 글 밥을 늘려주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너무 판타지에만 몰입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좋은 책이 많은데 음식 편식하듯 책도 그렇게 될까 봐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흥미롭게 읽은 판타지물을 영화로 반복해서 보더니 대사를 외우는 게 아닌가. 아이가 영어 대사를 외우기 시작했다. ‘아!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건가 보다.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구나. ‘라고 느낄 무렵 내 생활이 바빠졌다. 그렇게 한동안은 아이가 다른 책엔 손도 대지 않고 읽었던 책만 끊임없이 반복해서 읽어나갔다.
여유가 생기고 난 후에야 새로운 책들을 한 권씩 추천할 수 있었다. 내가 초등 고학년 무렵 재미있게 읽었던 세계명작 중에 15 소년 표류기, 기찻길의 아이들, 동물농장, 솔로몬 왕의 동굴 같은 책들이 있다. 추리나 모험 유의 책을 나도 그맘때 좋아했었다.
아이는 ’15 소년 표류기’를 읽으면서 거만하고 이기고만 싶어하는 도니판 때문에 답답해 죽겠다고 했고, ’기찻길의 아이들‘을 읽고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착한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다 읽고 난 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와 다시금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그 시간이 참 충만하게 다가왔다. 꼬꼬마 시절부터 이런 습관, 이런 대화를 만들기 위해 TV 없는 환경을 꾸려왔다. 책 속엔 수많은 세상이 숨어 있다. 직접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세상을 그 속에서 만나며 대화하고 여유와 즐거움으로 세상을 살아가길 바랐다.
아이가 책을 덮으며 내게 말했다.
“엄마, 이 문장 봐봐. 이거 엄마 책 쓸 때 넣으면 어때? 난 이 문장이 이 책에서 제일 좋은 거 같아. 다 착한 아이들만 나오는 책이야. 행복한 책이야. 이 책.”
“어디 봐봐. 유한이는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친구가 되면 좋겠구나? 알겠어. 엄마가 이 글 따로 적어두고 엄마 글 어딘가에 쓸게.”
아이는 부모를 그대로 답습한다. 글을 쓸 때는 읽었던 책을 뒤적이며 마음에 들어 밑줄 그었던 문장에 표시를 해두곤 한다. 책 쓸 때 인용했던 방법을 아이가 어깨너머로 보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아이가 건네주던 문장을 아래에 옮겨 본다.
아이는 친구들을 재미있게 해 주는 걸 참 좋아한다.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을 얻는 것 같다. 집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마음 씀씀이가 예쁜 아이다. 아이는 주로 성대모사를 연습한다. 스네이프 교수 성대모사를 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라든가 암살의 이정재가 재판관 앞에서 어디 어디에 총을 맞았는지 설명하는 부분을 그대로 따라 한다. 아! 가장 잘하고 배꼽을 쥐게 하는 성대모사는 그림을 참 쉽게 설명하는 밥 아저씨 성대모사다. 색상에 대한 디테일까지 어떻게 그렇게 비슷하게 하는지 남편과 아이의 성대모사를 들을 때면 눈물이 날 지경으로 배꼽을 잡고 웃게 된다.
순한 꼬꼬마 시절을 보냈던 아이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기분을 전달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모양이다. 부모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이가 삶을 살아가며 겪을 다양한 상황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높고 안정적인 자존감을 선물하는 일이다. 그 일을 우리는 책을 통해 사유하고 여행하는 일로 경험하게 하는 중이다.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을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해 줄 수 있는 힘이 책 속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며 별다른 방법을 취한 적 없다. 책 읽기와 쓰기 습관 그리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게 하는 일 정도. 아이가 보여준 문장 속에서 아이의 마음을 발견하는 일이 나는 참 즐겁다. 그래서 자주 책을 솎아주곤 한다.
* 글쓴이 - 김상래
도슨트, 예술 강사. 누구나 미술관에 놀러와 좋은 추억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쉽고 편안한 전시해설을 한다. 학교와 도서관에서 창의융합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성인 대상으로 미술 인문학, 미술관 여행강의 및 강연을 한다. 궁극적으로 문화·예술로 가득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고 있다.
저서로 <실은, 엄마도 꿈이 있었어>가 있다.
블로그 : https://blog.naver.com/camu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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