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이 바뀌면서 일어난 일
한 주의 일정이 모두 바뀌면서 시작한 2022년의 11월. 월초에 잡혀 있던 두 번의 북 콘서트 일정이 잠정 연기되었다. 10월 29일에 일어난 이태원 참사로 많은 공공기관이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면서 내 일정도 자연스럽게 변경되었다. 보호자를 동반한 6~7세 아동 관람객이 올 거라는 공지를 보고 신청한 전시해설도 역시 취소되었다. 미취학 아이들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해 부러 신청한 일이었다. 아이들에게 뽀로로 비타민을 줄까, 텐텐(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양보조 식품)을 건넬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꽉 들어찬 한 주 일정의 변화가 나를 헛갈리게 한 모양이다. 아이를 학교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와 고등어조림 냄비에 남은 김치와 검은콩 밥 한 그릇을 해치우고 나갈 채비를 했다. 보통 도슨트의 복장은 검정이라 어김없이 검은색 정장 바지와 팔이 짧은 검정 스웨터를 입었다. 한국섬유예술 비엔날레 오프닝에 갔다가 P 작가분께 받은 귀한 손공자수 목걸이를 걸고 차로 20분 거리의 수원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11월 6일에 폐막하는 ‘우리가 마주한 찰나’ 전시해설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워 태블릿에 이미지 자료를 더 담아 갔다. ‘마지막을 불태우고 오리라.’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오늘이 이번 전시 마지막 전시해설이네요. 오늘 미술관에 관람객들 좀 있나요?” 접수대에 앉아 계신 담당자분께 인사를 건넸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관람객 수는 많지 않아요. 저희도 검은 리본 달고 있어요. 어! 그런데 선생님, 내일 아니세요? 여기 한 번 보세요.” “잠시만요. 다시 확인해 볼게요. 악! 내일을 오늘로 착각했나 봐요. 이번 주 일정 변경이 많다 보니 제가 날짜를 잘못 알고 왔네요.”
지난번에도 휴관 일인 줄 모르고 갔다가 커피 한잔 마시고 돌아온 일이 있었다. 벌써 두 번째다. ‘어찌하여 정신머리가 이렇게도 없단 말인가.’ 특별하게 많은 스케줄도 아니었다. 그저 몇 건의 스케줄이 취소된 것뿐인데 헛걸음이라니.
나를 위한 처방전 하나
그럴 땐 내 나름의 처방을 해야 한다. 일단 막내에게 전화를 걸어 스피커폰으로 바꾼다. 어디론가 또 바쁘게 움직이는 막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우리가 무언가 하며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니까 낙담하지 말라며 건넨 위로를 달게 받는다. 어느덧 오전에 있었던 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내가 치매가 오나. 왜 이렇게 깜빡깜빡할까 싶다가도 동생과 얘기 하다 보면 ‘그래, 생각할 게 많아서 그런 거야. 뭐 누구나 그럴 때 있는 거 아니겠어?’ 하며 치매 전조증상이라 느끼던 그 일에서 생각을 멈춘다. 그리곤 오늘 기록할 또 하나의 찰나를 만난 셈이니 부지런히 적을 생각을 품고 돌아온다. 울적한 마음으로 전화 했다가도 끊을 때가 되면 “아자, 아자 파이팅! 우리 잘하고 있는 거야. 우린 할 수 있어.” 그렇게 다시금 의욕을 품게 된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거나 눈물 나게 웃고 싶을 때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어린 시절에도 우린 그랬다. 서로 웃기다 보면 어느새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같이 개그 프로에 나가면 대박이 날 거라며 그런 얘길 잔뜩 하면서 울면서 웃곤 했다. 지금은 서로 나이도 먹고 아이 키우다 보니 그때만큼 눈물나게 웃지는 못하지만 좋은 기분을 만들고 싶을 때, 바보 같은 나를 괜찮다 처방하고 싶을 때 꼭 막냇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오늘처럼.
나를 위한 처방전 두울
나를 위한 처방전은 또 있다. (나는 사실 처방전을 꽤 가지고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반납할 요량으로 주섬주섬 가방에 담는다. 그러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다는 걸 발견한다. 나른한 햇살이 가득한 빈백에 털썩 주저앉아 책의 어느 부분을 골라 읽는다. 우연히도 카미유 클로델의 조각상 ‘중년’이다. 이 작품은 카미유끌로델과 로댕, 그리고 로즈 뵈레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을 대입시켜 보게 되는 작품이다. 노파의 손에 억지로 끌려가는 남자, 그의 손을 잡으려는 찰나의 간절한 여인. 2003년, 파리 로댕 박물관에서 만났던 작품을 책으로 다시 확인하며내가 가지고 있는 까뮤란 아이디와 그녀의 것이 일치함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30년을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다 죽은 그녀를 떠올렸다.
10년이 넘도록 청춘을 바쳐 사랑했던 사람에게 버려진 천재 조각가. 로댕은 ‘중년’이 세상에 공개되는 것이 두려워 작품을 의뢰한 정부에 취소 압력을 넣었다. 거장인 그가 바란 대로 중년은 공개되지 못했다. 내가 로댕 박물관을 찾았을 때, 왜 카미유 클로델은 꼭 로댕 박물관에 함께 있어야 하지. 오로지 그녀만을 위한 작품 전시공간은 왜 없는 걸까.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 것 같아 내심 답답한 마음을 가졌었다. 그랬던 것이 2017년, 로댕 사후 100주년이 되는 해에 드디어 ‘까미유 클로델 박물관’이 건립되었다. 그녀의 고향인 노장쉬르센Nogent-Sur-Seine에 말이다.
여기까지 적으면서도 가슴이 설레어 오전의 일 따위는 까맣게 잊은 채다. 파리 남동쪽 샹파뉴 끝 쪽에 그녀의 작품들이 모여 있다니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열정 가득하게 만든 작품이 3층짜리 건물에 가득하다니 만나보지 않고는 안될 것만 같았다. 보통 이렇게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별스럽지 않은 일들은 사라진다. 가슴이 두근거려 그녀에 관한 또 다른 책을 뒤적거리게 된다. 한정적인 시간을 나에게 꼭 맞게 쓰면 실수한 일은 별일 아니게 된다. 그저 내일 오후에 시간이 나면 쥘리에트 비노슈가 연기하는 ‘카미유 클로델’이나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내 추억 속 카미유 클로델은 이자벨 아자니가 최고지만 구하기 힘드니까) 그렇게 내 식의 위로를 만들어 처방을 내린다. 그러면 나는 다시금 지금을 살아가게 된다.
까미유 끌로델 박물관 사이트 Musée Camille Claudel | (museecamilleclaudel.fr)
* 글쓴이 - 김상래
도슨트, 문화예술교육 강사. 학교와 도서관에서 창의융합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성인 대상으로 미술 인문학, 미술관 여행강의 및 강연을 한다. 궁극적으로 문화·예술로 가득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고 있다.
저서로 <실은, 엄마도 꿈이 있었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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