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곳에 있던 바다
이따금 아이를 학교까지 바라다 주고 오는 길에 드는 생각. 이 길로 혼자 바다라도 다녀올까? 운전대를 잡은 건 늘 나인데 왜 홀가분하게 바다 구경 한 번 갈 생각을 못 하는 걸까? 싶은 그런. 날씨가 제법 가을을 닮은 어느 날, 햇살이 찬란하고 바람이 살랑이던 날,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그런 평범한 생각을 했다.
요 며칠 비가 내려 잔뜩 흐린 하늘을 보니 바다에 가고 싶어졌다. 아이에게 “우리 바다에 다녀올까?”물으니 처음엔 별로 내켜 하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가고 싶었다. 이런 시절도 곧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다시 한번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이는 다이소에서 마술 재료를 하나사가지고 가면서 그걸 연습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개당 천 원짜리 마술 재료 다섯 개를 사곤 연신 기분이 좋은 채로 함께 바다로 향했다. 바다는 50분 거리에 있었다.
바다는 참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50분이라는 시간은 시내를 벗어나지 않고도 소비가 된다. 바다는 그 정도 시간이면 닿을 곳에 있었다. 그런 곳에 가고 싶어 혼자 고민하던 날이 떠올라 허탈한 웃음이 났다. ‘이렇게도 바다는 가깝게 있구나’
도착한 곳엔 바다가 멀리 하늘과 닿아 있었다. 750미터 다리를 건너 해수욕장 계단을 내려가니 울퉁불퉁한 돌과 뻘이 더 가까이 보였다. 바다는 저만치 달아나 있고 그저 바다라 이름 붙은 세상엔 온통 그것들뿐이었다. 바다 가까운 곳까지 가서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움직이지 않는 돌과 흙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내려다본 곳엔 물길이 있고 생명이 있었다. 돌마다 붙은 굴 껍데기, 고둥, 소라게, 작은 물고기들이 미쳐 빠져나가지 못한 물길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이는 돌을 주워다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그 안엔 작은 생명들이 노닐고 있었다. 바다가 전부 자신들의 세상일 텐데 어쩐 일인지 바다와 함께 가지 못한 채 남아 누군가에 의해 붙들려 있었다.
깨끗한 바다만을 보고 자란 어떤 이는 바다는 동해안이 최고라고 한다. 서해안은 뻘이 많아 지저분하고 탁해서 굳이 그런 곳엘 갈 필요가 있겠냐고 한다. 내게 바다는 깨끗하고 지저분한 그 무엇 이상이다. 바다는 어디든 자유롭게 오고 간다. 내게 바다는 자유를 품은 곳이라 발을 담글 만큼 가까운 곳에 있으면 좋고 멀리 달아나 있어도 먼발치에서라도 볼 수 있으니 좋은 곳이다.
그런 바다를 보던 아이는, “엄마, 우리 유찬이 목줄 채워서 데리고 왔으면 호기심 발동해서 아마 여기에서 헤엄쳤을 거야.” “그러게, 유찬인 궁금한 게 많아서 펄쩍펄쩍 뛰어다녔을 것 같네.” 아이는 바다에 와서 고양이와 함께 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고 나는 그저 아이와 함께 바다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크게 쉬어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함께 걸으며 바다를 볼 수 있는 날이 인생에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 보고 싶을 때 보고 언제든 달려가 실컷 그곳을 느끼며 살아가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아이처럼 살 수만 있다면
물방울 화가 김창열 다큐멘터리 에세이를 봤던 날 내가 기억하고 나온 대사는
"너무 진지하게 살았어. 그러지 않았어야 됐는데..."
였다. 전쟁을 겪은 한국인으로 프랑스에 살면서 두 아들에게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엄격했던 자신에 대해 한 말이었다. 세상을 살다 나이가 지긋해질 때면 좀 더 아이처럼 살지 못한 것에 대해, 미래를 좆아 현재를 소중히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사람들을 본다. 바다를 보러 가는 50분이 미래를 위한 준비에 방해가 되는 어떤 이에게 바다는 그저 귀찮게 움직여 도착할 장소일 뿐이고 나 같은 사람에게 바다는 한참을 버틸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 나는 아이처럼 살기보다 너무 진지하고 차분해지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원래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수없이 떠다니는 머릿속 생각들을 무엇으로든 표출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선 날 외계인 같다고들 했다. 나는 이따금 알 수 없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만 같아 가슴이 답답할 때가 있다. 어떤 때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책임을 안고 사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 때문에 답답한 것이 당연하다 느낄 때도 있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 원하는 방향이 있다면 이번 생을 덜 후회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 같은 마음으로 조금 더 인생을 즐기면서, 어떤 답을 정해두지 않고 언제든 바다처럼 흐르게 두는 그런 삶을 사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바다는 자유롭게 흐르는 듯 보이지만 어떤 때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엄격하다. 나는 그저 바다의 자유로움을 닮고 싶다. 엄격함은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세상 사는 일 자체가 엄격하게 지켜야 할 것들 투성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드넓은 세상에 참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드넓은 바다와 그 바다가 넘나드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 어떤 세상에든 자신을 가두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은 엄마다. 그런 엄마이고 싶고 나 또한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
우리가 함께 걷던 곳, 바다로
내 어린 시절의 바다는 늘 겨울의 모습이다. 차디찬 바람을 두꺼운 코트와 파카로 무장을 해야 그 바다를 걸을 수 있었다. 어떤 이는 겨울바다는 추워서 뭐 하러 가느냐고 한다. 내게 겨울 바다는 그 차디찬 바람을 뚫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도 아이에게 바다는 이럴 때 가야 하고 이런 바다가 진정한 바다라는 답을 정해주고 싶지 않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엄마와 함께 본 세상의 기억이 기분 좋게 남기를 바란다. 그래서 지금 있는 곳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란 걸 알아차리고 더 크게 생각하고 더 넓은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바다는 아이에게 그런 세상을 보여주는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든다.
바다는 그저 언제나 갈 만한 곳. 더우면 가볍게 가서 걷거나 물속에 몸을 담그고 추우면 조금 더 껴입고 귀를 만져 가며 추운 손을 장갑 속에 넣어가며 걸을 수 있는 곳이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엄마와 함께 걷던 바다는 언제나 좋았던 기억으로 남겨주고 싶다. 특별한 것 없이 그곳을 걷기만 해도 따뜻한 기분이 드는 기억으로 말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아이와 함께 겨울 바다를 실컷 보고 오면 좋겠다.
요새 저는 어떤 망망대해가 자꾸 보고 싶어집니다. 막힌 곳 없는 곳에 서서 어딘가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고 싶어요. 어느 곳을 보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후우~하고 숨을 크게 쉬면서 한참을 있을 수 있는 곳. 저는 그런 곳이 바다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와 함께 다녀온 바다를 생각하며 가져온 그림 속 소녀가 꼭 저 같네요. 눈이 부셔 그런 것인지 표정이 즐거워 보이진 않습니다. 뭐 그런 날이 누구에게나 있는 거니까요. 그런 날도 이렇게 기록해 두고 나중에 보면 꽤 괜찮은 기억으로 남기도 해서 남겨봅니다.
* 글쓴이 - 김상래
도슨트, 예술 강사. 누구나 미술관에 놀러와 좋은 추억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쉽고 편안한 전시해설을 한다. 학교와 도서관에서 창의융합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성인 대상으로 미술 인문학, 미술관 여행강의 및 강연을 한다. 궁극적으로 문화·예술로 가득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고 있다.
저서로 <실은, 엄마도 꿈이 있었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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