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지난주 뉴스레터를 통해 안내드린 작가 리베카 솔닛의 신간인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 도서 증정 이벤트 기억하시나요?
잊혀진 여성들 팀이 준비하고 있는 텀블벅 펀딩인 <그리스 로마 신화 외전 - 두 번째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현대적인 그리고 여성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프로젝트이고, 리베카의 신간은 고전 동화인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재해석한 책인 만큼 잊혀진 여성들 뉴스레터 구독자분들께 좋은 기회일 것 같아 준비한 이벤트였답니다. 오늘 이벤트의 당첨자를 발표해 드렸는데요,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를 읽기 전에 리베카 솔닛에 대해서 소개를 드리면 좋을 것 같아 오늘은 리베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그럼 잊혀진 여성들 75번째 뉴스레터, 바로 시작해볼게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혹시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man 과 explain 을 합친 단어로,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이 단어는 지금 영미권에서는 보편적으로 인지되고 사용되죠. 맨스플레인은 2010년 뉴욕타임즈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었고, 2012년엔 미국 언어 연구회의 가장 창조적인 단어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2014년 호주에서 '올해의 단어'로 뽑히기도 하였고요. 그리고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있게 한 사람으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리베카 솔닛입니다.
맨스플레인이라는 개념은 리베카가 LA times에 설명하는 남자들(Men Explain Things To Me)이라는 에세이를 기고하면서 쓴 내용이 웹상에서 빠르게 퍼지게 되며 주류 정치 논의에까지 퍼져나갔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신조어인 '맨스플레인'이 일파만파 공유된 리베카의 일화와 함께 주목받게 된 것이죠. 리베카의 에세이에 소개된 내용은 이런 일화였습니다.
이 일화는 리베카의 유명한 저서인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원제: Men Explain Things To Me, 2010)』에 수록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해당 도서가 번역 출간된 2015년부터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많은 이들이 인지하고 있죠.
자신이 더 잘 알 거라는 자만으로 여성에게 훈계하듯이 또는 가르치듯이 무언가를 설명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기 전에도 아는 척하고 잘난 체하는 남자들은 항상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있고요(심지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2008년 이전과 달라진 것은 이러한 행위와 현상을 설명할 단어가 생겨난 것이죠. 현상만 존재하던 것을 하나의 단어와 개념으로 정립하면 단순히 그 단어만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뭔가 좀 불편한데..' 하고 넘어가거나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갔을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명확하게 파악이 되기 때문입니다.
맨스플레인이라는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그 행위를 당하는 여성의 앎의 여부가 아닙니다. 여성이 모를 것이라는 전제를 당연하게 깔고 남자가 여성을 훈계하거나 여성의 발언을 묵살하는 것이 그 핵심이죠. 그리고 이것은 성별 간의 권력관계와 구조적 폭력을 의미합니다. 여성이 침묵하도록 만드는 사회 현상을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로 고발한 것이기에 이 단어가 특히 주목을 받았던 것입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에 대한 가장 철학적인 이야기
리베카는 페미니즘 도서로 가장 잘 알려졌지만, 사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주제를 다뤄왔습니다. 대표적으로 환경, 사회 변화, 재난 그리고 철학에 대한 글을 써왔죠. 특히 그의 역작 중 하나인 『걷기의 인문학(원제 : Wanderlust, 2004)』은 걷기라는 행동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다뤘습니다. 걷기를 육체적인 움직임만이 아닌 지적 유희와 쾌락의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입니다.
리베카는 책에서 걷기를 가장 손쉽게 사유로 들어가는 길이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음을 가장 잘 돌아보는 길은 걷는 것'이라 말하고, 역사 속 인물, 사상, 사건 등을 걷기라는 시선을 통해 새로이 해석하죠.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3부는 도시에서의 걷기를 다룹니다. 공적 공간으로의 진입 가능성이 곧 시민으로서의 공적 생활을 영위하는 문제와 연결된다는 점을 짚고, 사회의 소수자가 맞딱뜨리는 제약을 분석합니다. 보행 공간이 사라져 걷기를 통한 사유 그리고 연결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 또한 그는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에 리베카는 걷기의 인문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으로 걸어 나갈 필요가 없어지니, 공적 영역이 퇴보하고 사회적 조건이 악화될 때 맞서기보다는 물러서게 된다". 시민이 보행을 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의 부재는 결국 민주주의라는 구조에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걷기라는 한 가지 주제를 밀도 높게 사유하고, 궁극적으로 걷기라는 행위가 인간에게 갖는 의미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에세이의 정수라 불리기도 합니다. 미국의 인터넷매체에서는 이 책을 '굉장한 학식과 상식을 갖춘 가이드가 이끄는 여정'이라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리베카 솔닛은 유려한 문체만큼 이처럼 날카로운 시선과 강렬한 사유 그리고 저술로 현시대 가장 주목받는 사상가로 꼽힙니다. 2010년 미국의 대안잡지인 유튼 리더의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 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2013년엔 그의 다른 도서인 『멀고도 가까운』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죠.
그의 다른 저서인 『멀고도 가까운』 또한 보편적인 것을 다룬 사유가 돋보이는 에세이입니다. 이 책은 읽기와 쓰기, 고독과 연대, 병과 돌봄, 삶과 죽음, 그리고 어머니와 딸을 주제로 하고 있고요. 리베카의 저서들은 주로 인간과 자연 섭리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희망과 행동에 대한 변화의 힘을 독자로 하여금 깨닫게 합니다.
여성에게 허락된 것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공적인 공간과 발언권이 주어질까요? 물론, 한국은 일부 여성 인권이 극심하게 낮은 나라들처럼 여성이 남성의 허락을 받고 집 밖을 나가야 한다거나 여성이 혼자 다닐 수 없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여자아이들은 밖에 다닐 때 '조심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랍니다. 조금 크고 나서는 여성 대상 강력 범죄들을 원치 않더라도 알게 되고,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을 쾌락 거리인 것처럼 영화와 각종 미디어를 통해 여자아이들에게 주입하죠. 여성은 그래서 자신을 지켜줄 남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달하게끔 만들려는 여성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음모로 보이기도 합니다.
의식의 깊은 곳까지 주입된 공포와 무기력은 여성들이 공적인 공간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게 만듭니다. 언제든 범죄의 타겟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일상 속에 항상 따라다니기 때문입니다. 이번 신림동 사건 전까지만 해도 여성의 이러한 공포와 두려움은 사회에서 무시되어 왔습니다. '여자들이 유난 떠는 것'이라 취급되어 왔고, 한국은 세계 최고의 치안 국가라는 말하는 이도 많았고요. 여성들이 두려움을 말하는 것조차 입막음 되기도 했습니다. 한 여성 연예인이 밤길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수년간 인터넷상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여성의 두려움마저 남자들의 맨스플레인으로 입막음을 해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번 신림동 사건으로 인한 남자들이 호소하는 두려움은 사회적인 문제로 다뤄지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일을 하며 살지만 여성과 남성에게 주어지는 공간과 발언권은 크게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리베카 솔닛과 같은 사상가의 사유가 더욱 중요한 것이죠.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널리 퍼지고 쓰이면서, '오빠가 아는데 생리통엔 따뜻한 게 최고야' 따위의 얘기부터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만 했던 남자들의 모든 설명이 이름 붙여지고 여성들은 맨스플레인에 NO를 하기 시작했듯이 말입니다.
Almost Famous 팀의 새로운 텀블벅 프로젝트를 차례로 소개하며 뉴스레터를 마칩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를 확인해 주세요!
그리스 로마 신화 외전 - 두 번째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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