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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서른네 번째 뉴스레터는 스웨덴을 지금의 우리가 아는 성평등한 복지국가로 발돋움하게 만든 장본인이자, 2차 세계 대전 이후 군비 축소 및 비핵화 논의를 이끌어내어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알바 뮈르달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80이 넘은 나이에도 사회운동에 전념한 투쟁가였죠. 여성주의자이자 사회학자이며, 외교관이자 작가였던 알바의 이야기. 지금 시작해볼게요.
1930년대, 스웨덴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성평등' '복지국가' 스웨덴과는 달랐습니다. 미국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 위기가 찾아오고, 수입 농산물의 유입으로 스웨덴 시골의 농부들은 다른 유럽 국가나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출생률마저 떨어지게 되자, 스웨덴 사회는 혼자 살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 여성들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알바 뮈르달은 공동으로 책 한권을 집필합니다. '인구 문제의 위기' 라는 제목의 책이었죠. 책의 요지는 출생률 저하를 개인 또는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성들이 무고하게 받던 비난과 손가락질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죠.
그는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성의 취업 기회를 보장하고 아이들을 국가가 나서서 보살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주거 문제 해결, 출산과 육아 비용, 여성 경력 관리 등의 종합적인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그러자 스웨덴 정부는 책의 공동 저자인 알바의 남편을 정부 관료로 임명하여, 그들이 제안한 정책을 직접 수행하도록 독려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도입한 제도가 육아휴직제도입니다. 기존의 육아휴직제도와 달라 여성과 남성이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반반씩 사용하도록 한 정책이었고, 이 제도는 스웨덴 사회에 큰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기존 노동 시장에서 고용주가 여성을 기피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육아 휴직 때문이었는데, 이를 여성과 남성이 의무적으로 반반씩 사용하게 되면서 고용시장에서의 성차별이 대폭 감소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스웨덴을 양성평등 국가로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하였습니다.
알바는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들의 보다 생산적인 직업과 공적인 부문에 대한 기여를 돕는 코하우징 주택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제안한 주택의 모습은 1층에 공용부엌(센트럴키친)과 식당이 있고, 배식용 엘리베이터가 음식을 각 가구로 배달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전문적인 보모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원이 주택 안에 공용 시설로 배치가 되어있어, 늦은 퇴근을 해도 모부가 걱정이 없도록 하였죠.
하지만 이 주택 안은 여성연합을 제외한 노동운동조직 안에서는 전혀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반대에 부딪쳤는데, 아동양육공간을 따로 두게 되면 가족해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습니다.
비록 그의 제안은 반대에 의해 물거품이 되었으나, 알바와 함께 주택 안을 만든 건축가에 의해 스웨덴에는 가사 노동을 줄여주는 공용 시설을 포함한 코하우징 주택이 하나 둘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혼 여성을 위한 코하우징 주택도 생겨나게 되었죠.
여성 인권 문제에 집중하던 알바는, 1955년 스웨덴 최초의 여성 대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인도, 미얀마 그리고 스리랑카 등지에서 6년간 외교관으로 생활했는데, 특히 인도의 초대총리와 만나며 세계의 평화문제로 관심을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 2막이 시작된 시점이었죠.
스웨덴에 귀국한 그는 스웨덴 정부에 군비축소를 위한 특별보좌관 임명을 요구했고, 국회에서 전세계 군축의 필요성을 연설하였습니다. 특히 이 연설에서 평화 유지를 핑계로 군비확대에 혈안인 미소 양국을 비난하며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유엔 군축회담대표로 임명되어 유엔에 가게 되었고, 10여년 간 제네바에서 머무르며 군축에 대한 노력을 했습니다. 결국 스웨덴 정부가 핵보유 의지 포기선언을 공표하였고, 이는 반핵운동과 함께 미소 양국의 군비확대 경쟁을 둔화시키는 데에 기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전 세계적 군비축소 및 스웨덴 비핵화에 대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알바 뮈르달이 살던 1930년대의 스웨덴은 지금의 한국과 겹쳐 보이는 점이 많습니다. 출생률 저하가 문제라고 하면서 그 원인을 여성의 고학력 및 고소득을 꼽고, 고학력 고소득 여성의 배우자 하향 선택 변화 유도를 그 대책으로 내세우는 정부 연구 기관의 발표가 불과 5년 전의 일이죠. 공공기관에서 가임 여성 지도를 만든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중요한 것은 사회 구조의 변화임에도, 여성 개인을 탓하는 모습이 1930년대의 스웨덴과 21세기의 한국이 몹시 유사합니다.
100년 가까이 전에 논의되고 증명 된 '더 나은 사회로 가는 방향'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1년의 한 번인 여성의 날 뿐 아닌, 365일 모든 날에 생각하고 논의해야할 방향이죠.
하루 하루 우리의 삶 속에서 성평등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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