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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열 번째 뉴스레터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천재 건축가로도 유명한, 자하 하디드 입니다. 비현실적인 설계라 비난받았던 그의 디자인들은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찬사를 받는 건축물들로 실현되기 시작했어요. 꿋꿋하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켜낸 자하의 이야기, 지금 시작할게요.
1950년, 이라크에서 태어난 자하 하디드는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입니다.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만나볼 수 있지만,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음과 동시에 자연의 경계를 허무는 그의 건축물은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자하는 여성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고, 영국 최고의 권위 있는 건축상인 스털리상을 무려 두 번이나 수상했습니다. 자하가 이런 명성을 얻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1982년, 자하는 홍콩의 ‘The Peak’를 설계하는 국제현상설계 공모전에서 우승하게 됩니다. 자하만의 뚜렷한 스타일은 건축가로서 주목을 받았으나 이 설계는 결국 물리적인 형태로 지어지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이처럼 당선된 몇 개의 디자인도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카디프 베이 오페라 하우스 커미션은 건축계의 이슈를 일으켰는데요. 자하의 작품이 우승 후보로 선정이 되었으나 비용상의 이유로 프로젝트가 취소되었기 때문입니다.
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건축물에 시큰둥한 이유가 자신이 외국인이고, 여자이며, 건물이 특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당시 카디프에 있던 자하는 사람들의 쑥덕거림과 곁눈질을 견뎌야 했기 때문입니다.
고향은 아니었지만, 영국은 자하에게 두 번째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 영국에서 프로젝트를 많이 해보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카디프 베이 오페라 하우스 프로젝트의 실패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실패가 어떤 낙인이 되었다고 느꼈죠. 찬사를 받는 자하의 디자인이 몇 년 동안 단 한 번의 커미션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믿기 어렵지 않나요?
후에 자하는 이 일화를 자신의 경력에서 겪었던 무례한 사건 중 하나이며, 인생에서 좌절감을 느꼈던 시기였으나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2000년대부터는 자하 하디드의 시대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3D 컴퓨터의 등장으로 비현실적이라고 비판받았던 설계가 드디어 실현 가능한 시대에 도달한 거죠. 비트라 소방서, 로젠탈 현대 미술 센터, 호엔하인 노스 테르미누스,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 등 자하는 마음껏 본인만의 세계를 펼쳐나갔습니다.
2004년, 자하는 여성 최초로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아 건축계 여성 서사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현재까지도 이 상을 단독으로 수상한 여성은 자하가 유일합니다. 프리츠커상은 자하가 건축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2010년과 2011년에 그는 영국 왕립 건축가 협회가 주관하는 스털링상을 2년 연속으로 수상하며 또 한 번의 역사를 썼습니다.
2022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설계한 알 와크라 스타디움의 조감도를 공개했을 당시, 충격적인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경기장은 아랍의 전통 배인 다우(dhow)의 선체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가운데 구멍이 난 곡선형 지붕은 다우의 돛을 표현했는데 그 모양이 ‘여성 생식기’를 닮았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정말 창피한 일이다.
자신들이 뭐라고 하는지 알고는 있는가?
구멍이 뚫린 모든 것이 여성의 생식기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자하는 매우 분노하며 자신이 남성 건축가였다면 이런 논란은 없었을 거라고 성차별을 주장했습니다. 훌륭한 설계를 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죠. 그러나 곧 이런 논란은 말끔히 사라지고 카타르의 핵심적인 랜드마크로 자리하게 되리란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자하의 많은 프로젝트가 그랬듯이요.
세계가 열광하는 자하의 작품은 생각보다 우리의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동대문의 중심,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가 바로 자하의 작품입니다. 쉴 새 없이 변화하는 동대문의 역동성에 주목한 자하는 수많은 인파와 빼곡한 마천루 사이에서 살아 숨 쉬는 곡선 형태의 DDP를 설계했습니다.
지금은 서울의 디자인과 창조산업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여겨지지만, DDP의 조감도가 처음 공개됐을 당시에는 비난이 쇄도했습니다. 건축계에 발을 디뎠던 순간부터 구설과 논란 속에서 살아온 자하는 여태껏 자신의 프로젝트가 늘 찬사와 논란이 공존했음을 알고 있기에 DDP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료될 것이라 확신했고, 이는 개관 후 현실로 나타났죠. 그의 건축물인 DDP는 많은 이들의 우려가 무색하게 연간 800만 명 이상이 찾는 명소가 되어 랜드마크로서의 위엄을 톡톡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직관과 본능을 신뢰하는 것은 중요하다. 비록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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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이 얼마 안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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