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사라진 무대, 다시 불러내는 여성국극

오페라? 우리에게는 국극이 있다

2024.10.29 | 조회 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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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익명이었던 여성들 - 우리의 불만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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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동안 평안하셨길 바랍니다. 요즘 에디터 D가 푹 빠진 한국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정년이'인데요. tvN의 토일드라마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후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타고난 소리 천재' 정년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경쟁과 연대, 그리고 찬란한 성장기를 그리며 시청률, 화제성, OTT 스트리밍 등 모든 흥행 지표를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정년이 포스터 @tvN
정년이 포스터 @tvN

드라마 정년이는 방송 2주차에 모든 흥행지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큰 인기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최신 회차인 4화에서는 수도권 가구 평균 13.6%, 최고 15.0%, 전국 12.7%, 최고 14.3%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이로써 정년이는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에서 동시간대 1위를 달성했죠 (닐슨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

뿐만 아니라, TV-OTT 드라마 화제성 조사에서도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뉴스, VON(Voice of Netizen), SNS, 동영상 부문에서 모두 1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출연자 화제성 부문에서도 김태리가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신예은이 3위, 정은채가 6위에 오르는 등 세 명의 배우가 TOP 6에 랭크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OTT 플랫폼에서도 정년이의 인기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년이는 티빙과 디즈니+에서 스트리밍되며, 10월 4주차(10/14~10/20) 키노라이츠 통합 콘텐츠 랭킹에서 드라마 부문 1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티빙에서는 드라마와 비드라마를 포함한 인기 콘텐츠 순위에서도 1위에 올랐으며, 이러한 인기를 통해 정년이 신드롬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극 정년이

영서, 정년, 부용 ⓒ웹툰 정년이 원작
영서, 정년, 부용 ⓒ웹툰 정년이 원작

이 드라마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2019년부터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시대극 웹툰 중에서 보기 드문 ‘여성 주제 웹툰’으로 그 인기가 드라마화로 이어졌는데요. 원작팬들은 제작 소식에 큰 기대감을 표했습니다. 웹툰 《정년이》는 여성국극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통해 전라남도 목포 출신의 주인공 윤정년의 성장과 갈등을 그립니다. 그는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여성국극단에 합류하여 연구생의 모습에서 점차 숙련된 국극 배우로 성장해나갑니다. 웹툰 정년이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국극이라는 참신한 소재로 여성 예술인들와 그의 발자취를 새롭게 재조명했습니다. 특히 한국전쟁 직후 혼란스러운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들만의 무대였던 국극을 통해 그 시절 여성들의 열정과 꿈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죠. 

고 사장은 자신의 과거사를 들려주며 ‘남자됨과 여자됨이 가소롭다’는 조언을 건넨다. ©네이버웹툰 ⟪정년이⟫ 17화 캡쳐 
고 사장은 자신의 과거사를 들려주며 ‘남자됨과 여자됨이 가소롭다’는 조언을 건넨다. ©네이버웹툰 ⟪정년이⟫ 17화 캡쳐 

원작 웹툰이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전쟁 후의 혼란 속에서 여성 국극을 통해 꿈을 펼친 국극 배우들과 이들을 사랑한 대중의 이야기와 더불어 재능 있는 여성들이 당시 사회의 장벽에 부딪혀 꿈을 접거나 이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습은 현대 한국 사회의 모습과도 닮아 있어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정년이가 남역을 맡으면서 느끼는 두려움은 많은 여성들의 현실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그의 멘토가 전하는 “남자됨과 여자됨이 가소롭다”는 조언은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 개인의 진정한 자아를 찾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죠.

드라마 정년이는 소리와 무용 같은 한국 전통 문화를 서사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이야기의 흡입력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특히 판소리와 남도민요의 유명한 곡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주인공 윤정년(김태리 분)은 첫 화와 두 번째 화에서 남원산성 (남도민요), 갈까부다 (춘향전), 추월만정 (심청전) 등을 부르며 전통 소리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냈습니다. 이러한 소리들은 한국 전통 음악의 정서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고 있으며,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극의 역사

1958년 ‘별하나’의 포스터 ©영희야 놀자
1958년 ‘별하나’의 포스터 ©영희야 놀자

그렇다면 정년이의 주요 소재인 국극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국극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확대되던 근대에 생겨났습니다. 한국에서는 판소리 창자 중심의 전통 예술인 창극에서 이러한 역할 변환이 활성화되었고, 이는 여성국극으로 이어졌습니다. 국극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만든 창극으로 판소리는 가창자 혼자 모든 배역과 해설을 맡지만, 창극은 이를 캐릭터별로 나누어 여러 사람이 맡습니다. 다만 여성 국극은 모든 배역을 여성이 도맡습니다. 남자 배역까지 말이죠 (이를 ‘남역’이라 표현합니다). 

<옥중화> 포스터 (국민신문, 1948.10.24.)
<옥중화> 포스터 (국민신문, 1948.10.24.)

일제강점기 말기, 전쟁 체제 강화에 따라 조선연극협회와 조선연예협회가 주도한 창극은 활기를 띠었으며, 여성 배우 박귀희는 남성 역할을 맡아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1948년 창단된 여성국악동호회는 여성 배우들만 출연하는 창극을 표방하며 <옥중화> 등의 작품을 선보여 독자적인 무대를 구축했고,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여성 배우들이 남성 역할을 소화하며 남장으로 무대에 오르는 모습은 당시 사회에서 가십거리로도 회자될 만큼 혁신적이었습니다.

<햇님과 달님> 포스터 (영남일보, 1949.4.14.)
<햇님과 달님> 포스터 (영남일보, 1949.4.14.)

한국에서 1908년 관기 제도, 즉 기생 제도가 철폐되었지만, 일제는 ‘기생단속령’과 ‘창기단속령’을 공표하며 기생을 통제했습니다. 예술적 기능을 계승한 기생들은 1930년대 이후 박녹주, 김소향 등 여성 명창으로 활동하며 판소리와 춤에 종사하는 예술인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1948년에는 박녹주를 대표로 김소희, 박귀희, 임춘앵 등 명창들이 참여한 여성국악동호회가 결성되어, 여성들만의 창극 무대를 열었습니다. 이들은 남장으로 등장해 <옥중화> 공연을 선보이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이듬해 공연한 <해님달님>은 여성국극의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여성국극을 관람하고 있다.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 캡쳐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여성국극을 관람하고 있다.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 캡쳐

전쟁 중 피란지에서도 큰 인기를 끈 여성국극은 전후에 더욱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며, 당시의 고루하다고 여겨지던 전통 문화를 현대적인 형식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이들은 서양 뮤지컬과 오페라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적 음악과 의상, 감정을 과감히 결합한 독창적인 스타일을 창출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투란도트> 같은 오페라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하여 판소리 창법을 유지하면서도 대사와 음악, 의상은 오페라 형식을 적용하는 등 창극과 오페라를 결합하는 파격적인 연출을 시도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전통예술을 현대화하려는 노력으로, 여성국극을 대중예술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한 주요 요인이 되었습니다.

故조금앵 배우와 팬의 가상 결혼식 사진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 캡쳐 
故조금앵 배우와 팬의 가상 결혼식 사진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 캡쳐 

여성국극은 서양 오페라 요소를 도입하며 ‘민족 오페라’라는 정체성을 확립해갔습니다. 햇님과 달님은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변형해 한국적 소재와 정서를 담아낸 대표적인 예로, 유엔한국위원단 환영 공연에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여성국극은 민족적 자부심을 드러내는 예술로 자리잡았고, 전쟁 후 재건기에는 여러 여성국극단이 생겨나며 지속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1950년대 여성국극의 대표적인 스타는 임춘앵이었습니다. 1952년, 부산시 대교로에 임춘앵은 '임춘앵무용국악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생을 모집하여 여성국극동지사라는 이름으로 <공주궁의 비밀>, <황금돼지>, <반달>, <청실홍실> 등 다양한 작품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이후 1953년 서울로 상경한 뒤에는 '임춘앵과 그 일행'이라는 이름으로 <바우와 진주목거리>, <산호팔찌>, <백호여장부> 등을 공연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55년에는 대한국악원 산하 '여성국악단'으로 개명하고 <무영탑>, <구슬공주>, <낙화유정>, <콩쥐팥쥐>, <견우와 직녀>, <연정칠백리>, <여장부>, <먼동은 튼다>, <흑진주> 등 여러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故조금앵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故조금앵 

당시 여성국극은 엄청난 팬덤을 형성하며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특히 배우 조금앵은 팬의 요청으로 결혼식에서 신랑 역을 맡아 사진까지 찍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1950년대 여성 국극의 인기를 회고하는 팬들은 당시 상황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 팬은 “결혼하기 전, 장래 배우자에게 ‘내가 좋아하는 이런 언니들이 있는데, 이해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또 다른 팬은 여성 국극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당시 돈으로 2억원을 들여 극단을 창단했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팬들은 남장한 여성 국극 배우들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거나, 패물을 바치는 일도 흔했고, 배우를 납치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일부 팬들은 극단에 들어가 스타 배우를 가까이에서 돌보기도 했습니다. 배우 이옥천은 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두 번이나 ‘가짜 혼례’를 올렸고, 허숙자는 “출산할 때 ‘남자가 아이를 낳는다’며 놀라워하는 팬들이 있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현재까지도 팬클럽을 다섯 개나 유지하는 박미숙은 여성 국극이 얼마나 강력한 인기를 끌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잊혀진 국극

임춘앵과 제자들 ⓒ<왕자가 된 소녀들> 자료화면
임춘앵과 제자들 ⓒ<왕자가 된 소녀들> 자료화면

1960년대에 텔레비전과 영화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새로운 매체로 옮겨갔고, 여성만으로 구성된 극단은 남성 중심의 제도권 문화에서 ‘싸구려’나 ‘저질’ 예술로 폄하되었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여성 국극의 위축을 가속화했으며, 특히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국극은 정부 지원에서 소외되었습니다. 그 결과, 여성 국극은 1960년대 초반에 급격히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기혼여성의 직업 활동에 대한 어려움, 국극단체 내부의 후배 양성 체계의 부재, 새로운 대중문화의 등장, 그리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전통 회복론 등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죠. 

<시집 안 가요>(1956) 조금앵과 박미숙 ⓒ<왕자가 된 소녀들> 자료화면
<시집 안 가요>(1956) 조금앵과 박미숙 ⓒ<왕자가 된 소녀들> 자료화면

여성 국극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많은 주역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이들은 대부분 70~80대에 이릅니다. 원로 여성국극 배우 김혜리(73)씨는 최근 시사회 후 “예술로서 훌륭한 가치가 없다면 그렇게 큰 인기를 끌 수 없었을 것”이라며, 전성기 때 함께 활동했던 최고 예인들과의 기억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뒤를 이을 후배들이 없다는 점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정년이 포스터 @tvN
정년이 포스터 @tvN

한국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폐허가 되었던 시절,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준 것은 문화였고, 그 중심에는 여성 국극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여성 국극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남장 배우로 등장하여 영웅 역할을 맡았고, 관객들은 그들의 연기에 열광하며 시대의 아픔을 잊었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체의 결속력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한 여성 국극은 그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남아, 한국의 역사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 관객들은 영웅적 용사의 역할을 연기하는 여자 배우에게 이입하며, 그들의 연기를 통해 대리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오락을 넘어서, 성별과 권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여성의 힘과 능력을 재조명하는 초석을 마련하였죠. 

정년이 스틸컷 @tvN
정년이 스틸컷 @tvN

웹툰의 인기를 이어받은 드라마 정년이가 여성국극의 부흥을 이끌어, 여성국극이 우리 문화 속에서 다시금 활기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이번 주 뉴스레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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