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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기록 폐기 방조도 범죄다.

누구는 국회 담벼락을 넘어 전기 코드를 꽂고, 누구는 제 마당 앞의 근조화환을 치운다

2024.12.13 | 조회 4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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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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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기록인들이 뿔났다.

시작은 오픈 채팅방이었다. 국가기록원이 폐기금지 공문을 형식적으로 발송하고, 지난 여름 공수처가 요청한 '채상병 기록'의 폐기금지를 실행하지 않았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며칠 전부터 국무회의 회의록과 속기록이 있네 없네...'국정 기록'의 생산과 관리를 요청하던 목소리가 커지던 참이었다.

이거 1인 시위라도 해야 하는건 아니냐고, 근조화환을 보내는 건 어떻냐고 단톡방이 붐비기 시작했다. 근조화환을 보내자는 의견이 모였다. 누구는 근조화환에 들어갈 문구를 정리하고, 누구는 경찰서에 전화해 근조화환 시위 방법을 알아봤다. 누구는 언론사에 제보해서 기자를 섭외했다. '누구'인지 알 수 없어 '누구'라고 칭한다. 순식간에 모인 백여명의 '누구들'은 결정도 실행도 빨랐다. 당장 내일 근조화환을 대전정부청사로 보낸다. 그 사이 MBC 취재를 섭외했고, JTBC도 취재를 온다고 한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업계의 문제를 언론사에 공익제보하고 인터뷰까지 하는 일에는 얼마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대부분 공공기관에서 혼자 일하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인데 그런 결정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큰 일이다. 그런데 단톡방 메시지는 따라 읽기 어려울 정도로 수북히 쌓였다. 다들 이런 걸 원했나. 사소하지만 용기를 내고 제 목소리를 내는 일. 

화환 리본에 넣을 문구도 여럿이 제안했다. 너무 비아냥거리진 말자고. 전문가답게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비판하자고. 직업 윤리는 이런 곳에서도 빛을 낸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의 자존을 지키며 꾸짖는 일에도 직업 윤리는 필요하다. 

  • 1. 계엄 관련 기록 폐기 금지 조치를 시행하라
  • 2. 2024.12.10. 국가기록관리 사망선고
  • 3. 국가기록원은 긴급폐기 금지조치를 발동하라.
  • 4. 국민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워줘서 감사합니다
  • 5. 국가기록관리 사망 
  • 6. 기록인으로서 사명을 이행하라
  • 7. 기록은 국민의 것이다
  • 8. 국가기록원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9. 국가기록원은 역사를 수호하라
  • 10. 방조도 범죄다
  • 11. 공공기록법은 공공기관의 투명하고 책임 있는 행정 구현을 목적으로 한다 

그 사이 기록관리단체협의회가 성명서를 발표했다. 반헌법적 비상계엄의 증거인 기록이 사라지고 있다. 

시위를 준비한 사람들은 짧은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행안부 소속으로 상위기관 눈치 볼 수 밖에 없는 점 이해합니다. (기타공공기관 근무해보니 갑을병정의 정을 자처하더군요) 더군다나 국가기록원 측도 내란에 가담하고 싶진 않을거 아니에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보낸 화환(=민원)을 근거로 하여 최소한 폐기금지 공문을 보낼 수 있길 바랍니다. 더군다나 국가기록원 측도 내란에 가담하고 싶진 않을거 아니에요. 

국기원 담당자는 생산단계부터 기록관리 하라고 하는데 전자기록생산시스템 내 등록된 것만 기록이라고 하는 기록원장 한심스럽고 전문성이 의심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기록관리의 능력으로 국민을 돕고 국민의 권리를 수호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입니다. 공공기록관리를 대표하는 기관인 만큼 기록전문가의 소명을 다해주시고 전문인들의 자부심을 지켜주시길 소망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안그래도 기록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은편인데 기록원장의 발언으로 공공기관 내기록생산자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기록관리가 어떻게 생각될지 걱정이 된다고 말하고싶습니다.

저는 기록물관리가 민주주의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기록관리전문요원을 배출하는 국가기록원이 이러한 초심과 사명을 잊고 우리나라 기록관리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에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가 개탄스럽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정권에 휘둘리는 기관이 되어서는 안되며, 중립적이고 공정한 역할을 해줄 것을 소망합니다. 

우리나라 기록관리의 오래된 역사 세계기록유산 등을 자랑할 것만이 아니라 동시대 기록관리에 보다 철저해야 하며 국민들이 국가기록원 행태에 관심을 가져주셨음 좋겠다고 얘기해 주셨음 좋겠습니다. 

국가 행정의 처음과 끝에 기록관리가 있습니다. 민주적 절차와 투명하고 책임 있는 공무를 위해 기록을 만들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도록 공공기록물법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국가기록원이 공공기록물법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내란 세력에 동조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기록인은 다시 한번 국가기록원의 존재 이유를 묻습니다. 할 일을 제대로 하시길 촉구합니다. 기록으로 국민들께 존재 이유를 증명해주십시오. 기록으로 민주주의가 튼튼히 설 수 있도록 국가기록원은 지체없이 폐기금지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현재 개탄스러운 계엄 정국에서 계엄 계획 및 실시 기록을 온전하게 보존, 이를 통한 철저한 규명 만이 민주주의를 지켜 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각 기관에서 계엄 관련 기록을 폐기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지만 법적 권한을 갖고 있는 기록원이 소극적으로 공문을 보내는데 그치고 있어, 기록원이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기록을 공부하고, 현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았다. 기록원은 적극적으로 계엄 기록의 보존을 위하여 움직여야 한다. 폐기 금지 조치를 즉각 시행하고, 계엄 관련 기관의 기록물 관리 상태를 점검하라. 

계엄 관련 문건 파쇄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습니다. 제한된 권한 범위 운운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국가 기록 관리 기관으로서 책임 있고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기록 관련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십시요. 역사적 현장에 직면해 관료주의적 작태로 또다시 온 기록 구성원의 부끄러움이 되지 않길 간곡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동안 뭐만하면 개개인한테 연락해서 압박주는데 그런 행동 삼가주세요. 중앙기록물관리기관으로써의 신뢰를 되찾지 못하면 현장에서부터의 해태가 일어날것입니다. 

SPC 제빵기사님들이 대부분 1인근무를 하시는데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공론화할 수 있었거든요. 사측 방해로 노사합의 이행이 제대로 안된 것은 슬픈 일이지만..현장에 계신 선배님들이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단체행동으로 목소리를 낸 게 이때와 비슷한 울림을 주는 것 같아요.

국가기관의 중요기록물은 공공기록물법에 따라 보존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비상계엄 선포 정황을 보여주는 기록들이 불법 폐기되고 있다는 의혹이 있는 상황에서 국가기록원의 대응은 비상계엄 관련 기록물관리에 철저히 협조해 달라는 공문 발송에 그쳤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오직 국민과 나라를 생각하면서 중립적 자세로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으로서의 책무를 다 해야 합니다. 따라서 비상계엄의 증거가 훼손되거나 멸실되기 전에 공공기록물법에 따라 부여된 폐기 금지 조치 권한 등을 이용하여 관련 전자기록과 비전자기록을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시위에 마음을 보낸 전국 각지의 기록물관리전문요원들은 국가기록원이 작금의 사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합니다. 


 

이 시위에 동의하는 사람은 각자 근조화환을 발주하고 대전정부청사로 배송한다. 문구는 위에서 골라쓰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도 있다. 문구의 가독성을 고려하고 배송시간을 당부하여 근조화환이 동시에 모이는 풍경을 만들어보자. 조언과 팁을 서로 주고 받으며 단톡이 집단의 행동이 되었다.

그리고 12월 11일 아침. 출근 시간을 전후하여 단톡방에 근조화환 배달 메시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청사 내로 들어가려는데 경비실에서 막는다, 그런 다른 입구는 어떤가, 정부청사역 4번 출구도 좋다, 청사 앞 공원도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다. 카톡은 다급한 무전처럼 오갔다. 청사 안에 3개, 청사 앞 공원에 40개의 근조화환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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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 배달되는 근조화환 인증샷에 모두들 놀라워했다. 뉴스에서나 보던 풍경이었는데 저걸 내가 한 거라고? 모든 화환이 청사 진입에 성공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뭐 어떤가. 단톡방에서 근조화환 시위 준비를 지켜보던(?) 국가기록원 직원도 이런 광경이 놀라웠을 것이다.(점심먹으러 가는 길에 애써 외면하고 싶었겠지만) 

MBC와 JTBC 등의 취재가 오후, 저녁부터 보도되기 시작했다. 저녁 정규 뉴스에 우리가 보낸 근조화환 뉴스가 나온다. 와. 

옛날로 치면 사관 역할인데"…국가기록원 빽빽이 '근조화환'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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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에는 사관복을 입고 제법 진지하게 여럿이 모여 시위를 했다. 2010년의 일이다. 

역사 없애는 행위 중단하라 

청와대 앞에서 사관복입고 1인시위 했습니다. 

모이는 형식과 시위의 방법은 달라졌지만 마음은 비슷했을 것이다. 공무원으로만 살지 말고,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 말고, 아키비스트 윤리 강령에서 읽은 것처럼 제 목소리를 내라고. 

시간은 걸리겠지만 윤석열은 심판을 받을 것이고, 이 정부는 막을 내린다. 대통령기록관은 이 정부가 남긴 기록의 이관을 시작할 것이다. 부디 깡통 상자를 이관하지 않길 바란다. 다음은 대통령기록관 차례가 될 수도 있다. 


국가기록원은 대체 왜 그럴까, 라고 말하면 억울하고 섭섭한 국가기록원 직원 누군가는 있을 것이다. 조직은 곧 개별 직원이 아닌데, 직원은 조직의 모든 결정에 동의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직업 윤리는 그럴 때 필요하지 않을까. 단톡방에서 누군가 그랬다. 왜 국가기록원에 가면 기록연구직이 다들 행정주사처럼 구는지 모르겠다고. 직업 윤리를 상기하여 누군가 조직의 어떤 나른한 결정에 균열을 냈더라면, 그 균열이 점점 커져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우리는 굳이 모여 근조화환을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직업의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공동의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으로, 언제나 지켜야 할 규범과 규칙을 지닌 집단으로 생각한다면, 그들은 자신감과 함께 일종의 권력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은 예외적인 상황이라는 말을 듣는 바로 그 순간, 직업 윤리는 우리에게 따라야 할 지침을 제공한다. 그러면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 이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다. 
- 티모시 스나이더, <폭정>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던 날 밤, 국회 전산 담당 공무원과 IT 업체 직원 몇명은 국회 담벼락을 넘었고, 지하 비상 통로로 국회에 진입했다고 한다. 그들의 목표는 국회 전자 표결 시스템의 정상 작동이었다. 그들은 전기 코드를 지켰고 표결 시스템은 작동했다. 그리고 비상계엄은 해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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