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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문서는 '전선'이라 적었고, 예술은 '참상'을 그렸다.

전선으로 향한 예술인들, 치열한 기록이 작품이 되기까지

2026.11.04 | 조회 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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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Muse
 임인식 컬렉션(국군 수도사단 병사들 사진)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임인식 컬렉션(국군 수도사단 병사들 사진)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작전문서가 전황을 숫자로 집계할 때,

참호 속 인간의 절규와 비극을 온전히 품어낸 것은 예술이었다.

펜과 붓, 흑백 렌즈가 증언하는 6·25전쟁의 참상을 펼쳐본다.

 

1. 포화 속에서 피어난 증언 : 전쟁 속 예술의 의미

우리는 지나간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주로 정부나 군의 공식 사료를 통해 전쟁의 전황과 성과를 배운다.

하지만 작전보고서에 적힌 '전선' 이라는 건조한 '텍스트' 와 전사자의 '숫자' 만으로는,

포화 한가운데 놓였던 인간의 공포와 비극의 무게를 공감하기 어렵다.

우신출 컬렉션(보병의 5분간 휴식)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우신출 컬렉션(보병의 5분간 휴식)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이 차가운 활자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예술이었다.

6·25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종군 예술가들은 회화와 문학, 사진 등을 도구 삼아

전쟁의 참상을 날것 그대로 기록했다. 문서가 전선의 진격로를 그릴 때,

예술은 그 참호 속에 실존했던 인간의 표정과 현장의 고통을 담아냈다.

 

극단의 파괴 속에서 건져 올린 이 기록들은 반세기가 흐른 지금,

단순한 사료를 넘어 시대를 증언하는 묵직한 작품으로 다가온다.

예술이 온몸으로 증언한 전장의 실존과 참상의 얼굴을 마주해 보고자 한다.

 

2. 보병과 더불어: 동부전선을 따라나선 문총구국대원들

김재문 컬렉션(오른쪽부터 유치환 시인, 이준 화가, 우신출 화가, 오영수 소설가)
김재문 컬렉션(오른쪽부터 유치환 시인, 이준 화가, 우신출 화가, 오영수 소설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화예술인들은 총 대신 펜과 붓, 카메라를 들고 분연히 일어섰다.

전쟁 발발 직후 비상국민선전대로 출발해 국방부 정훈국 산하로 개편된

‘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가 그 시작이었다.

 

그중에서도 시인 청마 유치환을 대장으로 한 문총구국대 경남지부 예술인들은

1950년 가을, 가장 험준한 산악 지대인 동부전선으로 향했다.

부산을 출발한 이들은 북진하는 국군 제3사단을 제23연대를 따라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영해와 묵호, 금강 산 온정리를 거쳐

원산 탈환 직전까지 말 그대로 보병과 더불어 진군했다.

김재문 컬렉션(바닷가에서 휴식하는 문총구국대원들)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김재문 컬렉션(바닷가에서 휴식하는 문총구국대원들)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1950.9.30.부터 10. 17.까지 이어진 종군 길에서 유치환, 우신출, 김재문, 오영수, 이준 등은

급박하게 이동하는 전선의 현장을 온몸으로 맞닥뜨렸다.

그들이 마주한 동부전선은 작전 지도 속 메마른 화살표가 아니었다.

흙먼지와 혹한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삼키던 병사들의 거친 숨결,

그리고 전선 뒤편에 드리운 전쟁의 처절한 모순과 참상 그 자체였다.

이들은 안전한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참호 속에서 보병들과 함께 뒹굴며 전쟁의 현실을 마주했다.

첨부 이미지

이들의 기록이 지닌 가치는, 하나의 전선을 문학·회화·사진이라는 서로 다른 예술적 매체로 입체화했다는 점이다.

 

'시인 유치환'은 1951년 펴낸 종군 시집《보병과 더불어》에 사병들의 고뇌를 시어로 담았다면,

'화가 우신출'은 거친 목탄 크로키로 지친 병사들과 부상병들의 상실한 표정을 화폭에 그렸으며,

'사진가 김재문'은 흑백 렌즈로 파괴된 현장의 실상을 가감 없이 포착했다.

 

2-1. 삶고 죽음, 그리고 전우

동부전선을 따라나선 예술인들이 마주한 것은

38선을 가장 먼저 넘었다는 환호 뒤에 남겨진 승리가 아니라,

눈앞에서 엇갈린 삶과 죽음 그리고 쓰러져간 전우들이었다. 

동일한 비극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당시 분위기와 실상을 기록해 나갔다. 

 

이 응축된 슬픔은 훗날, 작곡가 '이상근'에 의해

장엄한 칸타타《보병과 더불어》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현장에서 탄생해 오늘날까지 비극의 진실을 증언하고 있는

네 예술가의 대표 작품들을 차례로 살펴본다.


• 유치환 시인 : 〈전우에게〉, 〈삶과 죽음〉 등

• 우신출 화가 : 〈전지에서 부상병 등〉, 〈한 보병의 소게〉 등

• 김재문 사진가 : 〈폐허가 된 도시〉 등

• 이상근 작곡가 : 칸타타 《보병과 더불어》 제2악장 전우에게


유치환 시집 <보병과 더불어> 中 '전우에게' 편
유치환 시집 <보병과 더불어> 中 '전우에게' 편
  유치환 시집 <보병과 더불어> 中 '삶과죽음' 편  
  유치환 시집 <보병과 더불어> 中 '삶과죽음' 편  

 

우신출 컬렉션(소게)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우신출 컬렉션(소게)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김재문 켈렉션(휴식하고 있는 병사)_부산 MBC 소장
김재문 켈렉션(휴식하고 있는 병사)_부산 MBC 소장

 

우신출 컬렉션(폐허가 된 마을)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우신출 컬렉션(폐허가 된 마을)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김재문 컬렉션(폐허가 된 도시)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김재문 컬렉션(폐허가 된 도시)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우신출 컬렉션(전선에서-휴식)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우신출 컬렉션(전선에서-휴식)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김재문 컬렉션(휴식을 취하는 군인들)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김재문 컬렉션(휴식을 취하는 군인들)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이상근 작곡가 컬렉션 <보병과 더불어> 악보 표지_국가등록문화유산
이상근 작곡가 컬렉션 <보병과 더불어> 악보 표지_국가등록문화유산
  이상근 작곡가 컬렉션 <보병과 더불어> '2악장 전우에게'_국가등록문화유산  
  이상근 작곡가 컬렉션 <보병과 더불어> '2악장 전우에게'_국가등록문화유산  

 

3.  6·25전쟁의 집대성 : 임인식 사진대장 컬렉션

문학이 언어로 슬픔을 은유하고 화가가 붓으로 고통을 재구성할 때,

카메라는 그 참혹한 피사체 앞에 직접 서서 물리적인 빛으로 현장을 박제해야 했다.

그 무거운 카메라를 둘러메고 전장 한복판으로 들어간 인물이 바로 임인식(1920~1998)이다.

임인식 컬렉션(임인식 대위와 랜돌프 처칠 기자 사진)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임인식 컬렉션(임인식 대위와 랜돌프 처칠 기자 사진)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평북 정주 출생인 그는 1950년 국방부 정훈국 사진대 대장으로 편입되어

총 대신 카메라를 메고 전쟁의 참혹한 현장과 당시의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1952년 육군 대위로 예편한 뒤에는 국내 최초 민간 통신사인 ’대한사진통신사‘를 설립하여

군 화보집 및 전후 사회상을 기록하며 외신에 타전했다.

그가 남긴 수만 점의 흑백 필름은 오늘날 현대사의 귀중한 ‘기록유산’이 되었고,

전쟁 당사국의 시선으로 참상의 민낯을 증명해 낸 결정적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아래의 사진 두장은 임인식 사진대장의 대표 작품으로 손꼽히는 사진이다.

임인식 컬렉션(국군 제17연대 병사들을 환영하는 인천 시민들)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임인식 컬렉션(국군 제17연대 병사들을 환영하는 인천 시민들)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임인식 컬렉션(군용차량에 탑승한 포항 학도병들)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임인식 컬렉션(군용차량에 탑승한 포항 학도병들)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3-1. 참상을 직시한 기록자의 눈

임인식의 렌즈는 작전보고서의 건조한 기록 뒤에 가려진 파괴의 민낯을 피하지 않았다.

폭격으로 뼈대만 남은 시가지, 폭격 맞은 적군의 전차, 부상당한 동료를 구하려는 병사의 모습까지.

공식문서가 담지 못한 전쟁의 비극과 파괴의 현실을 흑백의 명암 속에 고스란히 박제했다.

임인식 컬렉션(연기가 피어나는 북한국 전차 T-34)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임인식 컬렉션(연기가 피어나는 북한국 전차 T-34)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임인식 컬렉션(전투 중 부상당한 병사와 동료 병사)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임인식 컬렉션(전투 중 부상당한 병사와 동료 병사)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3-2. 전장에서 빛난 예술적 감각

그의 시선이 참혹한 파괴에만 머물지 않았다.

철조망을 넘어 운무를 응시하며 경계서는 병사의 실루엣,

급박한 전황 속에서도 밝게 웃고 있는 소년병의 표정 그리고

숨을 고르며 수첩에 무언가를 꾹꾹 눌러쓰는 병사의 서정적인 모습까지.

임인식 컬렉션(향로봉 경계 보초 병사)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임인식 컬렉션(향로봉 경계 보초 병사)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그는 극단의 폐허 속에서도 끈질기게 피어나는 삶의 온기와 인간성을 셔터 속에 온전히 담아냈다.

참상을 가감 없이 직시하는 동시에, 그 어떤 포화 속에서도 끝내 잃지 않았던

인간다움의 품격과 예술적 감각을 함께 빚어낸 기록이었다.

임인식 컬렉션(무장한 소년병들)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임인식 컬렉션(무장한 소년병들)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임인식 컬렉션(조달진 육군 소위(당시 일등병)와 병사들)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임인식 컬렉션(조달진 육군 소위(당시 일등병)와 병사들)_전쟁기념사업회 소장

 

4. 에필로그 : 기록을 넘어선 작품으로, 그들은 '예술인' 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6·25전쟁을 승리한 전과나 사상자의 숫자로만 기억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문학, 미술, 사진, 음악에 이르기까지 전선에 뛰어든 이들이 남긴 다층적인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치열한 현장 증언들이 축적된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전쟁의 참상을 입체적으로 마주하며,

그 비극으로부터 묵직한 역사적 교훈을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들이 본래 고유한 감각을 지닌 예술인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절박했던 기록 행위는 시간이 흐르며 역사 사료의 경계를 넘어섰다.

파괴의 현장 속에서도 구도와 빛, 정서를 놓지 않았던

그들의 시선은 한국 현대 예술사에도 굵직한 궤적을 남겼다.

전선의 실존을 담아낸 이 예술기록들은

오늘에 이르러 온전한 미학적 가치를 지닌 독보적인 '작품'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첨부 이미지
2013년 전쟁기념관 특별전 <전선야곡> 전시 사진
2013년 전쟁기념관 특별전 <전선야곡> 전시 사진

서로 다른 매체로 교차 증언된 기록과 작품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컬렉션을 이룬다.

참혹한 비극을 직시하게 만드는 동시에, 극단의 파괴 속에서도 피어난 예술의 힘을 증명하며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사유와 새로운 창작의 영감을 던져준다.

  전쟁기념관 6·25전쟁 아카이브센터 <전문자료실 아카이브 테이블> 전시  
  전쟁기념관 6·25전쟁 아카이브센터 <전문자료실 아카이브 테이블>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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