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과 2025년 국내에 있는 아카이브 매거진을 <아카이브 매거진 둘러보기>라는 이름으로 소개를 했었다.
[아카이브 매거진 둘러보기 1] 아카이브 프리즘(한국영상자료원)
[아카이브 매거진 둘러보기 2] 기록창고(경북기록문화연구원)
[아카이브 매거진 둘러보기 3] 주간 증평(증평기록관)

그 후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거의 1년 반만에 다시 아카이브 매거진을 찾았다. 그래서 찾은 것이 서울 은평구에 자리한 서울기록원, 그 서울기록원의 매거진 《아카이브 서울》이다.
지방아카이브의 정형을 만들어가고 있는 서울기록원이 매년 한 권씩 선보이는 연간 브랜드북 《아카이브 서울》은 그 묵직한 태생과는 사뭇 다르다. "공문서? 딱딱한 결재 서류 묶음 아니야?"라며 뒤로 물러서는 시민들의 손을 잡아끌며, "이것 봐, 이 서류 한 장 속에 그때 우리가 살던 세상과 온갖 낭만이 다 들어 있어!"라고 속삭이는 본격 '기록 입덕 유발 잡지'이기 때문이다.
서울기록원이 개관한 그 해, 1권(2019)의 힘찬 첫걸음부터 최근 8권(2026)까지, 각 호의 결정적 장면들을 통해 《아카이브 서울》의 맛깔나는 매력을 들여다보자.
1. "경북 청도에서 서울 은평으로 건넨 거대한 바통" — vol.1 (2019)
서울기록원의 역사적인 출발을 알린 창간호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서울이 아닌 경북 청도이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서울의 핵심 문서들을 분산 보관했던 '청도문서고'의 은밀한 50년 역사를 조명했다.
추천 기사 | 〈청도에서 건네는 기억의 바통: 주는 사람의 말, 받는 사람의 말〉
15년간 청도문서고에서 묵묵히 서고를 지키며 삼풍사고 서류, 조상의 땅문서를 발급해주던 김병희 주무관과, 이를 서울로 무사히 모셔오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청도를 찾은 서울기록원 김은아 주무관의 인터뷰는 뭉클한 감동을 준다. '수백 톤의 기억'을 주고받으며 울컥하는 두 사람의 대화는 공공기록이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사람의 책임이자 바통터치임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2. "18미터 도면 한 장이 소환한 1974년의 서울" — vol.3 (2021)
3권의 메인 테마는 서울의 혈관이라 할 수 있는 '지하철 1호선'입니다. 서울기록원 소장 기록 중 가장 길다는 18m 길이의 1호선 평면도를 복원하며 펼쳐지는 에피소드는 한 편의 영화 같다.
추천 기사 | 〈18m 평면도, '오래된 서울'을 세상으로 불러내다〉 & 〈민원과 분투로 마침내 열린 '시민의 발 시대'〉
컴퓨터도 없던 1970년대, 종이를 이어 붙여 손으로 일일이 그린 18m 도면 속에는 사라진 종각 앞 '화신백화점'과 파고다 아케이드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쉰다. 동아일보 사옥 지하 우물이 마를까 봐 노선을 급커브로 틀어버린 비화, 소음 민원 때문에 밤마다 디젤 해머로 쇠말뚝을 때려 박던 기술자들의 땀방울, 숭례문과 동대문 진동 훼손을 막으려 지발뇌관을 터뜨리던 순간 등 당시의 치열했던 분투기가 생생하게 복원된다.

3. "지도 한 장 위에 겹쳐보는 우리의 일상과 기억" — vol.5 (2023)
5권의 화두는 '지도'이다. 전쟁 직후 폐허가 된 수도를 다시 설계하던 1950년대의 도시계획 지도부터 현대의 커뮤니티매핑까지, 지도를 '정형화된 공간 정보'가 아닌 '이야기를 품은 기록'으로 재해석하였다.
추천 기사 | 〈공공기록에 시민 경험 더해 읽기 - 시민 김윤진 씨의 '기록읽기' 참가기〉
서울기록원이 낡은 1호선 지하철 공문서를 꺼내놓고 시민 8명과 함께 진행한 '기록읽기 모임' 참관기이다. 딱딱한 정부 문서를 시(詩)처럼 소리 내어 낭독하자, 잊힌 옛 역 이름(화신앞역)이 튀어나오고 참가자들의 첫 상경 기억,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달리기 추억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공공기록이 개인의 기억을 만났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마법 같은 순간을 유쾌하게 증명해준다.

4. "기록맛집 5주년, 행정기록부터 B급 감성까지 총출동" — vol.6 (2024)
서울기록원 개원 5주년을 맞이해 발간된 6권은 그야말로 '기록 종합선물세트'이다.
추천 기사 | 〈‘기록맛집’ 서울기록원 직원이 추천하는 ‘이 소장 기록!’〉 & 〈앤디 워홀 'Time CAPSULE'로 만나는 아트 아카이브〉
기관 직원들이 직접 나서서 1909년 순종 융희 연호가 찍힌 가장 오래된 토지 도면, 1959년 시의회 직원 출근부, 독재 시절 검열의 상징이었던 1980년 '공연자등록 신청서'를 찰진 입담으로 소개한다. 여기에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이 영수증부터 가발, 심지어 본인 틀니까지 종이상자 610개에 쑤셔 넣었던 상자 아카이브(Time Capsule) 이야기를 버무리며, 기록은 결국 '사라지는 것에 대한 지독한 애착'이라는 메시지를 위트 있게 던진다.

5. "만인의 응접실, 다방에서 건져 올린 도시의 낭만과 규제" — vol.8 (2026)
가장 최근에 발간된 8권은 커피공화국 서울의 뿌리인 ‘서울 다방사(茶房史)’를 파고든다.
추천 기사 | 〈기록으로 보는 ‘서울 다방사’〉 & 〈『탐방다방』 저자 홍윤주의 ‘다방 예찬’〉
1902년 손탁호텔 1층에서 시작해 시인 이상의 제비다방, 1960년대 전화가 없어 '공용 전화기'로 상거래를 트던 사장님들의 사무실, 그리고 1970년대 디제이 박스와 1980년대 올림픽 대비 국산차(쌍화차, 율무차) 의무 판매 단속 공문서까지! 법령 속 ‘휴게음식점’이란 메마른 행정 단어 이면에 넘실대던 청춘과 시대의 풍경을 전국의 오래된 다방 100곳을 탐방한 건축가의 인터뷰와 함께 유쾌하게 엮어내었다.

《아카이브 서울》이 우리에게 던지는 이야기
'행정기록'의 딱딱한 껍질을 깨부수는 탁월한 스토리텔링
보통 공공기관 기록관의 간행물은 기관 실적 보고서나 학술지로 흐르기 십상이다. 하지만 《아카이브 서울》은 공문서의 뼈대 위에 시민의 구술, 문학, 대중문화, 일상의 소소한 기억이라는 살을 입힙니다. '지하철 도면'을 도시의 성장통으로 읽어내고, '다방 단속 공문'을 청춘의 문화사로 읽어내는 감각은 타 기관이 벤치마킹해야 할 큐레이션의 정수이다.
거대 도시 서울의 스케일과 미시적 일상의 완벽한 조화
국가기록원이 거시적 국가사를 다루고 작은 지역 기록관이 소소한 마을사를 다룬다면, 서울기록원은 '천만 도시의 거대한 인프라 구축사(1호선, 도시계획, 공원 등)'와 '그 속을 누비는 시민 개개인의 사소한 일기·사진'을 절묘하게 교차시켰다.
기록의 미래를 향한 열린 실험실
단순히 과거 종이를 털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3D 스캐닝과 VR로 공간을 기억하는 기술(테크캡슐), 생성형 AI가 아카이브에 던지는 질문, 비디오테이프 변환을 통한 시민 추억 재생 등 '기술과 기록의 융합'을 잡지 속에서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다.
마무리하며
《아카이브 서울》을 읽다 보면 "기록은 과거를 모셔두는 박제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가 미래로 부치는 가장 다정한 편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종이 냄새 가득한 서고 속에서 서울의 숨결을 건져 올리는 이 멋진 브랜드북, 서울기록원 홈페이지에서 PDF로 다운로드 받아서 꼭 한 번 펼쳐보길 권한다.
- 아카이브 서울 vol.8 일상의 흔적, 시대의 기록 https://archives.seoul.go.kr/post/5840
- 아카이브 서울 vol.7 변화를 담는 그릇, 기록 https://archives.seoul.go.kr/post/5164
- 아카이브 서울 vol.6 시민 곁에 기록원 https://archives.seoul.go.kr/post/4421
- 아카이브 서울 vol.5 기록가 재현 그리고 상상 https://archives.seoul.go.kr/post/3477
- 아카이브 서울 vol.4 기록이 된 삶, 삶이 되는 기록 https://archives.seoul.go.kr/post/2758
- 아카이브 서울 vol.3 기록, 서울처럼 https://archives.seoul.go.kr/post/1618
- 아카이브 서울 vol.2 기억으로 산책하기 https://archives.seoul.go.kr/post/640
- 아카이브 서울 vol.1 기억의 바통터치 https://archives.seoul.go.kr/post/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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