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반. 자고 있을 다른 가족들이 깨고 있지 않게 핸드폰 알람을 빠르게 끄고 집을 나섰다. 오늘 오후 부산의 가덕도에 있을 신공항 건설 반대 예술행동에 참여하기 위해 아침 열차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고향이 부산 영도인 나에게 가덕도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개인적으로도 낯선 일이 아니었다. 부산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영도, 을숙도, 산업단지를 지나 가덕도 입구에 도달했다. 초입에서 탄 버스는 눌차 대교를 건너 섬 안으로 진입했는데, 지나는 마을들 곳곳마다 공항 건설을 반대하고 강제 이주를 규탄하는 현수막들이 걸려있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이동하던 버스는 순환 지점인 대항마을에서 멈춰 섰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외양포 마을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는데, 왼편으로는 산이, 오른편으로는 바다가 짙은 안개에 싸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행사 집결지인 외양포 전망대는 전국 각지에서 온 참여 예술인들로 붐볐다. 퍼포먼스 예술 행동은 총 3시간으로, 비가 장대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먼저 행사 기획자인 “가득한 가덕” 프로젝트의 이동근 작가님의 소개부터 시작해 목포, 광주, 창원 등 타 지역에서 온 예술인 연대 단체들, 그리고 가덕도 신공항 반대 시민운동의 발언으로 이어졌다.
부산 아래에 위치한 가장 큰 가덕도에는 무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사람들의 출입이 제한되면서 보존된 숲은 무수한 동식물들의 보금자리로 존재해왔고, 마찬가지로 연안 습지와 갯벌에는 독자적인 해양 생태가 형성되어 있어왔다. 이 모든 존재들은 공항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하미화 작가님은 시 낭독을 통해 이번 사태로 인해 지워진 비인간 생명들을 하나 하나 호명해오며 함께 기억하고 애도했다:
나는 상괭이, 조용히 웃는 바다의 생명입니다
나는 아재비 달팽이, 느리지만 꿋꿋이 걷는 섬의 기억입니다
나는 팔색조, 숲을 노래하는 빛깔입니다
나는 대흥란, 아무도 모르게 피었다 사라지는 귀한 꽃입니다
나는 수달, 맑은 물을 찾아 흐르는 생명입니다
나는 반딧불이, 밤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가덕도에 살아 있습니다
공항이 오면 우리는 사라집니다
우리 없는 섬은 진짜 섬이 아닙니다
가덕도는 공항이 아닙니다.
가덕도는 생명입니다.
시 낭독이 끝나고 함께 포진지부터 우물 등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며 곳곳에 산재한 과거 식민주의의 흔적들을 목격했다. 일본군에 의해 내쫓겼던 주민들은 전쟁 이후 일본군의 시설을 그대로 사용해왔다. 바닷가 쪽으로 함께 행진하던 중 한 작가분이 보리수나무 열매를 따주셨는데, 어린 시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섬에 살던 시절, 나는 할머니 뒤를 항상 졸졸 따라다니곤 했다. 할머니께서는 밭일을 하시다가 뒷마당에서 자라는 앵두나 무화과를, 해안가를 함께 돌아다니다가 굴을 발견하면 손수 따서 입에 넣어주셨다.
바닷가에 도착하자 참가자들은 모두 하나씩 끝에 멸종 위기종 새들이 수놓아진 붉은 깃발이 달린 대나무 장대들을 건네받아 퍼포먼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방파제 양옆으로 깃발을 든 채 일렬로 섰고, 그 사이로 흰 소복을 입고 청록색 깃털이 그려진 장옷을 두른 무용수가 곡선을 그리듯 춤을 추며 부두 끝을 향했다. 퍼포먼스가 끝날 때쯤 비가 그쳤다. 자갈해변에서 퍼포먼스는 이어졌는데, 광주의 김화순 작가님은 자신이 배너에 그린 그림 아래에서 바다와 땅의 경계 사이에 몸을 뉘었다. 장장 3시간에 걸친 빗속의 퍼포먼스는 포진지로 돌아와 다른 참여 예술인들의 구술 및 플래시몹 퍼포먼스, 그리고 민주주의와 생명을 노래하는 기타 연주로 맺음 지었다.
가덕도가 신공항 건설지로 공표되자 많은 민속학자와 기록연구가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가덕도가 과거의 편린으로서, 기록만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가덕도가 살기를, 이번 문제가 정책적 전환점이 생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행사 도입부에 이동근 작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덕도 신공항은 단지 ‘공항 하나를 더 짓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가치 위에 나라를 세울 것인가에 대한 선택입니다. 우리는 오늘, 생명과 환경, 역사와 미래, 그리고 안전을 위한 선택을 요구합니다.” 식민주의 시절부터 이어진 개발주의는 어쩌면 몸과 자연 사이의 영적, 물리적 연결을 영영 상실하게 해온 것은 아닐까. 우리는 과연 과거를 지우고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자연을 계속해서 필요 이상으로 고갈시키고 깎아내면서까지 만들려고 하는 사회는 누구를 위한 걸까? 그리고 그 사회는 과연 “좋은 세상”일까?
가덕도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한 추천 문헌 (무료):
- 1904, 흐르는 섬 가덕도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Lh0AB652wTI 디지털 문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온라인으로 열람 가능)
- 국립민속박물관: 가덕도의 민속문화, 대항동 편 (디지털 문서: https://www.nfm.go.kr/user/publbook/home/1232/selectPublBookSetViewDetail.do?publBookIdx=9243&publBookCateS=&publBookSetIdx=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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