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 공지사항

B.

한파가 찾아오는 날은 기록물 폐기하는 날

매년 나는 비전자기록물을 평가하고 폐기한다

2024.12.03 | 조회 412 |
2
|
from.
바바푸푸

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廢棄(폐기) = 못 쓰게 된 것을 버리는 행위

우리 기관은 한 해 업무가 마무리되는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기록관 옆에 폐기를 위한 차량이 들어온다. 기록관 안에 준비된 폐기대상은 줄지어있다가 큰 통에 담긴 후 그대로 파쇄기에 사정없이 갈려나간다. 파쇄기는 굉음을 내며 몇 시간 동안 열심히 제 몫을 다해주고 떠난다.

기록학에서 말하는 폐기는 물리적인 파괴 혹은 폐기를 의미하며, 기록관에서 더 이상 보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된 기록물을 대상으로 분쇄, 소각, 펄프화, 용해 등의 방법으로 수행된다. (기록학 용어사전 p.268)

연구사와 기록학 전공자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엔 매번 기록물 폐기와 관련된 업무 질문들이 오고 간다. 필자 역시 법령과 정보공개포털에 올라온 타 기관 기록물관리전문요원들의 공문으로 방향을 잡곤 했다. 이번 글은 올해 기록물 폐기를 마무리한 기념으로 우리에게 폐기가 갖는 의미를 살펴봄과 동시에 초보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을 위한 폐기 과정의 요약본이 되었으면 한다.

[사진1] 우리관 비전자기록물 폐기하는 모습 
[사진1] 우리관 비전자기록물 폐기하는 모습 

기록물 폐기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의 존재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공공기관에서 기록물을 폐기하기 위해서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의 심사와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 공공기관에서 기록물 폐기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실제로 몇몇 기관에서는 기록물 폐기을 위해 연구사를 한시적으로 채용하는 꼼수를 보이기도 한다.

한편, 최근 한 기관에서는 담당업무에 기록물 평가폐기를 제외한 채 기록관리 전문인력 채용을 진행했다. 단 하나의 업무가 제외되었을 뿐인데 실무경력이 없을 때 지원하기 적합한 곳이 되었다.


  •  “폐기선고 책 45만권 구출작전, 결국 27만권은 과자상자가 됐다.”(한겨레,24.10.28.)
  • “검찰 특수활동비, 전액 삭감을 물론 수사가 필요.”(뉴스타파, 24.11.11.)
  • “교육부, 의대 2천명 정한 회의록 파기시인.”(뉴시스, 24.8.16)

기록물 폐기는 위와 같이 언론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부정적으로.

기록물 폐기가 기록물관리전문요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이자 법과 절차에 따른 기록물 폐기가 중요한 이유이며,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필요한 이유이다.

① 공공기관이 기록물을 폐기하려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41조제1항에 따른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심사와 제27조의2에 따른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27(기록물의 폐기)

 

기록물 폐기는 기록관에 보관된 비전자기록물 중 보존기간이 경과한 기록물을 선별하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선별된 목록은 생산부서에 전달하여 담당자로서의 의견을 수렴한다. 기록물평가심의회를 처음 개최하는 우리 기관은 생산부서 의견을 받는 시작 단계부터 시행착오를 겪었다. 과거에 생산된 기록물이 없는 건 예전에 이사하면서 다 버렸나봐.” 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던 분들이 정작 본인이 맡은 업무 기록물이 보존기간 만료 기록물이었을 땐 조심스러움을 넘어 다소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① 공공기관의 장 및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은 보존 중인 기록물의 평가 및 폐기를 위하여 민간전문가를 포함한 기록물평가심의회를 구성ㆍ운영하여야 한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27조의2(기록물평가심의회)

 

기록물평가심의회는 외부 전문가를 위촉해야 하기 때문에 지방에 위치한 기관의 연구사라면 걱정이 많아진다. ‘터미널에서 멀리 떨어진 이 외진 곳까지 와주실 수 있을까.’, ‘금액이 적지는 않을까.’ 등등. 막상 연락을 드리면 모든 분들이 흔쾌히 와주시겠다고 하지만 전화기를 들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한다. 전화기를 들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한다.

 

 기록관 또는 특수기록관의 장은 보존중인 기록물 중 보존기간이 경과한 기록물에 대하여는 법 제27조제1항에 따라 생산부서 의견조회법 제41조제1항에 따른 기록물관리 전문요원(해당 기록관 또는 특수기록관 소속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을 말한다)의 심사 및 제5항에 따른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보존기간 재책정폐기 또는 보류로 구분하여 처리하여야 한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43(기록관 및 특수기록관의 소관 기록물 평가 및 폐기)

 

기록물평가심의회는 대상 기록물을 두고 보존가치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된다. 기록물분류기준표를 개정하며 보존기간을 조정하거나 단위업무마다 보존기간이 타당하게 부여되었는지 2시간을 꽉 채워 열띤 심사를 진행한다. 간혹 연구사 입장에서는 폐기가 가능하다고 심사하였지만 생산부서 담당자의 보류 요청이 있는 경우에는 시간이 조금 더 지체되기도 한다.

 

⑤ 공공기관의 장은 관할 기록관 또는 특수기록관의 기록물 평가 및 폐기를 위하여 기록물평가심의회를 구성ㆍ운영하되기록물평가심의회의 위원은 기록물의 보존가치 평가에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5명 이내의 민간 전문가 및 소속 직원으로 구성하고, 2명 이상의 민간 전문가를 포함하여야 한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43(기록관 및 특수기록관의 소관 기록물 평가 및 폐기)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부터 쉽진 않다. 평가심의회를 구성하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데 기관의 1인 연구사에게는 업무 역량, 소통 능력 등도 중요하지만 업무 퍼포먼스도 중요하다. 필자의 역량이 부족하여 공감설득시키지 못한 부분은 기록학전문가들의 프로페셔널함을 빌려 해결하기도 했다. 따라서 민간전문가 구성 과정에서 부서장과의 의견 차이도 존재했지만 기록학 외부전문가가 포함되게끔 지켜내야만 했다.

평가심의회가 마무리된 후엔 오롯이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의 시간과 정성을 녹여내는 작업이 시작된다. 예를 들어, 오래된 지출 문서의 경우 두껍고 무거운 파란색 바인딩이거나 철끈, 철심으로 고정되어 있어 이를 제거하는 작업이 필수다. 철심을 제거하다 보면 이렇게 10년 이상 하다보면 생활의 달인에 나갈 수 있지 않을까.’는 생각이 들 정도다.

폐기 때 발견되는 비전자기록물 편철
폐기 때 발견되는 비전자기록물 편철

폐기 대상 목록이 실물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대조 작업은 폐기일 직전까지 신중하고 꼼꼼하게 진행된다. 폐기 당일엔 몇 개월간의 과정이 모두 담긴 필자의 수고스러움이 시원하게 폐기 차량으로 들어간다. 기관 내 현장파쇄가 원칙이기 때문에 현장 감독까지 마무리하면 한 해의 폐기가 끝이 난다. 필자에게 평가심의회부터 폐기까지의 과정은 굉장한 부담과 책임감을 수반하는 일인지라, 확인 또 확인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입김이 나오는 계절이 되어 있곤 했다. 매년 한파가 찾아오는 날이 기록물 폐기일이 되는 이유이다.

관람객에게는 조용한 산책로를 방해하는 시끄러운 무언가가 될 수도 있고 직원들에게는 추운데 폐기하나보다.’ 의 작은 에피소드겠지만 기록물관리전문요원에게는 수개월간 많은 정성과 노력이 수반되는 큰 의미를 갖는 작업이다. 필자에게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된 후 처음으로 기록물평가심의회를 개최한 날과 기록물 폐기를 했던 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선배 기록물관리전문요원분들에겐 초반의 서툴던 추억을 꺼내는 시간, 아직 실무를 해보지 않은 기록물관리전문요원들에게는 조금이나마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글을 마친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기록과 사회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2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

    0
    1 day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 2024 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자주 묻는 질문 서비스 소개서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