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눅스와 시냅스
우리는 매일 리눅스를 사용한다
인터넷의 상당 부분이 리눅스로 돌아가고 있다. 리눅스 없이는 인터넷도 없다. 오픈 소스인 리눅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는 셀 수 없이 많다. 예를 들어 안드로이드가 있다.
리눅스는 1991년도에 헬싱키의 한 대학생이 취미로 개발한 운영 체제에서 시작됐다. 그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원했고, 리눅스 커널 소스 코드를 인터넷에 공개하며 '우리 같이 이거 만들어요!' 했다. 그렇게 시작되어 수 십 년째 이어져온, 수 만명의 개발자가 참여한 이 글로벌 스케일의 돈 안 되는 협업 프로젝트의 경제적 가치는 2021년 기준 6조 5천억 원에 이른다.
잠깐, 이게 무슨 소리지? 서로 얼굴도 본 적 없는 전 세계 수 많은 개발자들이 무보수로 협력해서 인터넷의 핵심 부품을 만들었다고?(각주 1) 그리고 그게 그 사람들의 '일'은 아니었다고?
더 이상 아무도 똑같이 생긴 값싼 차를 원하지 않는다
대량 생산의 시대는 끝났다(각주 2). 우리는 더 이상 단순 반복 노동을 하지 않는다. 그건 기계의 일이다. 기계는 식대도 쉬는 시간도 필요 없고, 아프지도 파업하지도 않는다. 인간들은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도록 재배치되었다. 지적 혹은 감정 노동이다. 거기서 기계처럼 일한다.
우리는 더 이상 단순 반복 노동을 하지 않는데, 왜 여전히 기계처럼 일하는 것일까?
파박파밧 vs 울끈불끈
21세기 노동자들을 지식 근로자(intellectual workers)라고 부른다. 출근해서 머리 쓰는 일을 한다. 20세기 주류였던 몸 쓰는 일은 이제 비주류다. 두뇌의 뉴런과 시냅스가 파박파밧 잘 활성화되는 게 근육이 울끈불끈 시킨 대로 움직이는 것보다 중요해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뇌 회로를 파박파밧 잘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딥슬립과 딥워크
미팅은 독성물질이다(Meetings are Toxic)
라고 주장하는 한 유명 IT 스타트업 대표에 따르면, 일에 몰입한다는 것은 잠에 드는 것과 비슷하다. 수면에는 여러 단계가 있고, 이전 단계를 거쳐야만 깊은 잠에 들 수 있다. 중간에 깨면 처음부터 다시 잠들어야 한다. 오래 잔다고 해서 깊게 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집중도 똑같다.
자, 이제 딥슬립을 위해 동료들과 다 함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모여 다 똑같은 침대에서 잠을 청해보자!
'어려운 일을 빠르게 익힌다'는 것과 '탁월한 성과를 낸다'는 것
2016년 한 컴퓨터과학 교수가 쓴 <딥워크>라는 책은 미엘린(myelin)이라는 단백질을 소개한다. 미엘린은 뉴런의 축삭(axon)을 감싸는 지방질이다. 뉴런은 우리 두뇌의 기본 구성단위가 되는 신경 세포다. 마치 전깃줄의 고무 피복처럼, 미엘린은 뉴런의 전기 신호를 손실 없이 빠르게 전달해 주는 절연체다.
무언가를 잘한다는 건 이와 관련된 두뇌 회로, 즉 뉴런 네트워크가 얼마나 잘 활성화되느냐에 달려 있다. 미엘린이 해당 회로를 두껍게 감싸고 있을수록 힘 들이지 않고 빠르게 회로가 활성화되어 그 일을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다.
이 좋은 미엘린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그 일을 집중해서 하면 된다. 두뇌 회로는 쓰면 쓸수록 강화된다. 관련 뉴런 네트워크에 미엘린이 알아서 쌓인다. 하지만 우리의 집중이 분산되면 동시에 여러 개의 두뇌 회로가 활성화되고, 특정 뉴런 네트워크를 강화하긴 어려워진다.
옆자리 동료에게 말 거는 비용, 한 번에 (시급*1/3) 원
<딥워크>는 '잔여 집중(attention residue)'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하나의 일을 하다가 다른 일로 넘어갔을 때, 집중력의 일부는 아직 그 이전 일에 남아있다는 거다. 한 번 흐름이 끊긴 일이 다시 흐름을 타려면 최소 20분이 걸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분에 한 번씩 알람이 울린다면 깊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단 1분도 없다!
나는 딥워크를 '방해받지 않는 오랜 집중의 시간을 사수하면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다'로 이해했다.
이메일, 슬랙, 미팅, 소셜 미디어 등 우리의 일하는 방식은
업무 시간을 산산조각내서 업무 순간들로 쪼개버린다. 깊게 집중하는 데에는 전부 방해만 된다. 그럼 협업은 어떻게 하냐고? 문서화(documentation)해서 비동기적으로 소통(asynchronous communication) 하면 된다. 이것이 리눅스가 만들어진 방식이다. 리눅스보다 복잡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몇이나 될까?
문서화는 빠른 의사소통과 결정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미팅이 사람들의 반응(reaction)을 알아내기에 적절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난상토론을 통해 2시간 만에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냈다고 좋아할 순 있지만, 우리가 깊이 고민해 본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대화보다 글이 깊이 있는 생각을 나누기에 더 적절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다 보면, 산책하며 샤워하며 그 생각을 이리저리 머릿속에서 굴리다 보면, 눈덩이처럼 생각이 불어나기도, 단단히 뭉쳐지기도 한다.
글이 싫다면, 비디오나 오디오를 미리 녹화/음 해서 링크를 공유하는 툴도 편하다.
누구를 위한 원격 근무인가?
1930년대 대공황이 미 전역에 주 40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시대적 배경이었다면,
2020년대 코로나는 전 지구에 동시다발적으로 원격 근무를 설치한 시대적 폭탄이었다. 모두가 '언젠가 하겠지' 싶었지만, 그게 당장 내일부터일 줄이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전산 인프라나 문화적 준비 없이 급하게 원격 근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해보니까 좋더라. 어? 집에서 하니까 일이 더 잘되네? 라는 직원들이 나왔다. 자기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회사도 계산기 뚜들겨보니 서울 오피스 월세 굳는 게 어마어마했다. (회사들이 원격 근무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인재 채용 때문이라던데, 한국 회사들은 별로 관심 없어 보인다. 전 세계 인구의 0.8%만 활용해서 어떻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건가?)
하지만 부장님은 부하직원들이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출근해서 마스크 끼라고 한다. K-직업윤리를 갖추지 못한 양놈들은 '자 이제 다시 오피스 출근하세요' 그러면 퇴사해 버린다. 애플이 구글에서 스카우트해 온 머신 러닝 담당 임원도 퇴사해 버렸다. 주 3일만 출근하면 된다고 했는데도! 예끼, 다들 배가 불렀지 뭐야?
하지만 원격 근무가 직원들만을 위한 걸까? 집에서 하니까 일이 더 잘된다는 건 피노키오 코 길어지는 소리일까? 아니면 이것이 진정한 성과주의로 가는 지름길일까? 어쩌면 이게 21세기 우리가 일하는 방식은 아닐까?
오피스 멘탈리티는 죽었다
표준화와 대량 생산이라는 컨베이어벨트 멘탈리티를 버리고 나에게 최적화된 업무 환경을 찾아보자. 사람마다 바이오리듬이 다르고, 선호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이 다르다. 내 맘에 쏙 드는 업무 시작/종료 루틴은 무엇일까? 그게 꼭 출퇴근일 필요는 없다. 두뇌에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것 같을 때 푸시업을 할 것인가 스쿼트를 할 것인가?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인센스 향은 어떤 것인가? 스탠딩 책상 아래에 러닝머신을 두고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일할 것인가 아니면 최고급 의자에 앉아서 일할 것인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뒤흔들 '그놈'이 온다
내 옆자리 동료가 AI 라면 어떨까? 앞으로 '일잘러'의 기준은 일 할 때 AI를 얼마나 잘 써먹느냐가 될 것이다. 참고로 이 글의 커버 이미지는 미드저니(Midjourney, 각주 3)라는 이미지 생성 AI가 만들어줬고, 첫 문단은 ChatGPT라는 대화형 인공지능이 반쯤 써줬다. 뉴런에 대해서 10개쯤 꼬리 질문을 했는데도 귀찮아 하지 않았다.
내 옆자리 동료가 정말로 AI 라면 어떨까?
원자(atom)로 이루어진 물리적 세상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것은 컴퓨터와 인터넷 망뿐이다.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상, 메타버스에 강남의 닭장 오피스는 없다.
요즘 것들
이집트에서 발견된 6천 년 전 무덤에는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소크라테스께서는 '요즘 것들 폭군이다'라고 말씀하셨으며, 플라톤께서는 '요즘 애들 무슨 일이냐'라고 하셨다. 아무튼 요즘 것들은 기원전부터 싸가지가 없었나 보다.
2025년도에 Z세대는 OECD 노동인구(workforce)의 27%를 구성하고,
전 세계 인구의 30%를 차지하게 된다. 이들이 일의 미래(Future of Work), 우리의 일과 일하는 방식을 정의할 것이다. 이렇게나 중요한 그들을 이해해보려 미디어와 분석 기관들이 앞다투어 장님 코끼리 더듬고 있다. 그 미래가 시간이 흘러 현재가 될 때까지는 아무도 모를 것 같다.
세계경제포럼은 아래 그래프를 '요즘 애들 일 못 구해서 어쩌니' 정도로 해석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요즘 것들은 표준직업분류에 없는 직업을 지들이 만들어서 하는군'라고 해석한다.(각주 4)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이 있었던 인터넷 원주민들이고, 100년 전 일하는 방식대로 일하도록 그들을 설득하는 건 무척 어려울 것이다.
누구를 위한 원격 근무인가? 직원? 아니면 그들의 생산성을 높이고 싶은 회사? 아님 옆자리 AI동료? 그것도 아니면 요즘 것들?
다음 글에서는 원격 근무라는 일에서의 변화가 어떻게 나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이어졌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원문 게시일: 2023년 1월 31일 (링크)
- 커버/썸네일 이미지 출처:Midjourney의 맞춤 제작. 프롬프트(prompt, 주문 내용)는 각주 참고
- 뉴런 이미지 출처: <1000억 개 뉴런, 100조 개 시냅스… 이들은 기억에서 무슨 일 할까> 기사
- 비동기적 의사소통 그림: 비동기적 일하는 방식을 신봉하는 부족민들의뉴스레터
- 세대별 인포그래픽 출처:Mccrindle
- G7 노동인구 중 젊은이들 비중 출처:World Economic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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