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기 특별호] 바다 보며 쓰는 편지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인이기]의 연정모입니다.

저는 지금 동해안에 와 있습니다. 혼자 있습니다. 편지를 쓰고 싶어져 때 이르게 등장했어요. 

원래는 어제 낮부터 느긋이 여행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변한 상황 때문에 일정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회 앞 수많은 깃발과 응원봉 아래에서 작게 자리 지키다 왔습니다. 한 번 미룬 기차표를 또 놓칠 순 없어서 표결이 시작되기 전에 나섰는데요. 지하철 안에서 확인한 속보들은 어디 말할 수 없이 부끄럽고, 참담했습니다.

이것은 어제 제가 여의도에서 신길역으로 가는 구름다리 위에서 본 버드나무들입니다. 여의도로 들어오는 빽빽한 사람들을 거슬러 걸었습니다. 함께 걷던 친구가 제 무거운 배낭을 대신 메어 줬어요. 하늘이 푸른색과 분홍색을 동시에 띠었습니다. 자꾸만 풍경을 두리번댈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러다 내려다 본 샛강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버드나무는 겨울에도 연약한 연둣빛이더군요. 작은 잎들이 한 몸짓으로 흔들리는 것이 마치 구름의 덩어리 같더군요. 오래전부터 여기 살았던 것이 분명한 키 큰 나무들이 저의 발 밑에 있었습니다.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핸드폰을 쥐고 뉴스를 새로고침하면서도, 그 버드나무들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시간. 그 이상한 시간 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 한 번의 참담을 안고 잠든 어제가 지나고 오늘 아침에 본 바다입니다. 겨울의 동해만큼 제대로 파란 게 있을까요. 충분히 보았다, 충분히 찍었다 생각하고 한 걸음 걸으면 또 완전히 달라보이는 바다입니다. 덕분에 추운 줄도 모르고 계속 물 구경이나 했고요. 어떤 어리석은 역사 속에서도 십이월의 동해 바다는 언제나 같은 아름다움으로 빛났을 것을 생각하면 작은 안도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다들 변함없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슬프고 괴롭더라도 몸으로 신호가 오진 않았으면 좋겠고요, 잠도 잘 잤으면 좋겠어요. 일상의 커피나 연말의 친구들 그런 즐거움을 소중히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은 그저 멀쩡하고 아름다운 삶이니까…

저는 지금, 뒤로 밀려났다가 다시 바위에 힘차게 부딪치는 파도를 보고 있습니다. 그 일이 끝없이 반복됩니다. 그것이 파도의 용기고 파도의 눈부심입니다. 저는 치욕 없이 부딪치고 싶습니다. 

다들 건강하시기를요! 목도리 모자 핫팩과 함께, 감기 모르는 겨울 되시기를. 🧣

연정모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