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B102호에서 살았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해는 잘 안 들지만 먼지는 잘 들어오는, 장마 때 물이 차는 집도 있었고 곰팡이가 블랙홀마냥 벽지를 잠식한 집도 있었다. 빌라에 오래 살아서인지 원래 타고나기를 빌라가 편한 것인지 나는 빌라가 좋다.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들고 쾌적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집에 들고 나가는 게 편하고 집집마다 구조가 다르고 때로는 아주 특이한 공간이 있다는 것도 재밌다. 지금 사는 집은 돌출형 창문이 있어서 좋다. 화분을 내놓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이 공간이 있어서 고양이 모카리를 데려올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돌출된 창문 턱은 모카리가 거의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곳이 되었다.
어릴 때는 빌라가 즐비한 골목길을 탐험하는 것이 즐거웠다. 마치 미로처럼 골목 골목을 다니다 보면 모든 길은 통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여전히 낯선 동네에 가면 골목 구석구석 정처 없이 걷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내가 발견해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들이 골목 속에 숨어있다는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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