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마지막 날 아무것도 뱃속에 집어넣지 않고 있었더니 몸속에서 굉장한 소리가 났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사과를 깎아 먹었다. 굉장히 큰, 영주에서 온 사과였다. 껍질이 까슬한 게 먹어보지 않아도 맛있는 사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처음엔 네 조각으로 사과를 가르고 그 다음엔 껍질을 깎고 그 다음엔 한 조각의 사과를 다시 얇게 세 조각으로 나누어 입에 넣었다. 씹기 적당한 두께가 마음에 들었다.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기보단 턱을 움직이기 위해 칼질을 하는 듯했다.
얼굴에 물만 찌끄리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현관 밖으로 나섰다. 노트북과 아이패드와 노트를 챙긴 가방을 들고. 나가기 전부터 리치몬드 제과점에 가야 겠다고 목표를 설정했다. 어떤 사람들은 일단 나와서 어디로 갈지 고민하기도 하지만 나에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네이버 지도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카페를 찾아보고 휴무가 아니고 휴식 시간도 아니고 문 닫는 시간이 늦은 곳을 찾는다. 여긴 너무 밝아서 별로, 여긴 눈치가 보일 것 같아서 별로, 여긴 너무 조용해서 별로... 그렇게 별로인 곳을 지우고 나니 리치몬드 제과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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