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to both, bee and flower, the giving and the receiving of pleasure is a need and an ecstasy.
Kahlil Gibran, The Prophet (1923), "On Pleasure"

마다가스카르의 숲에서 피어나는 다윈의 난초(Angraecum sesquipedale)는 정제된 우윳빛 밀랍처럼 매끈한 꽃잎 뒤로 가늘고 긴 대롱 모양의 관이 늘어져 있습니다. ‘거(距, nectar spur)’라 부르는 꿀주머니로, 그 길이는 30센티미터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 꿀에 닿을 수 있을 만큼 긴 입을 가진 곤충에게만 달콤함을 허락하는 것이지요.
“오 세상에나, 도대체 어떤 곤충이 이 꽃에서 꿀을 빨아먹을 수 있단 말인가!”
1862년, 이 난초의 표본을 받아 본 찰스 다윈은 꽃의 외형을 살피는 것만으로 한 번도 보지 못한 곤충을 상상했습니다. 이 난초의 관 가장 깊은 곳에 닿을 만큼 긴 주둥이를 가진 나방이 마다가스카르 어딘가에 분명 존재할 것이라고요. 그의 추론에 들어맞는 나방은 1903년에 이르러서야 학술적으로 기재되었고, 오늘날 ‘예언된’이라는 뜻을 품은 크산토판 프라에딕타(Xanthopan praedicta)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긴 혀를 가진 박각시나방이지요.
깊은 밤, 다윈의 난초가 발산하는 농염한 향기에 이끌린 박각시나방은 둥글게 말려 있던 혀를 펼칩니다. 그러고는 돌출된 꽃잎에 안정적으로 발을 디딘 채 가느다란 통로 안으로 긴 혀를 밀어 넣습니다. 꿀에 닿으려면 깊이,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박각시나방은 본래 꽃잎에 앉지 않은 채 공중에서 날갯짓을 하며 꿀을 마시지만, 이 난초 앞에서는 기꺼이 타협합니다.
소중한 것은 깊이 품고 싶습니다. 수토메 아포테케리를 운영해 온 저의 마음은 아무에게나 쉽게 꿀을 내어주지 않는 다윈의 난초와 같아서, 브랜드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언제나 긴 호흡으로 풀어내 왔습니다. 가끔은 여러 겹의 은유 속에 비밀스러운 코드를 감추어 두고, 그 안에 담아 둔 저의 마음을 발견해 줄 누군가를 상상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 말입니다. 수토메 아포테케리의 향기는 모두에게 닿습니다. 하지만 그 기원의 달콤함은 여기까지 와 주신 분들에게만 허락하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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