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고 사물이 파괴되어 아득한 과거로부터 무엇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에도, 냄새와 맛은 더 연약하지만 더 강인한 생명력으로, 더 실체가 없으면서도 더 끈질기고 더 충실하게, 영혼처럼 오래도록 남는다. 모든 것의 폐허 위에서 기억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작은 한 방울 위에 기억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흔들림 없이 떠받치고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스완네 집 쪽으로』 중에서

오늘은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 2015년 여름에 써 놓은 글인데, 지금껏 망설이기만 하다 못내 쑥스러워 고이 간직만 해 온 글입니다. 수토메 아포테케리 첫 10년의 에세이와 작업을 엮은 책 『메모아르』에도 싣지 못했습니다.
어쩐지 이제는 이야기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계절이 흐르는 동안 천천히 써 내려간 당시의 문장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깁니다. 글에 적힌 ‘몇 년 전’은 2015년을 기준으로 한 시간이니, 세월을 더해 읽어 주세요. 밤새 내린 비와 함께 겨울의 기운이 성큼 다가온 금요일 아침, 여러분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도 떠올려 보며 따뜻한 마음으로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첫사랑
1996년의 여름, 할머니가 아흔을 앞두고 돌아가셨습니다. 증손주 같은 막내 손녀딸들을 유난히 아껴 주시던, 태어나서 한 번도 떨어져 산 적이 없던 할머니의 죽음은 몸의 일부를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평생 담배를 피우신 할머니의 거칠고 가쁜 숨소리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생생할 만큼 말이지요. 열네 살의 저는 죽음이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고, 언젠가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며 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할머니와의 이별 뒤에 묻혀버린 그 시절의 다른 기억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났습니다. 이야기는 20 년 가까이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름 하나를 우연히 기억해낸 순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서울시 영등포구 OOO동 OO중학교 1학년 9반. 저는 한동네에서 유치원과 국민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들 여럿과 같은 반이 되었고, 긴장감보다는 신기하고 들뜬 마음으로 중학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신승훈과 이승환을 자주 들을 수 있었고, 학교의 점심방송 신청곡으로는 해체를 선언한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불과 몇 달 전 생을 마감한 가수 김성재와 서지원의 곡들이 여전히 인기가 좋았습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과 같은 이 지구에서 아직은 우리와 함께였고, 주말이면 여의도광장으로 나가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광활한 아스팔트 위를 신나게 달리던 시절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즈음의 저를 둘러싸고 있던 서울 풍경이 제법 선명하게 되살아나기도 하지만, 저에게 중학교 시절의 기억은 이상할 정도로 아득합니다. 할머니의 부재, 마이애미에서 보낸 방학과 같은 특수한 사건들이 일상적 경험의 색채를 흐리게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졸업과 함께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 고등학교를 먼 곳으로 간 탓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많이 그리웠던 만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빨리 잊어야 했으니까요. 편지로 연락을 꾸준히 주고받던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나마도 세월과 함께 모두 소원해지고 말았습니다.
지난 초여름의 일이었습니다. 옛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고등학교에서 특강 요청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나가던 길이었는데, 유난히 길게 정차한 어느 역에서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일 만큼 앳된 얼굴의 군인이 가까스로 들어와 제 앞에 섰습니다. 그의 이름표에 무심코 눈길이 멈춘 순간, 저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20여 년을 살아오면서 한 순간도 생각하지 않았던 듯한, 동명이인의 누군가가 기억났기 때문이었죠. 어쩌면 그렇게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 한 번 스쳐간 일이 없었는지 놀라웠습니다. 흐르는 인생에 잊고 잊히는 게 그리 대수로운 일인가 싶으면서도, 적어도 제 삶에서 그 사람은, 그렇게 완벽하게 잊어도 좋을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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