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일이 같은 사람을 우연히 만나 오랜 인연으로 이어진 경험 있으신가요? 사진 작가님 Y를 처음 만난 것은 온 동네가 함박눈에 아득히 덮여가던 4 년 전 겨울의 어느 밤의 일이었습니다. 작가님은 줄곧 홍콩에서 생활하다 10 년 만에 고국을 방문하셨고, 그 무렵의 저는 아직 홍콩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쩐지 서로가 낯이 익었고, 놀랍게도 생일까지 같았습니다. 그 후로 작가님과 저는 서울과 홍콩에서 자주 만나며 마음을 깊이 나누곤 했습니다.
작가님은 성공한 직업 여성이기도 합니다. 직위에 따른 책임감과 업무량, 잦은 해외 출장, 그리고 만나야 할 수많은 사람들만으로도 개인적인 삶을 영위할 시간이 거의 없으실 텐데 가정을 살뜰하게 돌보는 것은 물론 사진에도 전업 작가 못지않은 열정을 쏟고 계시지요. 긴 시간 지켜봐 온 작가님의 사진은 일상의 영역에서 발견하는 사랑스럽기도, 슬프기도, 고독하기도, 경이롭기도 한 순간들을 정제된 시선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사실주의적이지만 무례하지 않고, 지극히 인상주의적이지만 사색적입니다.
몇 달 전 서울에서 있었던 작가님의 전시회에서 구입한 작품입니다. 저는 이 사진의 부제를 ‘나만의 신화’라 하고 싶습니다. 늦은 밤 파리의 어느 광장에 소나기가 지나가고, 회전목마는 고요하게 멈춰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화면 속 말들은 빛의 길을 따라 역동적인 춤을 추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장난기와 카메라 한 대가 그저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꿈결의 장면과도 같은 환상적인 순간으로 기록한 것이지요.
지금의 제 인생에서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일상과 비일상, 업무와 개인적인 삶의 구분이 모호합니다. 그래서인지 사생활의 마지막 보루를 아무렇지도 않게 침범하려는 사람들에게 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별것 아닌 일상에서도 크고 작은 의미들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가끔은 숨이 막힙니다. 이 작품을 구입한 것은 그런 스스로에게 언제나 좋은 영감과 자극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술을 향유하는 방법과 좋은 작품을 고르는 방법에 대해 묻는 분들께, 어쩌면 이 작품을 집에 걸기까지의 이야기가 저 나름의 답변이 되어드릴 것 같습니다. 예술은 일상에서 향유될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합니다. 삶에 녹아들지 않는 예술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잔뜩 걸친 것처럼 우스꽝스러워 보일 뿐입니다. 저는 작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투자 가치와 같은 것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작가가 얼마나 진정성 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일구어 나가는지, 그것이 나의 마음에 어떤 울림을 주는지를 살피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요. 그렇게 켜켜이 쌓인 수집의 세월이 나만의 컬렉션으로, 나만의 신화로 완성되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너무 멋지지 않나요?
(2016. 6. 28)
홍윤경, 『메모아르』(수토메, 2023)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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