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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BICUE CHRONICLE No.018 “홀로그램”

2026.11.04 | 조회 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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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SOPHIE HONG

오, 인간의 재능은 얼마나 헛된 영광인가! 무딘 시대가 뒤따르지 않는 한, 절정의 푸르름은 얼마나 찰나에 머무는가. 치마부에는 회화에서 자신이 으뜸이라 믿었으나, 이제는 조토가 명성을 누리니, 그의 이름은 빛을 잃었도다.

Oh vana gloria de l'umane posse! / com' poco verde in su la cima dura, / se non è giunta da l'etati grosse! / Credette Cimabue ne la pittura / tener lo campo, e ora ha Giotto il grido, / sì che la fama di colui è scura.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연옥편」 제11곡 중에서

 

 

SUTOME LABORATORY

첨부 이미지

절정의 문명이 사라지고 터만 남은 유적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거리와 공간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저를 매혹합니다. 그 장소들을 종종 찾아가 거닐며 공기를 들이마시면, 세월 따라 잊힌 시절의 풍경이 생동하는 선으로, 실루엣으로, 바람결에 흩어진 소리의 잔상으로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지는 듯합니다. 오늘은 그런 장소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경주의 감포 바다 가까이, 사찰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기단석만이 당시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자리에 두 기의 석탑이 서 있습니다. 천삼백 년의 시간을 초월하는 기세를 발산하면서 말이지요. 그 유명한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입니다. 문무왕 대에 창건을 시작하여 신문왕 대인 682년에 완공한 것으로 전해지는 감은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통일신라 불교 건축의 기틀을 완성한 사찰입니다.

탑의 양식 또한 이 시기에 완성되었는데요. 감은사지 석탑은 그 정점에 닿은 불국사 석가탑의 원형이 된 탑입니다. 석가탑에 비하여 디테일이 다소 덜 정제되어 있으나, 비례 만큼은 석가탑의 양식에 온전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감은사지 석탑은 하나의 미술사적 양식이 절정의 순간을 앞둔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알 수 없으면서도 이미 그 모습을 본 것 같은, 마치 시공간의 왜곡을 경험한 듯한 찰나의 순간에 겪는 희열을 사랑합니다. 미술사를 오랜 세월 공부해 오면서 저는 언제나 그런 장면들에 매혹되었습니다. 대학원에서 르네상스를 전공하는 동안에도, 오늘에 이르는 패러다임을 만든 전성기의 작품들보다, 앞선 시기의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의 기록에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시에나의 두치오 디 부오닌세냐와 시모네 마르티니, 피렌체의 조토 디 본도네… 트레첸토(14세기)의 이탈리아에서 그 많은 화가들이 활동했음에도 단 한 번 그려지고 다시는 시도되지 않은 도상의 그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신다면, 제 마음을 이해하게 되실지도 모르겠어요. 이 시대의 미술 이야기도 언젠가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더 많은 선택지, 더 열린 가능성의 시대였던 트레첸토의 이탈리아와 통일신라는 이 지점에서 언제나 저를 설레게 합니다. 감은사지 석탑은 석가탑에 비하여 조금 더 거칠고, 크기는 석가탑을 압도합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탑을 품었던 사찰은 얼마나 큰 규모였을까, 이곳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Formulation Record No.006 “HOLOGRAM”

수토메 아포테케리는 조선 후기의 ‘별서정원別墅庭園’이라는 공간에 담긴 인식과 사유를 바탕으로, ‘마음에 그리는 정원(意園)‘이라는 큰 틀의 주제에서 장소와 후각의 관계를 다루어 왔습니다. HOLOGRAM에는 이러한 수토메 아포테케리만의 조향 방법론이 가장 명료하게 담겨 있으며, 좋은 향과 기꺼운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시공을 여행할 수 있다고 믿는 조향사의 입장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입니다.

HOLOGRAM은 신라의 전성기, 현기증이 날 만큼 화려했을 고대 불국토를 향으로 그린 상상도입니다. 감은사지 석탑에 투영된 통일신라의 미학적 태도는 불국사의 석가탑에 이르러 완성됩니다. 한 시대의 양식이 정점에 닿기 직전의 그 황홀한 긴장감, 그리고 가능성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향하는 마지막 여정은 절정의 순간이 선사하는 감각적 경험보다 큰 희열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기단석만이 덩그러니 남겨진 절터에서도 무심코 벅찬 감정에 휩싸이는 것은, 처연히 서 있는 두 탑에 얽힌 이야기가 여전히도 세월을 압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블렌드의 골격을 이루는 로즈마리와 올스파이스, 향나무 열매 오일이 통일신라의 자신감을 은유하며 강렬한 첫인상을 연출하고, 패출리와 베티버 뿌리 오일 등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베이스 노트는 돌과 흙에 새겨진 문명의 기록을 상징합니다.

 

*별서정원別墅庭園

조선 후기의 한양은 상업화와 함께 근대 도시의 모습을 갖추어 갔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을 중심으로 ‘별서정원’의 문화가 유행하였습니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근교에 별장을 짓고, 정원과 텃밭을 일구어 자연의 시계와 보다 깊이 호흡을 맞추며 살아가고자 했지요. 하지만 오늘 우리의 사정이 그렇듯, 당시에도 별서정원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마다의 현실적 사정으로 삭막한 도시를 떠나지 못했던 사람들은 ‘마음의 정원’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음악을 즐겼습니다. 그렇게라도 지친 마음을 잠시 쉴 수 있다면, 비록 상상 속에 그려보는 꿈이라 할지라도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경험이 된다고 여긴 것입니다. 수토메 아포테케리는 자연의 향을 매개 삼아,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향유한 이 아름다운 문화를 이어 나가고자 합니다.

 

Rosemary 15 drops, Siberian pine 10 drops, juniper berry 7 drops, green pepper 4 drops, nutmeg 4 drops, bergamot 3 drops, opopanax myrrh (10%) 3 drops, frankincense 3 drops, patchouli 3 drops, cardamom 2 drops, eucalyptus radiata 2 drops, vetiver root 1 drop, cistus 1 drop, ocean pine 1 drop, allspice 1 dr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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