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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2월을 마지막으로, 시네마 카이에는 잠시 쉬어갑니다.

기다림의 장면들

기다림의 장면들 #9 :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자신만의 작업을 이어가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2025.12.30 | 조회 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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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카이에

메일함 속 영화관 ‘시네마 카이에’입니다. 극장과 영화에 대한 에세이를 보내드려요. 기다림에 대한 영화, 영화를 향한 기다림을 주로 다룹니다. 협업 및 제안문의 : cahiersbooks@gmail.com

오늘의 상영작 📽️

 

 

첨부 이미지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존 말루프, 찰리 시스켈 / 2013 / 미국 / 84분 / 전체 관람가

시청 가능 플랫폼: 웨이브

어느 플리마켓에서 다량의 필름 사진들을 발견한 존 말루프는 과연 이 사진을 찍은 이는 누구인가 라는 호기심에 사로잡힌다. 존의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열렬한 반응을 얻고, 존은 사진들을 찍은 사람이 '비비안 마이어'라는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미 그녀는 죽은 후였다. 이 훌륭한 사진을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채 죽은 '비비안 마이어'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존은 그녀의 삶을 충실히 카메라에 기록하기 시작한다.


연말이 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무정하게 지나버린 시간을 아쉬워하며 올해 나는 대체 무엇을 했나, 무엇을 이뤘나 곱씹어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냥 시간을 허비한 것만 같다. 또 이렇게 아까운 나의 일년이 지나가는구나. 나는 시간과 준비되지 않은 작별을 해야한다. 내년은 과연 잘 보낼 수 있을까. 그것도 확신할 수 없다. 나이를 하나씩 더해 갈수록 밝은 전망과 희망찬 긍정을 함부로 할 수 없고 겁만 많아진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특별한 삶을 꿈꾸는 건 왜일까.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 발견되고 촉망받고 박수받고 싶은 그놈의 인정욕구 때문에 평범하게 지나간 일상은 종종 초라한 하루가 되고만다. 

 

늦은 밤, 누군가를 위한 단 한편의 영화만 상영하는 극장에 많은 사람이 찾아올 리가 없는 걸 아는데도 나는 늘 북적이는 극장 안을 상상한다. 해소할 수 없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마음 한 켠에 간직한 사람들이 이야기 안에서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기를, 혼자가 아님을 극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느끼기를. 어두운 밤에 혼자 이 곳을 지키는 이유는 그것 뿐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영화를 고르고, 극장 안을 밝혀 놓은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그 시간은 괴롭지만 때론 설렌다. 관객이 아무도 없을 땐, 내가 이 극장의 유일한 관객이 된다. 결국 타인을 위해 영화를 고르는 일은 나를 들여다보는 것과도 같았다.   

 

대개 썰렁하고 고즈넉한 극장의 분위기가 익숙해질 법도 한데 혼자 이 곳에 있다보면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이렇게 글을 쓴다. 왜 이 영화를 골랐는지,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골랐는지에 대해. 오늘 관객을 기다리는 영화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다. 2025년의 마지막 영화로 왜 하필 이 영화가 떠올랐을까.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던 작품이지만 선뜻 이 영화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 용기를 내서 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과 그가 찍은 사진은 알고 있었다. 세상에 자신의 작품이 공개되기 전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한 사람, 그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사진을 공개하지 않고 간직했던 사람. 영화 속 인터뷰이들은 마이어가 살아 생전 유모로 일하며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그녀가 돌보았던 아이들, 고향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기억 속 마이어에 대한 잔상을 꺼낸다. 영화는 그들의 기억과 진술을 따라가며 이제는 더이상 만날 수 없는 한 사람의 인생이 퍼즐 조각 맞춰지듯 형태를 그려나간다. 비비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사진 속에서 영원히 어리고 젊은 채로 남아있다. 

 

비비안 마이어는 마치 자신이 죽어도 기억되길, 영원히 사라지지 않길 바랐던 사람처럼 수많은 조각과 흔적을 남겼다. 창고를 가득 메운 그녀의 유품에는 네거티브 필름과 사진은 물론 옷과 모자, 신발부터 영수증, 메모, 카세트 테이프, 필름 영상까지 온갖 물건과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마이어는 한 때 자신을 고용한 가족과 함께 산 적이 있었는데 신문을 광적으로 수집하며 방 안 가득 신문이 천장까지 쌓여있었다고 한다. 가족이 없이 평생 떠돌며 살았던 마이어에게 수집과 기록은 살아나가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기억되기 위한 몸부림. 외로움을 잊기 위한 활동. 

 

이방인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마이어는 세계 여행을 떠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남긴 사진들도 정말 아름다웠다. 마치 세상 여기저기에 마이어가 존재하는 듯했다. 어딘가에 속해있기 보단 카메라 뒤에 숨어 사람들을 관찰하길 즐기고 세상의 모든 슬픔, 외로움, 고통, 가난, 웃음, 기묘함을 담아내겠다는 일념을 가진 듯 언제나 목에 카메라를 걸고 다녔던 사람. 누구에게도 그 작품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혼자서는 굳건히 자신의 작품을 사랑했을 사람. 그녀가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했을지 궁금했다. 예술가여서 외로웠는지 외로워서 예술가가 되었는지.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니었는지. 분명한 것은, 그녀의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영원히 빛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지금도 마이어는 어딘가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을 것만 같다. 

 

비비안 마이어는 그 오랜 세월동안 어떻게 묵묵히 사진을 찍고 작품을 이어왔을지, 어떤 마음으로 그것들을 지켜내려했을지 차마 가늠하기 힘들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누군가가 나타날 거라고 굳게 믿었던 걸까? 내 기준에서는 봐주는 이가 없이, 누구에게도 예술가로서 인정받지 않은 채 작업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게 행할 수 없는 일이다. 나 또한 꽤 오랫동안 혼자서 글을 써오면서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상심하곤 했다. 부끄럽지만, 당장 실력이 되지 않는데도 영원히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조바심을 냈다. 그럴수록 글을 쓰는 행위는 즐겁기보다 고통스럽고 압박이 되었다. 세상에 내가 발견되어지길 바라고 결과와 성취에 골몰할수록 이대로 골방에서 시간만 허비하는 사람이 되진 않을까 하는 공포가 엄습했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영화를 선뜻 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보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단순히 사후에 세상에 알려진 어느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런 삶도 있는 것이다. 살아있을 땐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서야 이야기가 되어 영원히 기억되는.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삶이지만, 비비안 마이어는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았기에 기억될 수 있었다.

 

"그녀가 찍은 사람들과 풍경은 누구라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보아야 한다. 마이어는 탁월한 시선과 완벽한 기술을 겸비한 예술가였다. 그녀는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담았고, 평생 그 일에 몰두했다."

- 책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 중에서.

 

연말에 만난 '비비안 마이어' 덕분에 불안하고 성급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빨리 무엇을 이루는 것에 모두가 열광하고 세상은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은 인물 만을 주목하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비비안처럼 묵묵히 자신의 작업을 충실히 이어 나가고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평생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더라도 진실된 마음으로 일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누군가는 '발견'할 거라는 마음으로 해나가다보면, 기적과도 같이 누군가와 연결되지 않을까. 비비안 마이어와 존 말루프처럼. 

 

올해 아무 것도 제대로 한 것이 없다고 스스로를 자책했지만 어쨌든 나는 이 곳을 묵묵히 지켰고, 글을 썼고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새해에는 마음을 비우고 하루하루를 잘 채워나가는 것이 지금 떠오르는 목표다. 그저 내게 주어진 시간에 성실히 임하고 싶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업을 하는 그 시간에 오롯이 몰입하고 싶다. 늦은 밤까지 외로운 혼자만의 '작업'에 몰두해있는 누군가가 이 영화를 보러 와 주길 바라며 오늘도 기다린다. 왜 나는 안될까, 실패한 인생일까 하는 고민에 잠들지 못하는 이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자책하지 않고, '그냥 하는' 마음이 되어 극장을 나서기를. 포기하지 않고 하다보면 언젠가는 꼭 세상과 닿을 수 있기를. 

 

무심코 흘깃 바라본 창 밖 너머로 한 여인이 서 있다. 그녀는 170cm가 넘는 장신에 낡고 헐렁한 셔츠를 입은 채 목에 걸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아마도 여전히 사진을 찍고 다니는 비비안 마이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끝내 극장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성큼성큼 또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그녀의 카메라에 비친 이 곳의 모습은 어땠을까. 사뭇 궁금하다.   


 

영화가 끝난 후 📮

1.

'시네마 카이에'의 문을 닫으며 영상을 만들어보았어요.

비비안 마이어가 8mm 필름으로 시카고의 거리 풍경을 담은 영상을 beabadoobee의 Picture of us라는 곡에 맞춰 편집해 만들었습니다. 우연히 듣게 된 'Picture of us'라는 곡을 듣고 왠지 비비안 마이어가 떠올랐어요. 누구보다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순수한 시선으로 담아냈던 비비안 마이어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들. 잠시나마 비비안 마이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집니다.

 

2.

2025년의 끝자락에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보았습니다. 스스로 외로운 길을 걸으면서도 언제나 당당하고 떳떳했던 그녀의 삶을 이제라도 보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새해가 다가오면서 예전보다 더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한 기분에 무언가 가로막힌 기분도 들었거든요.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를 본 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묵묵히 내가 할 일을 하자고 마음이 정리된 것 같아요. 때가 되면 언젠가는 세상과 닿을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요.

 

6월부터 연재한 '시네마 카이에'를 구독해주신 구독자님에게 보내는 마지막 레터를 어떤 영화로 마무리할까 많이 고심을 했습니다. 그러느라 마지막 레터는, 평소 월요일에서 화요일 넘어가는 새벽에서 좀 더 늦은 12월 마지막 날을 앞두고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잠시 메일함 속 영화관 '시네마 카이에'는 문을 닫지만 새해에 또 다른 소식을 가지고 가끔 찾아올게요. 

메일로 연재했던 '기다림의 장면들'은 좀 더 내용을 보완하고 작품을 추가하여 '밀리로드'에서 연재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연재가 시작되면 메일로 공지 드릴 예정이에요.

어느 정도 분량을 쌓아 책으로도 출간할 계획이 있는데요. 책이 나오는 소식은 구독자님에게 가장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내년 상반기에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공지를 드리자면,

출간 후, 구독해주신 구독자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기다림의 장면들'

책을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작지만 소중한 굿즈와 함께)

출간 즉시 메일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그때까지 조금만...기다려주세요 💖🙏

 

꾸준히 메일 연재를 한 덕분에 책을 만들 용기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남은 2025년 한 해도 잘 마무리하시고 다가올 새해는 더 평온하고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지시기를,

좋은 영화도 많이 보실 수 있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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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니의 프로필 이미지

    워니

    0
    2 months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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