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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장면들

기다림의 장면들 #7 : 소울

‘길 잃은 영혼’이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길 기다리며

2025.11.17 | 조회 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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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카이에

메일함 속 영화관 ‘시네마 카이에’입니다. 극장과 영화에 대한 에세이를 보내드려요. 기다림에 대한 영화, 영화를 향한 기다림을 주로 다룹니다. 협업 및 제안문의 : cahiersbooks@gmail.com

오늘의 상영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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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피트 닥터, 2020 / 미국 / 100분 / 전체관람가

출연: 제이미 폭스, 티나 페이

시청 가능 플랫폼: 디즈니+, 웨이브

 

영화 <소울>은 중학교에서 재즈 밴드부 교사를 하는 조 가드너의 일상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재즈를 너무나 사랑하는 그는,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면서도 언제나 재즈 클럽에서 멋진 공연을 하는 것을 꿈꾸며 살아간다. 마침내 그렇게도 바라던 공연 제의를 받고, 저녁 공연을 앞둔 조는 맨홀 뚜껑에 빠지며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한다. 뜻밖의 죽음을 겪으며 조는 현실 세계가 아닌 영혼의 세계에 들어선다. 그곳엔 세 가지 공간이 존재한다. 태어나기 이전의 영혼이 있는 곳, 죽고 난 다음 저 세상으로 가는 곳, 그리고 육체와 영혼의 중간 지점. 조는 다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분투하다 태어나기 전 영혼이 모여있는 세계에서 ’22’를 만난다. 


거리 곳곳이 단풍과 은행잎으로 물든 풍경을 보며 이때다 싶어 산책을 나섰다. 금새 겨울이 다가올세라 걷다 말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서 순간을 담는다. 가을이면 떠오르는 영화가 많지만 올해는 영화 <소울>이 문득 생각났다. 가을하면 재즈, 재즈하면 <소울> 자연스럽게 연상되면서. ‘재즈’라는 음악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소울>은 재즈와 닮았다. 즉흥적인 재즈의 리듬처럼 이야기는 어디로 전개될지 예측이 어렵고 연주를 하며 순간에 몰입하는 장면은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와 맞닿아있다. 

 

<소울>은 영화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한다. 하루 중 가장 일이 잘 풀릴때쯤 갑작스럽게 삶이 끝나버리는 것이다. 내가 만약 오늘 죽는다면? 이라는 가정은 2020년 <소울>이 개봉하자마자 봤을 때는 전혀 와닿지 않았던 상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렴풋하게나마 그런 생각을 품고 살게 되었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으며 내게 주어진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한한지, 찰나일 수 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나는 ‘길잃은 영혼’이었다. 지금도 때때로 길을 잃곤 한다. <소울>의 또다른 주인공인 ’22’는 아직 지구에서 삶을 시작하지 않은 태어나기 전 영혼이다. 22는 아주 오랜 기간동안 영혼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테레사 수녀, 코페르니쿠스 등등 역사의 이름을 새긴 그 어떤 멘토가 와도 22가 지구로 갈 수 있는 통행증을 얻는 데는 실패했던 것이다. 조는 22가 자주 찾는 ‘육체와 영혼 사이의 공간’에 들어선다. 그곳은 무아지경의 빠진 영혼 혹은 우울과 불안, 집착에 빠져 땅에 발을 붙이고 살지 못하는 ‘길잃은 영혼’들이 존재하는 곳. 거기엔 뉴욕 거리에서 간판 돌리기 묘기를 하는 ‘문윈드’의 영혼도 자주 있는 곳이다. 문윈드는 사막같은 영혼의 바다를 항해하는 자유로운 영혼 그 자체다. 그는 삶과 단절된 채 길을 잃고 헤매는 영혼들을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육신으로 돌아가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와 보헤미안 같은 영혼들의 도움으로 잠시 지구로 돌아가는데 성공하는 조. 그러나 이번엔 조가 고양이의 몸으로, 22가 조의 몸으로 돌아간다. 

 

처음으로 육체를 갖게 된 22는 어린 아이처럼 뉴욕 곳곳을 누빈다. 평소였다면 그닥 인상에도 남지 않았을 피자 한 조각도, 이발소에서 나누던 사소한 대화도, 지하철에서 노래하는 어떤 이의 음성도, 떨어지는 낙엽 하나도 몸으로 감각하는 것이 처음인 22에겐 그 자체로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모습을 하고서 천진하게 삶의 순간 순간을 만끽하는 22의 모습을 보면서 ‘길잃은 영혼’이었던 나는 천천히 영혼이 내 몸으로 다시 돌아옴을 느꼈다. 좋은 영화를 몰입해서 보고 극장 밖을 나섰을 때면 언제나 그랬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들이, 커피 한 모금도, 사람들의 표정과 웃음 소리도 더 선명히 다가와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내가 왜 하필 태어났을까, 나 같은 게. 내가 살아갈 가치가 있는 걸까. 내 인생의 목적은 뭘까. 난 아무 쓸모가 없어. 길잃은 영혼이 되었을 때는 계속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런 마음 속 모습은 어떤지 영화 <소울>을 보고 알았다. 모래 폭풍 속에 울고 있는 영혼을. 상상한 것보다 더 암담하고 참혹했다. 나는 <소울>에서 나온 말을 그냥 믿기로 했다. 이미 충분하니까 태어났겠지 하고. 태어난 이유나 목적, 거창한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 건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다고 영화는 말한다. 그저 충분히 지구에 살아갈 준비가 되면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지만 살아가다보면 ‘그냥’ 사는 게 좀처럼 잘되지 않는다. 이 순간보다 더 나중을 위해, 성공과 목표를 위해 달리고 그것을 해내는 게 진짜 성공한 인생을 사는 거라고 생각해버린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며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여기면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자책했다. 지금 여기가 바다인데도 그저 물 속이라고 믿는 물고기처럼.

 

요즘 들어서는 내일 일은 모르겠고, 일단 오늘이라도 잘 지내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며 잠에 든다. 막연히 그리던 미래와 평온할 것이라고 믿었던 일상이 실은 얼마든 깨지고 부서지기 쉬운 한낱 유리컵 같은 것이었는지 깨닫고 나서야, 나에게 온전히 주어지는 건 겨우 오늘 하루치의 시간 뿐이라는 걸 알았다. 그 하루 마저도 내 맘대로 다 되진 않지만. 적어도 하루만 무사히 잘 지나갔으면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과 인생의 문제 모두가 해결되진 않지만. 적어도 내 영혼이 잠시 나를 떠나려 할 때 붙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극장을 나서며 가만히 숨을 들이마셨을 때, 이 영화를 만나서 참 다행이라고 느끼게 하는 영화가 있다. 지금도 <소울>을 보고 나왔을 때 모든 것이 생경하고 눈부시게 느껴지던 그 날을 기억한다. 밤 거리를 ‘길잃은 영혼’처럼 헤매던 사람이 무심코 불이 켜진 이 극장에 들어오길 오늘도 기다린다. 그가 잠깐 <소울>을 보는 동안만큼은 영혼이 자신의 육체로 돌아오기를. 본래의 빛을 되찾기를. 극장을 나와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밤 공기는 평소보다 더 서늘할 지도 모른다. 밤 하늘은 더 까맣게 보일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 고민하며 지루한지도 모르고 집까지 한참을 걷을 것이다. 귀에 꽂은 이어폰 너머 들리는 음악은 재즈일 것이다.


영화가 끝난 후 📮

 

<소울>의 여운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입니다 :) (출처: JAZZ IS EVERYWHERE)

 

영화 <소울>의 OST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재즈 음반이에요. 2022년 그래미 어워즈 수상자인 존 바티스트는 <소울>의 음악에 참여하며 그야말로 영화에 영혼을 불어넣어주었어요. 

재즈를 틀어두고 가만히 독서에 집중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외출 준비를 하다보면 일상이 뭔가 근사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저는 일상에 모든 순간에 재즈를 종종 틀곤 하는데요. 그때마다 틀어두면 좋을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했어요 !

구독자님도 하루 중 잠깐 시간을 내어 음악에 몰입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이 플레이리스트를 들으셔도 좋고요. 순간에 집중하며 삶을 온전히 감각하는 데 음악만큼 좋은 건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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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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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out 1 month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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