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를 읽는 시간

끝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마침표 너머에 기다리는 새로운 시작

2026.10.12
from.
가톨릭출판사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언어를 사유하는 시간, 〈단어를 읽는 시간〉입니다.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저는 이번 연휴에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마침 동생이 부산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어서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같이 밥도 먹었고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다가 동생이 문득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내년에 제대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벌써 고민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제대도, 졸업도 시간이 남았는데 벌써 그다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다니!

 

그러다 문득 끝은 사실 끝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 생활이 끝나면 다시 학교생활이 시작되고, 학교를 졸업하면 또 다른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가 끝나는 순간에는 늘 그다음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지요. 어쩌면 우리는 무언가의 끝을 맞이하면서 동시에 다음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데이비드 화이트 역시 ‘끝’을 모든 것이 멈추는 지점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과 가까워지고, 그 시작을 기다리고 준비하게 만드는 단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단어를 읽는 시간〉에서는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끝’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첨부 이미지

END 끝

끝은 새로운 시작에 친밀해지도록, 새로운 시작을 고대하도록, 심지어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도록 만드는 단어다.


무언가를 끝낸다는 것

우리는 ‘끝’이라고 하면 먼저 무언가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순간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데이비드 화이트는 무언가를 끝내는 행위 자체에도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끝을 결정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 무언가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끝내는 것은 한 인간의 결정적인 행동이며 거의 신화적인 권력을 동반한다. (p 108)

그는 무언가를 끝내는 사람을 ‘자기 삶의 고삐를 쥔 사람’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무언가를 끝내는 이가 된다는 것은 마침내 자기 삶의 고삐를 쥔 사람, 새로운 방향을 택할 힘을 지닌 사람, 오래전부터 매듭지어야 했던 것에 만족스러운 마무리를 가져온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p 108~109)

무언가를 끝낸다는 것은 단순히 멈추는 일이 아니라, 하나를 매듭짓고 다음 방향을 선택하는 일이기도 한 셈입니다.


끝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데이비드 화이트는 ‘끝’이라는 단어 안에는 오래된 모순이 숨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고맙게도 끝이라는 단어는 그 짧은 음절 안에 고대로부터 이어진 영원한 모순을 지니고 있다. (p 109)

무언가가 끝났다는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이후를 떠올리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화나 소설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THE END’를 예로 듭니다.

옛날 영화나 소설 끝에 등장하는 ‘디 엔드THE END’라는 단호한 표현 또한 그때까지 우리와 함께 숨 쉬었던 등장인물들의 삶이 그 임의의 경계를 넘어 새로이 이어질 것을 생각하게 만들 뿐이다. (p 109)

‘끝’이라는 글자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분명 마쳤는데, 우리는 그 뒤에도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끝이 끝을 의미하는 일은 거의 없다. 끝은 그저 상황을 추적할 우리 능력이 한계에 달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p 109)

우리가 볼 수 있는 이야기가 거기에서 멈췄을 뿐, 그 너머까지 모두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오히려 하나의 끝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다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에 친밀해지도록, 새로운 시작을 고대하도록, 심지어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도록 만드는 단어다. (p 109)


그래도 우리에게는 끝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끝이 정말 마지막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왜 계속해서 무언가의 ‘끝’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데이비드 화이트는 여기서 끝을 '자비롭고 유용한 단어’라고 표현합니다.

끝은 자비롭고 유용한 단어다. 정확해서가 아니라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p 110)

이 단어가 우리에게 잠시 멈추고 숨을 돌릴 틈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끝은 숨 쉴 핑계, 무언가 마무리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심리적인 안정을 누릴 핑계를 준다. (p 110)

하나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잠시 멈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시작되지 않은 다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잠깐의 여유를 얻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끝은 모든 것이 사라지는 마지막 지점이라기보다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넘어가는 ‘전환’에 가깝습니다.

끝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끝은 전환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 일시적으로 보이는 지점이다. (p 110)

끝을 맞이했기 때문에 비로소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다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완전한 끝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데이비드 화이트는 우리에게 ‘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끝이 정말로 존재하든 아니든 간에 인간은 끝을 필요로 한다. 끝은 우리의 좋은 친구지만 끝은 절대 끝이 아니다. (p 110)


오늘은 데이비드 화이트의 이야기를 따라 ‘끝’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끝을 마주합니다. 어떤 끝은 기다려지고, 어떤 끝은 아쉽고 두렵기도 하지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끝을 앞두고 계신가요?

그 끝이 아쉽거나 두렵게 느껴지더라도, 그 너머에는 또 어떤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다음 〈단어를 읽는 시간〉에는 또 다른 익숙한 단어를 새로운 시선으로 만나보겠습니다.

 

*위 뉴스레터는 데이비드 화이트의 《위로Ⅱ》에서 발췌하여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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