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를 읽는 시간

우리는 모두 여행 중이다

머무는 동안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2026.10.23
from.
가톨릭출판사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언어를 사유하는 시간, 〈단어를 읽는 시간〉입니다.

 

저는 몇 년째 같은 동네에 살고, 매일 비슷한 길로 출퇴근하며 익숙한 일상을 보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데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 가까워지기도 하고, 오래 함께했던 사람과 멀어지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고, 미처 몰랐던 제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죠.

 

분명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많은 변화를 경험해 온 것입니다.

 

데이비드 화이트 역시 '머무름'을 단순히 도착과 떠남 사이에 잠시 멈추는 시간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도 만남과 변화가 이어지는 또 하나의 여행이라고 이야기하지요.

 

오늘 〈단어를 읽는 시간〉에서는 ‘머무름’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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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JOURN 머무름

머무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가지 시제를 한꺼번에 지닌 단어다.


머무름은 그 자체로도 여행이다

우리는 보통 여행이라고 하면 어딘가를 향해 떠나거나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반면 머무름은 잠시 한 곳에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데이비드 화이트는 머무름에도 여행의 모든 과정이 담겨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머무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가지 시제를 한꺼번에 지닌 단어다. (p271)

우리가 어떤 장소에 있기 위해서는 먼저 그곳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을 보낸 뒤에는 언젠가 다시 떠나게 되지요. 머무는 순간에는 지나온 길과 지금의 시간, 앞으로의 여정이 함께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머무름은 그 짧은 멈춤 동안에도 우리가 변화한다는 점, 함께 멈추는 것들에 따라 변화된다는 점을 이해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p 271~272)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조금씩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사람이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하고,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면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기도 하지요. 데이비드 화이트는 이렇게 함께 머무는 존재들과 더불어 변화하고 깊어지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여행으로 바라봅니다.

여행과 여행 사이의 멈춤으로 정의되는 머무름은 그 자체로도 여행이다. (p 272)

결국 머무름은 다음 여행을 기다리는 빈 시간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도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맺고,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갑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

우리는 익숙한 것들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도, 지금의 행복한 순간도 가능한 한 그대로 이어지기를 바라지요.

하지만 데이비드 화이트는 인간이 영원함과 불변함을 동경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의 육신을 떠올립니다.

육신은 우리의 요청도 없이, 작별이나 떠남의 의식 없이, 멈춤이나 휴식 없이 성숙의 단계를 거쳐 간다. (p 272)

우리는 매일 거울을 보면서도 자신의 변화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오래전 사진을 꺼내 보면 어느새 달라진 얼굴과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요. 어린 시절의 우리는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 노년을 맞이합니다. 그 변화는 우리가 원한다고 멈출 수도, 원하지 않는다고 피할 수도 없습니다. 그는 이런 육신을 두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문득 거울 속에 보이는 과거의 젊음, 현재의 모습, 곧 맞이할 노년을 깨닫게 하는 우리의 육신이야말로 머물다가 떠나는 궁극적인 존재다. (p 273)

더 흥미로운 것은 데이비드 화이트가 우리를 단순히 변화에 휩쓸리는 존재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변화를 지켜보는 동시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변화에 참여하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머무른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너른 곳을 꿈꾸는 일시 체류자

데이비드 화이트는 우리가 몸을 움직이지 않는 순간에도 여행은 계속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이든, 꼼짝 않고 집에 머무는 사람이든 우리는 늘 여행하는 피조물이다. (p 273)

우리는 책을 읽으며 낯선 세계를 만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장소를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는 이처럼 우리의 관심과 상상을 사로잡는 수많은 여행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성경 속 인물들의 여정부터 세계 곳곳의 순례길까지, 인간은 오래전부터 길을 떠나는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겨 왔다는 것이지요. 그 길들은 이미 누군가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났던 장소이자, 언젠가 자신에게도 새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데이비드 화이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움직이지 않으려는 사람에게서도 여행을 발견합니다.

움직임을 거부하고 검은 방석 위에 가만히 앉은 선 수행자들조차도 보이지 않는 욕망의 길을 여행한다. (p 274)

몸은 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마음은 무언가를 향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지금과 다른 삶을 꿈꾸고, 때로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마음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기도 하지요. 그는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합니다.

우리 각자는 지극히, 고요히, 움직임 없이 존재하는 순간에도 너른 곳을 꿈꾸며 끊임없이 단계를 밟아 가는 일시 체류자다. (p 274)

우리는 여행을 떠나지 않는 날에도 무언가를 경험하고, 변화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머무름은 여행의 반대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삶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데이비드 화이트의 이야기를 따라 ‘머무름’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딘가로 떠나야만 새로운 경험을 하고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 머무는 동안에도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조금씩 달라져 갑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머무는 시간 역시 하나의 여행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시간 속에 머물고 계신가요?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변화를 경험하고 계신가요?

 

오늘은 익숙한 일상을 잠시 돌아보며,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크고 작은 변화들을 떠올려 보아도 좋겠습니다.

 

다음 〈단어를 읽는 시간〉에는 또 다른 익숙한 단어를 새로운 시선으로 만나보겠습니다.

 

 

*위 뉴스레터는 데이비드 화이트의 《위로Ⅱ》에서 발췌하여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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