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를 읽는 시간

아프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

상처에서 발견하는 이해와 공감

2026.10.14
from.
가톨릭출판사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언어를 사유하는 시간, 〈단어를 읽는 시간〉입니다.

이제 정말 가을이네요. 어느새 바람이 제법 차가워져서 조금 춥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날씨에는 문득 2년 전 다녀왔던 산티아고 순례길이 떠오릅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걷고 싶을 만큼 좋은 시간이었거든요. 그런데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힘들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하루에 20~30km씩 걷는 일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초반에는 무릎이 아파서 꽤 고생했어요. 발에는 물집도 여러 개 잡혀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아팠고요.

 

그전까지는 걷는 일이 이렇게 힘들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릎과 발이 아프기 시작하니 아무렇지 않게 걷고 움직이던 순간들이 새삼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아프고 나서야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된 셈입니다.

생각해 보면 상처는 이렇게 이전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하기도 합니다.

 

데이비드 화이트 역시 ‘상처’를 단순히 고통을 남기는 것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처를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단어를 읽는 시간〉에서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 ‘상처’가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는지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첨부 이미지

INJURY 상처

온전히 느끼고 온전히 받아들인 상처는 우리에게 공감을 선사한다.


상처는 무엇을 깨닫게 할까?

앞서 이야기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경험처럼, 우리는 상처를 입고 나서야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데이비드 화이트는 상처가 우리에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사실을 깨닫게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취약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충격은 우리의 취약성이 늘 존재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찾아온다. 상처가 갑자기 그 취약성을 백일하에 드러낸 것이다. (p 157)

상처를 입기 전까지 우리는 자신의 몸이 언제나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상처를 입는 순간,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해내던 일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상처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바꿔 놓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세 번째 충격은 상처 입은 우리의 정체성이 멀쩡했을 때와 완전히 다르다는 데서 온다. (p 157)

그동안 혼자서 해내던 일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지고, 다른 사람을 돕던 입장에서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기도 합니다.

더 극적이고 가장 수치스러운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지 생각하기에 앞서 먼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p 157~158)

우리는 평소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는 언제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상처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까?

상처를 입으면 우리는 하루빨리 낫기를 바랍니다. 아프기 전처럼 다시 걷고, 움직이고, 평소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지지요. 하지만 데이비드 화이트는 회복을 위해서는 상처가 우리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먼저 귀 기울여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상처에 대한 우리의 첫 반응은 어서 빨리 나으라고 말하는 것이지만 (…) 회복을 시작하려면 상처가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말하도록, 그리하여 그 방향대로 우리를 이끌도록 해야 한다. (p 159~160)

그는 이를 설명하며 다친 무릎을 예로 듭니다.

무릎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자의적인 판단에 무릎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무릎이 지시하는 대로 걸어야 한다. (p 159)

우리는 몸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주기를 바라지만, 상처를 입은 뒤에는 오히려 몸이 보내는 신호에 맞춰 움직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자신의 몸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왔는지도 돌아보게 됩니다.

상처 입은 후에야 쉴 새 없이 몸을 혹사했을 뿐 휴식이나 돌봄은 거의 베풀지 않았음을 발견한다. (p 159)

데이비드 화이트는 이렇게 상처를 돌보는 과정을 자신의 몸과 맺어 온 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일로 바라봅니다.

치유로 가는 길은 몸과 맺었던 과거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길이다. (p 159)

또한 회복에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언제쯤 나을지 정확히 알 수 없기에, 그 시간을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달라지게 됩니다.

인내심이 돌연 꼭 필요한 동반자가 되고, 시간과 시간의 가능성, 일정 시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태도도 갑자기 달라진다. 상처는 시간 개념을 겸손하게 만든다. (p 158)


상처는 어떻게 공감이 될까?

지금까지 데이비드 화이트는 상처를 통해 자신의 취약함을 깨닫고, 상처 입은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는 경험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느끼고 온전히 받아들인 상처는 우리에게 공감을 선사한다. (p 160)

우리는 누군가 힘들어할 때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온전히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도 상처를 입고, 이전에는 당연했던 일들이 어려워지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겪고 나면 다른 사람의 어려움도 이전과는 다르게 바라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처럼 자신의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경험에서 공감이 시작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상처 입기 전까지 우리는 자신이 다른 모든 이들처럼, 우스꽝스럽고도 애처롭게 취약한 존재임을 알지 못한다. (p 160)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돌보는 과정에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하게 됩니다.

온전하지 못한 자신의 어느 한 부분을 도우면서 우리는 공감을 학습하고 이어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를 도울 줄 알게 된다. (p 161)

상처를 겪었다고 해서 누구나 저절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상처를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길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이해를 넘어 성숙의 출발점으로 바라봅니다.

상처는 어려움을 이겨 낸 존재들의 명단에 자신도 모르게 등재되는 방법이자 남에게 공감하는 길이며 성숙에 이르는 출발점이다. (p 161)


오늘은 데이비드 화이트의 이야기를 따라 ‘상처’라는 단어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상처는 때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합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마주한 경험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상처를 통해 무엇을 알게 되셨나요?

 

꼭 특별한 깨달음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늘은 잠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그 경험이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다음 〈단어를 읽는 시간〉에는 또 다른 익숙한 단어를 새로운 시선으로 만나보겠습니다.

 

*위 뉴스레터는 데이비드 화이트의 《위로Ⅱ》에서 발췌하여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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