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기막히게 좋은 날, 햇살은 쨍하고 바람은 선선히 불고,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이상하게도 지구 어딘가, 지금 내가 발 디디고 있는 곳 아닌 도시에서 걸었던 순간들, 날씨를 만끽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걸었다. 벌써 오래 전의 일인데, 여전히 나에게 어떤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여행의 기억들.
한때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광주도 여행지였음을 떠올렸다. 처음 올 때는 이곳에 살게 될 미래가 있다는 걸 모른 채,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이의 눈으로 도시의 곳곳을 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몇 번의 방문이 이어졌고, 함께 살 사람을 만나고, 같이 살 집을 구하고, 광주가 나의 거주지가 된 지도 벌써 4년째. 거주자가 되니 여행자일 때 새롭고 놀랍고 낯설었던 것이, 익숙하고 흔하고 대수롭잖은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로의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나는 분주히 정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의 작용으로 내 눈앞에 휙휙 떠오르는 다양한 정보들. 맛집과 대표 관광지, 가성비 좋은 기념품 상점, 다들 찍어가는 중요한 사진 촬영 명소까지. 한 번도 가본 적 없어도 이미 나의 지도 여기저기에 별표가 붙었다.
근데, 그걸 다 그렇게 찾아봐야 해?
당연히 출발하기 전 해두어야 마땅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여기던 내게, 질문이 던져졌다.
여행을 왜 가는 건데? 모르는 그곳에서 새로운 걸 직접 경험하려는 거 아니야? 여행의 ‘여’는 나그네라는 뜻이잖아.
나그네가 가는 것, 여행. 언제부터 모든 정보를 다 파악하고 준비해서 지도 위에 선을 긋고 그 위로만 돌아다니는 일이 나의 여행방식이었지? 나는 이 여행을 왜 가는 거지? 가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이지?
값비싼 기회비용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은, 실수와 실패를 줄이고픈, 무엇인가를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꽉 쥔 손을 발견했다. 한두 번 가보는 여행도 아닌데 여전히 나는, 새로운 나를 발견할 기회를 자꾸만 놓치고 있던 것은 아닐까.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할 기회를.
평소와 같은 내가 현실을 잠시 벗어난 도피처에서는 다시 있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길뿐이다. 하지만 나그네가 길을 떠나는 여정에서는 다시 원래의 장소로 돌아온 것 같아도,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여행의 목적지는 과거나 소유에 있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찾아 계속 이어서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에.
여행은 이미 예전에 시작됐고, 언젠가 끝날 날이 분명 다가올 것이란 걸,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조급하고 분주했던 마음을 떨어내고, 나는 이번 여행을 다시 생각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을까. 그 시간을 거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돌아오기를 바랄까.
때론 낯선 길 위에서 길을 잃어보기도 하고, 못 알아듣는 말과 말 사이에서 소리를 들어보고, 새로운 맛과 냄새를 만나고, 처음 보는 사람과 인사하며 춤도 춰보는 새로운 경험. 어디에서든 간에 나그네에게만 주어지는, 낯선 나를 찾기 원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나는 낯선 길을 찾아 헤맬 것이다. 그 위에서만 발견하고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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