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호의 ’극적인 다큐‘]
<콘크리트 녹색섬>(2026): 나무의 시선으로 본 재개발

‘개포주공아파트 키즈’인 감독은 어른이 된 후, 자신이 자란 동네가 재개발로 곧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곳을 사진으로 남겨두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가는데요. 몇 차례 그곳에 가서 사진을 찍다가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그곳에 살던 사람들에게 아파트 동과 동 사이를 채우고 있던 ‘나무’에 대한 추억이 있다는 사실을요.
그곳엔 수십 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주민들이 있었고, 5,040세대 대단지를 채운 39개 수종, 6만 그루 이상의 울창한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영화는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나무들의 관계에 주목합니다. 우리 주변의 나무가 알고 보면 단순히 공기를 맑게 해주고 보기 좋은 조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위로를 건네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였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쓰러지는 나무들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이고도 참혹한 장면은, 수십 년을 버텨온 나무들이 마침내 바닥으로 쓰러질 때입니다. 날카로운 전기톱 소리가 들리며, 5층 건물보다 높이 솟아있던 나무들이 하나둘 기우뚱하며 쓰러집니다. ‘쿠우우우우웅-’ 상영관에서는 어지간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폭파음보다 묵직하고 긴 소리와 진동이었어요. 관객인 저는 그 장면에 완전히 압도당했는데요. 감독은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전합니다.
“실제 현장은 훨씬 더했습니다. 너무 무서웠고, ‘에코사이드(생태학살)’라는 단어가 결코 낯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20~30m 높이에 지하 2~3층 깊이까지 뿌리내린 거목들을 톱으로 잘라낼 때마다 온 땅이 흔들렸고, 그 진동이 고스란히 제 몸으로 전해졌어요. 나무가 쓰러지며 진액을 토해내는 순간, 마치 사람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과 다름없는 그때, 참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강력하고 황홀한 피톤치드 향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 향기가 너무 황홀해서 오히려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로웠습니다. 현장에서 제가 온몸으로 느꼈던 그 감각을 온전히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의 질문을 듣고, 저도 같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과연 그래도 되는 존재인가?”
“이 나무들은 정말 다 자랄 만큼 자란 것일까?”
30~40년 된 나무는 사람으로 치면 이제 겨우 열아홉 살, 한창 푸르른 청장년에 불과하다는 전문가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곳의 나무들이 서울에서 가장 건강한 숲에 가깝다고 이야기합니다.
개발이라는 말 뒤에 감춰진 과정들. 나무가 숨 쉬는 생명이라면, 그리고 그 나무에 기대어 살아가던 수많은 새와 작은 생명들이 있다면, 우리는 단지 개발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터전을 이렇게 지워버려도 되는 것일까요.

우리 주변의 나무들
영화는 냉정한 현실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한번 밀어버린 생태계는 결코 예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리기도 하죠.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무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을 거예요. 하지만 막상 위로가 필요해 주변을 둘러보았을 땐 이미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이미 그 나무들이 사라진 후일 테니까요. 고층 빌딩과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 거목들은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큰 나무들은 지하로 40m 넘게 뿌리를 뻗어야 하거든요.”
요즘 지어지는 대다수 신축 아파트는 지상에 차가 없는 단지를 만들기 위해 지하 전체를 주차장으로 짓습니다. 인공 지반 위에 얕게 덮인 흙 속에서는 나무가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릴 수 없지요. 게다가 다른 곳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옮겨 심어온 외래종 나무들이 그 도시 환경에 온전히 적응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많은 나무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메말라 죽어갑니다. 그래서 조경업계에서는 나무가 죽을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더 많은 나무를 심어둔다고 합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럼에도 감독은 철거 현장에서 작은 희망들을 발견해 나갑니다. 단지에서 베어져 어디론가 사라졌던 나무를, 미리 남겨둔 표식 덕분에 다른 곳에서 다시 마주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떠나버려 빈 건물과 나무만 남은 땅에서, 포크레인이 들어오기 전까지 묵묵히 텃밭을 일구던 동네 어르신을 만나기도 하는데요. 그는 “아직 철거 안 했잖아요”라고 합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태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나 싶었어요.
철거 기간에도 봄이 오자 나무들은 어김없이 연두색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냈습니다. 살아남은 나무의 가지 위로 새들은 어김없이 날아들고, 생명들이 찾아왔습니다. 나무는 묵묵히 햇볕을 받으며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지요.
이곳의 나무들을 연구하기 위해 찾아온 조경학과 학생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만약 여기 짓게 될 아파트를 처음 설계한 사람이 이곳에 자라던 울창한 나무들을 미리 보았다면, 그래도 이렇게 똑같이 설계했을까?”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그 생태적 가치를 지켜줄 수는 없는 일일까요. 이런 상상은 시민들의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나무가 울창하게 밀집된 곳만큼은 펜스를 치고 보존하며 새로 지을 수는 없을까?”
실제로 감독과 시민들은 새로 지어질 단지의 설계도를 보다가, 단지 중앙에 공원 구역이 지어질 것을 알게 되는데요. 그 구역은 어차피 나무를 심을 거니까, 그곳에 있는 나무는 그대로 두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구청에 전달합니다. 그러면서 단지 중앙에 있던 22그루의 나무들이 ‘협의 중’이라는 안내와 함께 테이프로 표시가 지정되기도 합니다. 그 녹색섬이 끝까지 지켜지진 못했지만요….
지금까지의 ‘환경영향평가’가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자연과 인간에게 어떤 해로운 요소가 생길지를 따지는 일이었다면, 이 영화와 함께 이어지고 있는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개정> 서명은 ‘원래 그 땅에 있던 소중한 생태적 요소를 어떻게 훼손하지 않고 보존할 것인가’를 법으로 개정하는 일입니다.

이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 고향을 떠올릴 겁니다. 그곳에서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던 나무들, 그리고 그 나무들과 나눈 추억과 위로들을요. 영화를 보고 집으로 가는 길,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치던 길가의 가로수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어요. 아스팔트에 서 있는 나무들이 왠지 모르게 안쓰럽게 보였죠. 저 나무는 땅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숨을 쉬고 있는지, 언제까지 이곳에서 자랄 수 있을까 궁금해했고요. <콘크리트 녹색섬>은 제게 그런 시선과 질문을 남겨준 영화였습니다.
글 정민호
편집디자인 모기영 편집부
2026년 9월 26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주간모기영에 바라는 점이나 아쉬운 점 있으면
아래 버튼을 눌러 소중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
![▲ 필자의 다른 글 보기 [이미지 클릭]](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5/1779954972238789.png)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