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호의 ’극적인 다큐‘]
일생을 한 가지에 몰두해온 사람들에 대하여
한때 ‘워라밸’이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이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 되었다. 일만 하지 말고 퇴근 후의 생활도 잘 신경 써서 균형을 잡자는 것이었다.
내 일터는 출퇴근이나 외근이 비교적 자율적이고 유연한 편이다. 각자 자신의 연차와 일정을 잘 챙겨서 동료들과 조율하고 정한다. 한 달 단위로 돌아가는 월간지 제작과 마감 일정에 따라. 한 달에 한 번 잡지가 나와야 한다는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난 외부 인터뷰나 바깥 취재를 기대했다.(면접 때 이력서 쓸만한 외부 취재가 얼마나 자주 있냐고 물어봤고, 면접관이었던 선배는 일 년에 한 번, 반년에 한 번쯤 그런 날들이 있다고 아주 보수적으로 답해주었다.)
반전은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의 나다. 이렇게나 사무실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할 줄이야. 연휴가 지나면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평소엔 아침마다 일찍 출근해서 각종 나만의 루틴을 수행한다. 물론 그래서 내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비슷한 일을 매일, 매달, 매년 반복하는 시절을 첫 직장에서 7년째 보내고 있다.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이 회사에서 3년 정도 일하고 싶다고 했다. 1년은 일을 배우고, 1년은 그 익힌 일을 제대로 해보고, 3년째에는 회사에 보탬이 되는 헌신을 해보고 싶다고…. 막상 해보니 일을 배우고 익히는 데만, 제대로 1인분을 하는 데만 해도 3년이 넘게 걸렸던 것 같다. 아무튼 이런 날들을 지나며 어디서 일 얘기가 나오면, 나도 이 일을 해내기 위해 애써왔던 시간이 먼저 떠오른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런 시기는 꼭 거쳐야 하지 않나 싶은... 워라밸에 역행하는 마인드가 나오는 것만 같다.
N수생 시절, 수험 생활하던 학원에는 자기 몰입으로 스스로를 ‘최면’해야 한다고 말하는 강사가 있었다. 그런 자기계발적인 말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무언가에 지독하게 몰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끌린다. 일생을 걸고, 삶을 걸고 자기 문제와 자기 일과 씨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늘 배울 점이 있으니까. 나의 일을, 나의 시간과 방향을 돌아보게 만드니까.

영화 <오후의 고독>은 어느 투우사의 이야기다. 그는 매일 무거운 투우복을 입는 데만 한참이 걸린다. 비장하게 옷을 차려입고 그는 목에 걸려있는 성물에 입을 맞춘다. 매일 오후, 목숨을 걸고 관중들과 거대한 투우가 있는 잔혹한 무대에 서는데, 그때마다 그는 운과 신앙에 기댄다.
영화에는 그 어떤 서사나 설명도 없다. 러닝타임 내내 한 투우사의 투우 준비와 투우 장면만 보여줄 뿐. 찌르고, 피 흘리고, 쓰러지는 소와 그 앞에서 춤추듯 칼을 겨누는 투우사의 사투만 반복된다. 성난 소에게 투우사가 들이받히고 짓밟히는 아찔한 순간이 나오기도 한다. 관중들은 피 흘리며 죽어가는 소와 다친 투우사를 향해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때로는 야유도 쏟아낸다. 인간의 오락과 유희는 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위험하고 잔혹한 순간을 즐기는 것일까.

이 다큐의 주인공은 스타 투우사 안드레스다. 그에게 몰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경기장에서 잠깐이라도 집중하지 못하거나 딴생각을 하면 바로 소의 뿔에 박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이 기이한 삶을 내일도 지속하기 위해서 그는 매 순간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 공간에 자기 자신을 던져넣는다.
그가 다른 이들과 다른 건 소를 대하는 태도다. 동료들이 차 안에서 소를 쉽게 평가하고 막말을 던질 때, 정작 생사를 걸고 소의 눈을 마주했던 안드레스는 말을 아낀다. “소는 원래 다 겁쟁이야”라며 소의 두려움을 이해하기도 하고, 오히려 소가 자신을 다치지 않게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준비하는 과정과 시간 내내를 기록한 다큐다. 다큐가 시작되자마자 조금 놀랐다. 진지하고 고고할 것 같은 감독의 모습을 떠올렸는데, 다소 소탈한, 어쩌면 약간 하찮아 보이기까지 하는 웃긴 어르신의 모습이 보여서. 담배 물고 툴툴거리며 일하는 모습부터 시작이다. “참 짜증 나는 작품이야.” “재미없는 게 문제지” “성가시네” “재미없어” 이런 게 그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그렇게 툴툴거리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오랫동안 함께해온 사람들이 등장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게 느껴진다. 이 영화를 제작할 때 지브리 스튜디오의 사람들을 한 사람씩 매칭해서 거기에 해당하는 캐릭터와 에피소드로 영화를 창작했다고 한다. 그가 은퇴를 번복하고 이 영화를 제작한 것은 그 함께해온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작품을 작업하면서 그는 동료들의 죽음을 연이어 맞이한다.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가르쳐준 스승 오츠카 감독, 오랜 동료 타케바야시 씨, 그리고 평생의 영화 제작 동료였던 ‘파쿠상’(타카하타 이사오 감독)까지. 특히 파쿠상에 대한 그의 마음은 상상 이상이다. 그는 콘티가 나오지 않을 때, 힘들 때, 대화 상대가 필요할 때 늘 파쿠상을 찾았고(그때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고민거리가 있을 때에도 없는 타쿠상에게 혼잣말 같은 말을 건네며 시간을 보낸다. “이럴 때 대화 상대로 파쿠상만 한 이가 없지. 저승은 어떤지 묻고 싶어. 재미없다고 하겠지. 난 그럴 줄 알았다고 할 거고.”

결국 이 작품을 모두 완성하고 나서, 예전처럼 은퇴를 번복하고 또 영화를 시작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직원들 앞에서 그는 작업하는 게 귀찮다고 말한다. 애니메이션 작품을 평생 만들어온 사람이 작품 제작을 위해 7년 가까이 매진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만으로 충분한 다큐다. 물론 거의 미쳐 있는 사람 같다. 이 영화의 끝에서 그는 개봉한 작품을 보고 온 사람에게 이렇게 적어준다. “미야자키는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그 선택을 했고, 우는소리하지 말고 전진하자.” 그리고 말한다. “만들길 잘했어. 만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어.”
그가 다큐 마지막에 꼭 넣고 싶다며 한 말이 있다. “절대 흉내 내지 마시오.” 이 다큐를 본 순간만큼은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나이 들어서까지 머리가 고장 날 정도로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도, 오랫동안 함께 일하고 죽어서까지 그리워할 동료가 있다는 것도 얼마나 멋있어 보였던지.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누나가 조현병이라는 걸 알게 된 소년이 누나의 일생을 촬영한 이야기다. 감독의 부모는 둘 다 의사이자 연구자였고, 누나 마사코 역시 부모의 뒤를 이어 의대에 진학한 의대생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사코에게 조현병 증상이 나타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부모는 딸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게 했다.
의사였던 부모가 왜 그랬을까 싶지만 당시 시대의 분위기와 의료 환경 때문이었던 것 같다. 부모는 딸이 혼자 어디론가 갈까봐 현관문에 자물쇠와 쇠사슬을 채우고 지낸다. 감금에 가까운 부모님의 생활을 이상하게 생각한 감독은 가족 행사를 구실로 가족들을 촬영하기 시작한다.

결말로 향하는 과정은 다소 충격적이다. 어머니에게 치매 증상이 찾아와 상담사가 개입하면서, 마사코가 증상을 보인 때로부터 25년 만에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리고 석 달 후 퇴원한 마사코는 치료를 받으며 많이 호전되어 있었다. 설거지도 직접 하고, 환하게 웃기도 한다. 이후 어머니가 가장 먼저 돌아가시고, 뒤늦게 마사코는 여행도 다니며 여생을 보낸다. 마사코는 예순두 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홀로 남은 아빠에게 묻는 감독의 질문. “누나의 삶은 이렇게 끝이 나버렸잖아. 만약 다시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제일 좋았을까?” 이런 잔혹한 대화를 나누고, 이게 다큐로 기록되다니. 일생을, 가족들의 일생을 기록화한 데 대해서 난 어떤 말을 덧붙이고 어떤 평가를,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세 영화를 보면서, 전부 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혔다. 어떤 일에 끈질기게 매달려온 사람들이 결국 닿는 것, 보여주는 것.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어쩌면 모든 다큐멘터리가 건네는 질문이겠다.
🎬 𝟴𝘁𝗵 Clos𝗶𝗻𝗴 𝗙𝗶𝗹𝗺
제8회 모기영 폐막작을 공개합니다!


제8회 모기영 폐막작으로 선정된 <마지막 푸른빛>은 급격한 생태적·사회적 붕괴를 겪는 근미래 브라질을 배경으로 합니다. 정부가 생산성 극대화를 명목으로 노인들을 외딴 정착촌으로 강제 이주시키자, 이에 불응한 77세 테레사는 아마존을 가로지르는 험난한 탈출 여정에 오릅니다. 디스토피아적 통제에 맞선 노년의 저항을 감각인 연출로 그려낸 로드무비입니다.
1983년 브라질 출생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가브리엘 마스카루는 전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고 50개 이상의 국제상을 수상했습니다. <마지막 푸른빛>은 2025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은곰상 심사위원대상과 에큐메니컬상,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 독자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 시놉시스
브라질 정부는 경제적 생산성을 끌어올린다는 명목으로 노인들을 외딴 집단 거주지로 강제 이주하라고 명령한다. 77세의 테레사는 이에 불응한 채,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아마존 횡단 여정에 오른다.
✔️ <마지막 푸른빛>은 11월 22일(일)에 진행되는 제8회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폐막식에서 상영됩니다.
텀블벅 펀딩 오픈!
⏳ 𝟴𝘁𝗵 𝗖𝗙𝗙𝗙𝗘 𝗗-𝟯𝟬
제8회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가 어느새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개막작과 폐막작 공개를 시작으로, 국내 미개봉작과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 그리고 올해 처음 선보이는 '클럽시네마' 상영작까지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라인업 공개에도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드립니다.
올해도 텀블벅 펀딩이 진행중입니다! 올해 주제가 드러난 핀버튼3종, 양말, 엽서 달력 등 모기영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리워드도 준비되어 있어요. 펀딩은 11월 17일까지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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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𝟴𝘁𝗵 𝗖𝗵𝗿𝗶𝘀𝘁𝗶𝗮𝗻 𝗙𝗶𝗹𝗺 𝗙𝗲𝘀𝘁𝗶𝘃𝗮𝗹 𝗙𝗼𝗿 𝗘𝘃𝗲𝗿𝘆𝗼𝗻𝗲
홍대 KT&G 상상마당 시네마
𝟭𝟭.𝟭𝟵 - 𝟭𝟭.𝟮𝟮
글 정민호
편집디자인 모기영 편집부
2026년 10월 24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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