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6 vol.39 | view more | SUBSCRIBE
CRSH : 이야기
안녕하세요, 작가 정재경입니다. 10월의 긴 연휴, 행복하게 보내셨나요? 저는 지난 주, 불탄숲도토리심기운동본부와 함께 경북 청송에 다녀왔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들어주세요. 온난화로 앞으로 산불이 더 자주 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고, 우리도 안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시 작년 3월, 경북에서 났던 산불을 기억하시나요? 의성에서 시작된 불은 강풍을 타고 안동, 청송, 영양, 영덕까지 번졌습니다. 현장에서 들은 바로는 불과 5시간 만에 70킬로미터를 이동해 내륙에서 동해안에 닿았다고 합니다. 불에 탄 산림은 약 9만 9천 헥타르, 국토의 1퍼센트에 가까운 면적이었습니다. 27명이 목숨을 잃었고, 3,500여 명이 집을 잃었습니다.
산에 사는 생명들은 그 불길 속에서 어떻게 숨을 지켰을까요.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더 무서운 건 이 일이 마지막이 아닐 거라는 점입니다. 한반도 주변은 최근 10년 사이 0.9도 올랐다고 합니다. 지난 100년 동안 오른 1.9도의 거의 절반이 단 10년 만에 올랐다는 뜻입니다. 산불은 앞으로 더 자주, 더 크게 올 겁니다. 그래서 지난 9월 30일, 저는 경북 청송의 불탄 숲에 갔습니다. 그 불을 다시 막기 위해서요.

불이 꺼져도 숲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불이 꺼지면 초록은 금방 돌아옵니다. 그러나 풀이 돌아왔다고 숲이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우종영 선생님은 산불 7개월 뒤의 안동을 둘러보셨는데, 산은 푸르렀지만 가시 많은 산초나무와 칡 같은 덩굴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식물이 자리를 잡으면 나무가 뿌리내릴 시간이 그만큼 늦어집니다.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올라와 자라는 맹아림도 마냥 반가운 것은 아닙니다. 여러 줄기가 한꺼번에 자라는 다간형은 서로 밀고 찢어지며 폭우나 습설에 약한 숲이 되기 쉽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도와야 합니다. 맹아 사이사이에 도토리를 직접 심어, 제 뿌리를 가진 튼튼한 나무가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불 속에서도 살아남은 나무
산불이 지나간 숲을 걷다 보면 이상한 장면을 만납니다. 모두 검게 타 버린 가운데 유독 살아서 서 있는 나무가 있습니다. 굴참나무입니다. 산불의 온도는 1,000도에 이른다고 합니다. 검게 그을린 굴참나무의 밑동을 보고 있으면 그럼에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굴참나무가 살아남은 비결은 두꺼운 코르크층입니다. 껍질이 열을 막아 줄기 안쪽으로 천천히 전해지게 합니다. 그래서 불탄숲도토리심기운동본부는 이 나무로 방화벽을 세우려 합니다. 불에 강한 나무를 심어 불길이 넘어가지 못하게 막고, 사람과 동물이 몸을 피할 시간을 벌어 주는 숲, 내화수림대입니다. 우종영 선생님 말씀으로는 굴참나무가 불에 강하다는 건 알려져 있어도, 굴참나무로 내화수림대를 만든 곳은 아직 없다고 합니다.

왜 하필 굴참나무일까요
참나무는 여섯 형제입니다. 상수리, 굴참, 떡갈, 신갈, 갈참, 졸참나무이고, 숲공부를 하는 분들은 도토리 모자(각두)로 구분합니다. 상수리·굴참·떡갈은 말미잘 촉수 같아서 '상굴떡은 말미잘', 신갈·갈참·졸참은 부처님 머리 같아서 '신갈졸은 불두'라고 외웁니다.
불탄 땅은 사막 같습니다. 쌓여 있던 낙엽층이 타 버리고, 남은 흙도 비에 씻겨 거의 광물질만 남기 때문입니다. 이런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는 굴참, 신갈, 떡갈 도토리 정도가 버팁니다. 그중에서도 굴참나무는 불에 강하고, 뿌리를 곧고 깊이 내려 산사태를 막아 줍니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서 다양한 식물이 함께 살 수 있도록 배려하며 자랍니다. 불을 막으면서도 다른 생명이 깃들 자리를 내어 주는 나무입니다.
"그럼 상수리나무는 안 되나요?" 하고 궁금해하실 분이 있을 겁니다. 우종영 선생님은 나무마다 맞는 땅이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상수리나무는 흙이 깊고 비옥한 곳에서 제 힘을 내는 나무인데, 불에 타 영양이 다 씻겨 내려간 땅에 심으면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나무마다 본성이 있고, 그 본성을 다하도록 알맞은 자리에 심는 것이 숲을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적지적수'라고 부릅니다.
5천 알의 도토리를 모은 사람들
이날 심은 도토리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회원들이 9월 12일부터 27일까지 용인 석포산, 성남 불곡산, 팔당 예빈산, 강원 화천, 지리산에서 직접 줍거나 나눠 받은 5천여 알 가운데 고른 것입니다. 굴참나무 군락은 곳곳에 작게 흩어져 있어서 몇 사람만으로는 모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합니다.
45도 언덕에서
도토리를 심을 곳은 경사가 45도에 달하는 가파른 언덕이었습니다. 우종영 선생님은 담담히 설명하셨고 아무도 개의치 않았는데, 제 눈에는 깎아지른 벼랑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산을 탄 적이 있었나 기억을 뒤적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옆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어느새 저는 그 언덕 위에 서 있었습니다. 혼자였다면 아마 발걸음을 돌렸을 겁니다. 굳이 위험한 일을 뭐하러 하나 싶었겠지요. 뭐든 처음 하는 일이 있고, 해 봐야 할 수 있게 됩니다.
한 알 한 알, 흙이불을 덮어 주며
고른 도토리는 야생동물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전처리를 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실험을 해 보니, 어치라는 새가 도토리를 심은 자리를 귀신같이 찾아내 파먹더라는 겁니다. 표시용으로 꽂아 둔 생분해 빨대마저 뽑아 가서 그 밑의 도토리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날도 "도토리를 한 알이라도 흘리면 안 된다"고 당부하셨지요.
또 하나, 선생님과 나무의사협회 분들은 수천 알의 도토리를 하나하나 사포에 올려 손으로 갈아 주셨습니다. 도토리 끝의 껍질을 살짝 갈아 내면 물이 빨리 들어가 싹이 훨씬 일찍 튼다고 합니다. 도토리는 휴면을 하지 않아서 심은 뒤 5일 안에 뿌리가 내려야 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었습니다.
땅을 파고, 특별한 상토를 넣고, 도토리 세 알을 가지런히 눕힌 뒤 흙이불을 덮어 줍니다. 그 위에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두툼하게 올려 수분을 지키고 흙이 쓸려 내려가는 걸 막습니다. 선생님이 거듭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한 알을 심는 데 10분이 걸려도 괜찮으니, 정성스럽게 말을 걸어 가며 심으라고요.

심고 나서는 뒤돌아보지 않는 법
선생님은 심기 전에 곽탁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당나라의 문장가 유종원이 나무를 기막히게 잘 키우는 곱사등이 정원사에게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심을 때는 정성을 다하고, 심은 뒤에는 뒤돌아보지 않는다고요.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알맞은 자리에 심었다면 나무는 스스로 본성을 다해 자란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저는 아마 또 갈 것 같습니다. 도토리가 얼마나 자랐는지 문득문득 궁금할 테니까요. 불탄숲도토리심기운동본부는 내년 5월, 이곳에 다시 와서 싹이 얼마나 텄는지 살피고 풀을 깎을 예정입니다. 산불은 며칠이면 숲을 지나가지만, 숲이 돌아오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립니다. 그 사이를 메우는 건 결국 한 알 한 알 심고 다시 찾아가는 사람들의 손입니다.
함께해 주세요
혼자서는 오르지 못할 언덕도 옆 사람이 하는 대로 한 걸음씩 따라가면 오를 수 있습니다. 이 숲을 함께 지켜주시겠어요? 내년 2027년 9월 30일에도 불탄숲에 도토리를 심으러 갑니다. 함께 해 주실 후원 기업과 단체를 찾고 있습니다.
오늘의 질문
혹시 지금 당신 앞에도 오르기엔 너무 가파른 언덕이 있나요? 혼자서는 돌아섰을 그 길을 옆 사람을 따라 걸을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초록생활연구소는 식물과 숲에서 이런 회복의 경험을 배우고 일상으로 옮기는 강연과 워크숍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또 만나요.
초록의 마음을 담아, 정재경 드림
CRSH | 추천 전시
자연을 담은 전시를 다녀왔어요. 윤주연의 움직이는 금속 오브제, 세지화랑의 미지의 정원. 재료는 달라도 모두 '살아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감이 가까운 순서(10/11 · 10/31)로 정리했으니, 가을 산책길에 들러 보세요.
윤주연 《깊고, 짙은》
금속공예가의 손에서 자연의 기억이 오브제로 되살아났습니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부드러운 색, 바람결처럼 움직이는 모빌이 단단한 금속에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식물이 가만히 있어도 자라듯, 멈춘 듯 움직이는 작업 앞에서 숨이 느려집니다.
📍 갤러리 아원(북촌로5가길 3, 아원공방 2층) 2026.9.30~10.11 | 11:00~19:00, 월요일 휴관

《미지의 정원 Unknown Garden》
민들레 한 송이에서 출발한 정원이 회화, 옻칠 공예, 패션으로 피어납니다. 궁중 느낌의 자카드 스커트와 원피스까지, 식물의 형상이 옷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성민우 · 윤원정 · 장춘철 세 작가의 협업이 자연을 다른 재료와 감각으로 다시 읽게 합니다.
📍 북촌 세지화랑(북촌로4길 27 B1) | 2026.10.1~10.31 | 화~토 10:00~18:00, 일·월 휴관

CRSH : 소식
📌 정재경 작가, 2026 부산 가든쇼서 강연… 18일 부산낙동강정원
정재경 작가가 10월 18일(일) 오후 2시, '정원이 있는 삶, 정원이 잇는 이야기'를 주제로 열리는 2026 부산 가든쇼(부산낙동강정원, 10월 15~18일)에서 강연한다. 올해 행사는 정원 전시와 공연, 정원학교, 가드닝 체험 등으로 구성된다. 정 작가는 식물인문학의 관점에서 현대인과 자연을 연결하는 실용 지식과 경험을 나눌 예정이다.


📌 정재경 작가, 거마도서관서 '꽃으로 묻고 인문학으로 답하다' 3회 강연 마쳐
정재경 작가는 10월 1일(목)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거마도서관에서 강연 시리즈 '화(花)답: 꽃으로 묻고 인문학으로 답하다'의 3회차 「현대인과 꽃, 일상을 밝히는 가드닝」을 진행했다. 이번 강연은 총 4회 가운데 세 번째로, 꽃과 가드닝이 현대인의 일상을 어떻게 밝혀 주는지 인문학의 눈으로 풀어냈다. 마지막 4회는 「꽃의 진화와 생존, 꺾이지 않는 삶에 대하여」를 주제로 이어진다.
📌 정재경 작가, 별빛마루서 '마음 돌보는 인문학' 첫 강연
정재경 작가는 10월 2일(금)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별빛마루에서 '마음 돌보는 인문학'의 문을 여는 1회차 「식물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4회 강연과 후속 모임을 합쳐 총 5회로 구성된다. 매 회 식물일기 쓰기 실습이 함께 이어진다. 2회는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식물」, 3회는 「실내 식물 가드닝」, 4회는 「식물과 나의 삶 마주하기」를 다룬다. 마지막 5회는 가드닝 작품과 의견을 나누는 성과 공유회와 수료식이다.
🌱 정재경 작가 & 초록생활연구소와 협업하기
정재경 작가와 함께 식물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치유와 회복, 협업을 함께하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눌러 주세요. 강연, 콘텐츠 협업, 브랜드 컬래버 등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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