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연주자들은 색깔이 다르다. 모두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곡의 뉘앙스, 즉 느낌이 다르다.
이것이 클래식과 재즈가 가장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클래식을 잘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작곡가가 명시한 악보에 충실해야 함을 의미한다. 물론 대가의 경지에 오르면 자신만의 임프로비제이션*(즉흥연주)이 가능하다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선이 있다. 그래서 클래식은 또 완벽하게 들어맞는 황홀함이 있다. 그러니까 클래식을 들으면서는 기대한 순간 정확히, 예상한 그 순간에 터지는 완벽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일단 저는 그렇게 감상하고 있습니다. 흐흐흫)
재즈는 그렇지 않다. 재즈를 조금씩 알아가면, 리얼북이니 뭐니 하는 여러 곡 모음집을 알게 된다. 리얼북이란, 쉽게 말해 악보모음집이다. 연주자라면 스탠다드로 연주할 줄 알아야 하는 그런 입문서랄까. 오호 하는 기분에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열면 십중팔구 당황할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이게 그 유명한 리얼북이라구?”
한 페이지에 한 곡 씩 적혀 있는데, 어떤 것은 그냥 휘갈겨 쓴 것 같은 것도 있다. 문제는 악보에 음표가 아니라 그저 코드 몇 개만 적혀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물론 멜로디 라인이 있는 곡도 있지만 그건 그냥 음표 몇 개가 전부다.
재즈를 들을 때 멜로디가 없어 어렵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재즈는 멜로디가 중요하지 않다. 아니 중요한데 중요하지 않다. 힙합에 킬링벌스가 있듯, 킬링 멜로디가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살리느냐는 연주자 마음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릴 지는 정말 자유롭게 그 날의 연주자에게 달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잼 연주자들 끼리는 완벽한 약속을 했다는 점이다. 헷갈리실 것 같은데 이 점은 언젠가 글로 다시 다루겠다. (왜냐면, 재즈를 좋아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 모든 예는 전부 '접'니다..) 재즈의 황홀한 임프로비제이션에 반한다. 그것이 순간의 삘로 작용하는 운명적이고 무계획적인 필링의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절대 그렇지 않다. 연주자들은 그 순간을 위해 필사적인 테크닉 연습을 한다. 리듬은 물론, 자신이 머리 속으로 생각한 음계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센스를 연마한다.
그 점을 절대 간과해선 안된다. 모든 것이 그렇듯 아무것도 그냥 되는 것이 없는 거다. 그래서 관객은 끊임 없는 노력을 탄생된 보물의 마디들을 들으며 그들의 노고가 참 정말 많이 고맙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환호를 지르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정말 고맙고, 또 고맙다. (하루를 마감하는 어느 저녁 연주에서 맥주 한 잔을 들고 미친 듯이 환호하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의 감동은 연주자의 그만한 노고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찌 고맙지 않고 배기겠는가? )
굳이 짚고 넘어가자면 어느 작곡가의 버전은 분명 모든 연주자에게 가이드라인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그대로 연주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하나의 곡이라도 수백 수천가지의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연주의 수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아! 벌써 설레는군!"
나는 말랑한 마음을 가지고 싶을 때, Skating in central park를 듣는데. 거의 Bill Evans Trio의 것을 듣는다. (Skating In Central Park · Bill Evans · Jim Hall Undercurrent ℗ 1962 Blue Note Records Producer: Alan Douglas Composer Lyricist: John Lewis) 또 이 버전을 고집한다. 왜냐면, 이 버전이 내 마음에 가장 들기 때문이다.
어, 조금 옆 길로 샛지만 다시 돌아오자. 그러니까 재즈는 하나의 곡이라고 하더라도 엄청난 수의 버전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같은 연주자의 것이라도 그렇다. 그 연주자가 1960년에 낸 음반에 수록된 곡과, 20년 후에 발표한 음반에 수록된 곡이 같다고 하더라도, 그 맛이 아주 완전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재즈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실패한 연주가 있는 게 아니라, 관객이 고를 수 있는 연주자의 하루, 시간이 남는 것이니까. 여러 연주중엔 매케한 연기로 가득찬 허름한 재즈바에서 녹음 한 것 처럼 뭉특한 레코딩도 있고, 최첨단 기술을 접목해 섬세하게 녹음한 버전도 있다. 물론 듣는 데는 최첨단 쪽이 좋지만 어떤 날은 말도 안되는 잡다한 소리들이 담긴 버전이 끌릴 때도 있다.
(뭐 좋아하면 상대의 코 파는 모습도 좋아보인다거나 방귀냄새도 좀 좋아질 때도 있지 않나? 그런 의미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나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건 아니니까 저를 맹목적이라 비난하진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자, 그러니까 이제 재즈를 어떻게 들어야 하냐고?
아주 입문자라면 그냥 jazz 를 검색창에 두드리고 아무거나 들어보시라. 마음에 드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게 있을 거다. 거기서 마음에 안 드는 건 제하고, 점점 취향을 찾아가면 된다. 재즈가 입문에서 좋아지는 방향으로 가는 데 어려운 점이 있다면 이 수많은 바리에이션 때문이다. 만약 정말 싫은 재즈 곡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닫지 마시라.
반드시 어딘가에,
당신의 마음에 쏙 드는 음반을 짠 하고 녹음한 산타클로스가 있을 거다. 12월 25일 에만 나타나는 산타처럼, 아주 드물게 그런 음반은 나타난다.
365일 중 단 하루지만 반드시!
좋아하는 연주자나 음악이 생겼다면 무한한 바다의 파도를 잡으러 떠날 차례다. 당신은 당신만의 취향이라는 서핑보드를 가진 괜찮은 서퍼고 우리의 앞에는 남실대는 에메랄드빛 파도들이 춤을 춘다. 곡 하나만 간단히 검색만 해도, 수 백 개의 검색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 중에 어떤 것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지 모른다.
재즈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엄청난 파도를 타며 가장 높은 파도 하나를 잡아 올라타는 것과 같다. 얼마전 아이유의 노래 '음파'를 들으면서 실감이 났다. 커다란 파도에 올라타타타타타! 하는 그 찰나, 나는 오늘의 곡 하나를 낚아 챈다.
그럼, 준비 됐어?
우린 모두 꽤 괜찮은 서퍼거든! 내 말을 믿어 봐!
- 추천음악 1. 몽글몽글 말랑한 마음을 위하여
정말 자주 듣는 곡 중 하나입니다. 차가운 얼음위를 꾹꾹 누르며 나아가는 스케이트. 부드러운 피아노에 리드미컬한 짐홀의 기타소리. 달달한 디저트가 되는 곡입니다. 얼음처럼 굳어진 마음판을 꾹꾹 눌러 녹일겁니다.
- 추천음악 2. 크리스마스가 다왔으니..... 눈내린 설경을 자켓으로한....
자켓 때문인지, 겨울이면 떠오르는 듀크 조던의 No Problem 입니다. 산타의 고향이기도 한 북유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거든요. 실제로 앨범 이름도 'flight to Denmark' 에요. ㅎㅎㅎ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로 여행을 떠날까요?
- 추천음악 3. 헤헤헤- 진짜 크리스마스 곡입니다.
노라 존스를 기억하시는 분 계신가요? 그녀가 전하는 따뜻한 크리스마스에 마음이 녹아버렸습니다. 보고싶은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크리스마스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왔어요, 일년 중 가장 기분좋은 시즌이 아닐까 싶은데요. 전 이제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러 가야겠습니다. 트리가 완성되면 다음 음악레터에 보내드릴게요. ㅎㅎㅎㅎ 올해는 어떤 나무를 살까요?
조금 길었습니다만, 부디 즐겁게 읽으셨기를 바랍니다.
그럼 다음레터로 만나요. 😁
우리 같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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