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냈나요.정말 오랜만에 재즈레터를 보내는군요. 😁
어떻게 지냈나요?
전 정말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고 있답니다. 비오는 오후의 이 한가로운 분위기에 마음껏 젖어들고 있죠.
사실 우리는 분위기에 잘 휩쓸립니다. 분위기가 좋은 카페를 가는 것도 그렇잖아요. 좋은 곳에 가서 앉으면 나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도취되죠. 분위기일 뿐인데....
분위기를 누리는 것이 문제라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완벽히 느끼고 지나갈 수 없으니까요. 어떨 땐 그저 분위기 만으로 행복해하고 또 분위기에 울기도 합니다.
세네카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네 맞습니다. 눈물 뿐인 인생, 뭐 분위기라도 즐기는 게 어때서요.그러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럼요!
저도 그저 뭉뚱그려진 분위기처럼 인생을 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 그렇게 되나요.인생은 작은 조각조각들이 쌓여가는, 일 분 일 초, 그 수많은 디테일인 것을.....
자, 재즈 얘기를 하면서 왜 그냥 지나갔으면 싶은 뼈아픈 얘기를 하냐구요?
시험이 끝나니 제게도 디테일한 비극을 곱씹을 만한 여유가 생겼거든요.
하루하루 책과 강의자료에 시달라며 낭만적인 카페를 지나가다 냄새를 맡는, 그 분위기 만으로 행복했던 제게, 드디어 물고 씹고 맛볼 자존감의 시간이 찾아 온 겁니다. (하하😁)
나의 디테일한 비극을 들여다보려면 여유가 필수입니다.
내가 어디까지 온 건지, 뭘 하고 있는 건지, 내 마음 상태는 어떤 지, 도대체 제 정신으로 살고 이었던 건 지, 무슨 목표가 있었던 건 지, 소중한 꿈은 상처를 입지는 않았는 지, 내 안의 자비로움이 아직 숨 쉬고 있는 지 같은 걸 찬찬히 살펴 보려면 내 상태의 진실을 알아 보려면 인내가 필요한 법입니다.
내게 실망하지 않고 받아들일 호기로운 인내 말이죠.
재즈는 말이죠.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처음엔 그 분위기에 젖어 재즈를 듣게 되죠.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더 많은 음반을 접할수록, 재즈는 머리가 아픕니다. 뒤죽박죽이 되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재즈를 떠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디테일의 비극을 받아들이려면 진득하게 정리할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거든요. 재즈란 장르는 무엇보다 연주자에게 무한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내는 한 음 한 음의 디테일에 말이죠.
분위기만 후루룩 보고 들어갔다가 지루해 지는 이유는 어쩌면 진득한 디테일을 들여다 보기엔 지긋지긋한 일상의 피곤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마음이 분주할 땐 재즈를 들으면 도저히 더 집중이 안 되어서 음악을 끄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여유로울 땐 그 한 음 한 음에 집중하게 되더군요.
같은 노래인데 완전 다르게 들리죠. 😏
우리의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한대도, 그 눈물이 다 같은 눈물은 아닙니다.
어제는 그것 때문에 울었고, 오늘은 이것 때문에 울었으니까요. 그것은 수많은 우리의 단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단편 중 하나로 우리의 인생을 무어라 말 할 수 없습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그래도 기쁘고 슬프다는 두 개의 단어만으로 인생을 설명 할 순 없죠.
저에겐 재즈를 듣는 건 순간순간의 디테일을 받아들이는 일인 모양입니다. 뭐 그렇다고 항상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진짜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극적 디테일로만 가득한 곡들도 있게 마련이거든요.
그렇다고 모든 곡을 넋놓고 들으며 시간을 낭비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성실한 우리의 취향으로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이니까요.
뭐 그래도 어떨 땐 분위기만으로 충분할 때도 있죠. 아유 누군들 안 그래요.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뭐....
멀리서 보든 가까이서 보든 비극이든 희극이든 어떤 이를 이해하고 누군가에게 집중한 다는 건 결국 좋아하기 때문이니까요.
애정이 있어야 듣습니다. 길었지만 결국 그 얘기였군요. 하하. 😁
그럼 같이 들을까요?
- 오늘은 잔잔한 트럼펫입니다.
곧 다시 보낼게요.
오늘도 같이 들어줘서 고마워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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