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이에요.
역시 문득 도착하는 편지는 오랜만이어야 제맛이죠?
모두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고 계셨나요? 저는 바쁘게 지냈어요. 제가 있는 곳은 아직 완연한 봄이라고 하기엔 너무 추웠답니다. 나무들이 쭉 갈색이다가 한 일주일 사이에 연두빛으로 물들기 시작했어요. 올해는 봄이 좀 늦네요. 🌼
흠흠.. 그럼 본격적으로 재즈래터를 써 보겠습니다.
카라반…
캠핑카를 생각하셨나요. 네, 좋습니다.
카라반…
카라얀과 헷갈리셨나요? 네, 좋습니다.
카라반…
사막을 떠올리셨나요! 네, 좋습니다.
음악제목은 이렇게 지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짧고 강하게, 잘 외워질 수 있게요. 머릿속에 여러가지 이미지를 동시에 불러 일으켜서 잘 잊혀지지 않죠. Caravan 이라는 제목이 좀체 잘 잊혀지지 않았는데, 혹시 저런 이유 일지도 모르겠군요. 😁
오늘은 먼저 음악을 들어 보도록 하죠.
어떠신가요?
전, 처음 듣는 순간 알았습니다. 다시 돌아올 것을요. 한 번 들으면 무조건 다시 듣고 싶어 질 수 밖에 없는 재즈 곡이 있다면 카라반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런 곡들이 무지 많지만요…. 흐흫흐.. 그러니까 제가 재즈에 관한 글을 쓰고, 여러분은 재즈에 관한 이 편지를 쭉 읽고 계시는 거겠죠…?)
저는 재즈를 들을 때, 제 나름대로 난이도를 매겨보곤 합니다.
그 난이도를 결정하는 건 아무래도 메인 멜로디가 얼마나 등장하는 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재즈를 듣기 시작하면 일단 멜로디가 많이 나오는 곡을 듣게 되는게 사실이니까요. 그러다가 어떤 악기와 리듬이 좋아지고, 그러다 보면 재즈가 뭘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엔 ‘응? 이게 대체?’ 하는 곡들을 듣게 되죠.
멜로디를 알 수 없고, 뒤죽박죽 뭔가 뒤죽박죽인 그런 느낌의 곡들 말입니다. 그러면서 대부분 재즈와 다시 멀어지고 말죠... ㅠ.ㅠ
저도 그랬습니다.
주 멜로디를 모르는 곡들은 어느 순간 이게 뭐지? 싶은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거든요. 어디를 어떻게 다르게 연주하고 있는 지 알 수 없는 곡을 듣다 길을 잃어버렸죠....
재즈가 어려워 지고 흥미를 잃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이 위플래쉬의 카라반도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난이도가 좀 있는 곡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강렬하게 시작하는 첫 멜로디 부분은 누구의 귀라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웅장한 빅밴드와 휘몰아치는 강렬한 리듬, 몰입도가 굉장하죠.
그런데, 중간에 갑자기 드럼 독주가 나옵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살짝 지루해 질 수 있는 부분이죠.
물론 재즈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이 드럼의 미친 연주는 숨을 죽이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클라이막스가 분명합니다만, 재즈를 많이 접하지 않은 분들에겐 ‘시끄러운…. 다소…. 난해한.. 부분’ 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즉 영상의 힘이란 대단합니다.
음악을 들을 때 되도록 영상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사실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압니다. 쳇 베이커의 음악이 인기가 많은 이유도 사진, 즉 눈에 보여지는 그 멋진 모습의 영향을 아주 뺄 순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쳇 베이커의 트럼펫은 눈을 가리고 들어도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전설의 레전드인 쳇 베이커를 감히 이런 식으로 말 할 순 없죠. 그 안개처럼 뿌연 음색… 단 한 번만 듣더라도 결코 잊을 수 없으니까요. (여기에 대해선 다음 번에 꼭 다시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위플래쉬를 보지 않았고, 그 전에도 카라반의 원 멜로디를 모르는 분들이 과연 이 드럼 위주의 곡에 푹 빠질 수 있었을까요?
하하. 죄송합니다. 여러분의 음악취향을 폄하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솔직히 저도 영상과 사진에 끌립니다. 매우 끌려요. 음악은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해서 아무거나 다 들어보지만 처음 보는 앨범은 당연히 앨범 자켓을 보고 고른 적이 많습니다. 보여지는 걸 절대적으로 빼고 무언 가를 고른 다는 게 사실 불가능하죠. (반박시 여러분 말이 다 맞음.)
재즈가 힘든 건, 오로지 음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뮤지션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주 음악들이 그렇듯 실력,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를 보는 세계니까요.
많은 분들이 클래식과 재즈를 많이 듣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눈이 아니라 귀로 승부를 보는 세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각정보 없이 오로지 귀,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없는 ‘듣는 사람의 상상력’으로 완성되는 세계이기 때문이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순수하게 자신의 내면을 사랑한다는 이야기가 되진 않을까요?
나를 잘 알고, 내가 뭘 좋아하는 지, 뭘 원하는 지, 즉 취향을 잘 가꾼다면 아무 시각적 정보 없이도 음악에 더 쉽게 빠져들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모든 취향은 존중 받을 수 있습니다. 누가 누구의 취향을 평가한다? 애초에 성립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모두 내 속에 뭐가 있는 지 정확하고 간결하게 그리고 완벽히 보여 줄 수 없습니다. 나 조차도 가끔은 뭐가 들었는 지 헷갈리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그걸 주장할 수 있을까요?
취향이란 완전히 개인적이고 또 그렇기 때문이 온전히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영역입니다.
저는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의 취향이 부디 안전하고 온전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당신이 되기를, 그래서 결국 우리 인생 전체에 발현되어 완성되는 아름다운 종착역을 향해 가기를…
한 곡, 한 토막의 재즈 곡을 가지고 나의 인생을 관통하는 취향에 관해 얘기하는 건 좀 비약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악에 관한 취향만 보더라도 리듬에 관한 취향, 멜로디에 관한 취향, 악기에 관한 취향…. 너무 세세하게 나눌 수 있으니…..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수많은 곡 중 같은 곡을 함께 들으며 즐거워 한다는 것 만은 분명하군요.
카라반을 좋아하는 여러분,
우리의 그 세세하고도 어려운 취향 속 어딘가 한 부분이 반드시 닿았다는 것 말입니다.
하하, 😏
오늘도 같이 들어줘서 고마워요. 😁
그럼 또 쓸게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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